리뷰

라파엘
2025.03.08
사랑과 식인이라는 충돌하는 본능 속에서 경계 없는 존재로 살아가려는 청춘들의 고독하고도 아름다운 방랑기
🧭 장르적 파격 위에 얹힌 정제된 감정의 미학 <본즈 앤 올>은 한눈에 보기에도 쉽게 분류되지 않는 영화다. 로드무비, 러브스토리, 호러, 성장 드라마, 사회적 은유가 모두 동시에 작동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이 영화를 단순한 ‘식인을 소재로 한 호러’로 오해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영화는 ‘식인’이라는 자극적이고 금기된 소재를 통해, 소외된 존재들의 정체성과 욕망, 윤리와 생존, 그리고 사랑과 죄책감 사이의 섬세한 감정선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여기에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특유의 감각적인 미장센과 조용한 서정성이 결합되면서, 장르적으로 불편할 수 있는 소재에 따뜻하고 인간적인 결을 부여한다. 하지만 그 감각은 대중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질 만큼 ‘편안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의도된 낯섦이다. 감독은 관객이 이질감을 끝까지 가지고 갈 수밖에 없는 구조를 설계하고, 그 위에서 등장인물의 감정이 천천히 차오르게 만든다. 이처럼 <본즈 앤 올>은 ‘금기된 존재도 사랑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낯설지만 감성적으로 설득력 있게 다가간다. 🩸 식인을 통한 정체성의 비유, 파괴와 생존의 역설 주인공 '매런'은 자신이 ‘식인’이라는 정체성을 자각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태어난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부정하고 싶어 하고, 동시에 멈출 수 없는 본능에 고통받는다. 이 감정은 단순히 판타지 설정으로 보기에 너무나 현실적이다.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욕망, 혹은 존재 방식 자체가 이미 사회적으로 낙인찍힌 범주에 속한다. 영화는 이 점에서 식인을 ‘다름’의 메타포로 사용한다. 동성애, 트랜스젠더, 정신 질환, 혹은 다양한 형태의 소수자 정체성이 이 서사 속에 겹쳐져 읽힌다. 매런은 자신이 받아들여질 수 없음을 알고 있으며, 그래서 스스로를 숨기고 떠돈다. '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사회와 감정적으로 단절되었고, 사랑받기보다는 살아남는 데 익숙한 인물이다. 그러나 매런을 통해 그는 다시금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이들이 나누는 감정은 사랑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같은 존재끼리만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연대”에 가깝다. 이러한 설정은 매우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다만, 이 식인을 둘러싼 서사의 감정적 호소력이 관객에게 즉각적으로 전달되기보다는, 다소 거리를 두고 관찰하게 만들 수 있다. 인간적 연민과 윤리적 불쾌감이 동시에 작동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이 <본즈 앤 올>의 가장 흥미롭고도 도전적인 미덕이며, 동시에 일부 관객에겐 진입장벽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 감각적인 연출과 미국 중서부 풍경의 서정적 활용 감독은 식인의 서사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화면을 차분하고 아름답게 구성한다. 미국 중서부의 광활하고 황량한 풍경은 두 주인공의 내면을 반영하듯 고요하지만 깊은 울림을 준다. 빛의 사용, 파스텔 톤의 배색, 느릿한 카메라 워크는 전형적인 ‘청춘 영화’의 외형을 취하면서도, 그 안에 전혀 이질적인 이야기를 흘려보낸다. 특히 두 인물이 트럭을 타고 떠돌고, 낡은 모텔과 공터, 폐가를 지나며 펼치는 여정은, 생존과 사랑, 두려움과 안식을 동시에 전달한다. 여정 속 풍경은 인물의 감정 상태를 대변하고, ‘먹고 먹히는 관계’ 속에서도 잠시 존재의 고요함을 찾는 그들의 마음을 시적으로 담아낸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본즈 앤 올>이 단순히 호러가 아닌, 감성적인 회화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그러나 감정과 미장센의 흐름이 지나치게 느릿하게 구성된 일부 구간은, 서사의 긴장감을 약화시키는 측면도 있다. 이 영화는 액션이나 공포의 연속이 아닌, 고요하게 감정을 쌓아가는 방식에 초점을 두기에, 속도감을 중시하는 관객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 배우들의 뛰어난 감정 몰입, 특히 '티모시 샬라메'의 절제된 분열성 '매런' 역의 '테일러 러셀'은 이 영화의 감정적 중심을 안정적으로 붙잡고 간다. 그녀는 혼란, 외로움, 슬픔, 그리고 감정적으로 깨어나는 순간들을 세밀한 얼굴 표정과 몸짓으로 표현한다. 영화가 그녀의 시점을 따라가기 때문에 관객은 매런과 함께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고, 함께 주저하며 사랑에 빠진다. '리' 역을 맡은 '티모시 샬라메'는 고통과 냉소, 애정과 파괴본능이 공존하는 내면을 절제된 연기로 그려낸다. 그는 식인이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무력하고 부서진 청춘의 모습으로 관객을 설득해낸다. 눈빛에 담긴 방황과 체념, 그리고 간헐적인 연약함은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 정서적 깊이를 한층 끌어올린다. 이 둘의 관계는 단순한 연애 관계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의 죄책감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서 기능하며, 그 감정은 말보다 침묵과 시선 속에서 피어난다. 이처럼 배우들의 연기는 영화의 리듬과 정서에 철저히 부합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이 비극적 서사에 감정적으로 깊이 잠수할 수 있게 만든다. 💔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관계, 그러나 진실했던 순간들 <본즈 앤 올>의 결말은 예상대로 비극적이다. 그러나 이 비극은 설정에서 비롯된 결과라기보다, 이 세계에서 이들이 감당해야 할 ‘존재의 비용’이다. 영화는 이들의 선택이 옳았는지, 그르렀는지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이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고’, 잠시나마 두려움 없이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관객은 이들이 마지막까지도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제어하고, 서로의 고통을 덜어주려 하는 모습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그 사랑이 사회적으로 수용되지 않더라도, 또는 윤리적 한계 속에서 살아갈 수 없더라도, 그 안에 담긴 감정의 진정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처럼 영화는 끝까지 관객에게 판단을 유보시키며, 도덕과 감정 사이의 미세한 균형 위에 서서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그 비극성은 말초적인 자극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인 자들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더욱 슬프고, 동시에 고귀하다. <본즈 앤 올>은 식인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통해, 인간 본성의 그림자와 소외된 존재의 연대를 낯설지만 진지하게 탐구하는 작품이다. 잔혹함과 서정, 혐오와 연민, 고통과 사랑이 한데 뒤섞인 이 여정은, 단지 특이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안의 보편적인 외로움과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을 깊이 들여다보게 만든다. 이 영화는 분명 쉽지 않다. 그러나 한 번 받아들이고 나면, 그 잔상은 오랫동안 가슴 속에 남는다. 그리고 그 잔상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누구든 다를 수 있고, 그 다름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