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9.1/세상 그 무엇보다도 성스럽고 숭고해야 마땅할 인간 군상의 적나라한 단면들. 의심과 손을 잡고서 확신을 의심한 끝에 도달한 신의 계시 말고 대안.

9.1/세상 그 무엇보다도 성스럽고 숭고해야 마땅할 인간 군상의 적나라한 단면들. 의심과 손을 잡고서 확신을 의심한 끝에 도달한 신의 계시 말고 대안. / 초반 콘클라베를 위해 딱 봐도 보통내기가 아닌 듯 보이는 추기경들이 하나 둘 모여드는데, 몇몇은 모여서 담뱃불을 붙이고 있고, 손에 가방을 들고서 무리 지어 일사불란하게 걸어가기도 하는 등, 목에 십자가를 두르고 정갈한 사제복을 입고 있긴 하지만, 뭔가 영화 속에서 으레 볼 수 있는 마피아 조직의 간부급 모임, 혹은 주주 총회를 앞두고 정장을 빼입은 주주들이 회의장으로 모여드는 모습이 겹쳐보이기도 했음. 하여튼 왠지 모르게 다들 순수 성직자들로는 보이지가 않았고, 어떤 면에선 느와르스러운 분위기마저 감돌았음. / 한 자리에 모인 추기경들의 투표가 N차까지 진행되는 과정은 예상과는 다르게 몹시도 흥미진진했음. 이미 여러 파벌들에서 각자 밀고있는 유력 후보들이 존재하고, 각 파벌들과 후보들은 생각보다 심심찮게 자신들의 야욕을 드러내며 은근하고도 치열한 신경전을 펼치기도 함.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야합이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민족주의 성향, 은우한 인종 차별, 당연시되다시피 하는 성차별 등, 성직자라는 위치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극단적인 사상이나 언행이 터져나오기도 함. 초반 선두를 달리던 후보는 갑작스레 터져나온 30년 전의 성 추문에 휘말리며 사실상 낙마하고, 또다른 유력 후보는 거짓말과 성직 매매 등이 들통나며 리타이어하기도 함. 자기네가 밀고 있는 후보의 득표 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특정 라이벌을 타도하기 위해 차선책으로서 다른 후보를 지지하기로 합의를 보기도 하고, 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수집한 정보를 일단 폭로해 버리기도 함. 콘클라베는 투표 회차를 거듭할수록 득표 상황 및 이해관계가 극적인 양상을 띄어가고, 인물들 간의 심리전이나 세력 간의 암투, 야합, 폭로 등이 판을 치며, 폭탄 테러로 인한 혼란 상황에 성직자들이 서로를 향해 아예 비난까지 일삼는 광경도 펼쳐짐. 이게 과연 고상하고 차분할 것만 같았던 교황 선출 과정이 맞나 싶었고, 평소 보던 대선, 총선, 지선 등의 개표 방송에다 극적으로 잘 짜인 이야기와 수준급의 연기 앙상블, 고퀄의 장르적 연출 등을 얹어서 몹시 흥미진진하게 감상하는 느낌이었음. 하여튼 주제나 메시지 등을 배제하고 봐도 충분히 장르적으로 먹힐 만한 어엿하고 명백한 장르물이기도 했음. / 한편 갈등과 암투와 거짓의 중심에서 진실과 실체를 쫓기 위해 조용히 분투하는 추기경 탐정 로렌스의 미스터리 추리 스릴러를 보고있단 느낌도 들었음. 의심은 가지만 확신할 순 없고, 실체를 확인했다 해도 개개인의 의중까진 명확히 파악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최대한 판단을 유보한 채 이리저리 치이고 흔들리면서도 나름대로 신중하게 파헤쳐가는 과정이 추리극으로서의 장르적 재미 또한 제공해줬음. / 오프닝부터 긴장감이 장난 아니었음. 심각함을 넘어 위협적인 느낌마저 주는 음악이 영상보다도 먼저 귀를 때리며 예열하듯 긴장감을 깔아주고, 웃음기 하나 없는 진중한 표정의 사제들이 잔뜩 등장하면서 심상치 않은 판이 벌어질 것임을 암시함. 기본적으로 성직자 하면 부드럽고 친절한 이미지가 떠오르면서도 동시에 엄숙함이나 진중함 역시 짙게 느껴지기에 초반부터 긴장감이 팽배한 채로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음. 그리고 초반의 그런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는 결코 누그러지는 일 없이 결말부까지 쭉 이어지며 스릴러로서 매우 준수한 용두용미의 사례를 남겨줬음. / 비교적 정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고, 이야기 대부분이 특 장소에서 펼쳐지는 인물들 간의 대화 및 대치 등으로 전개되지만, 중간중간 꽤나 극적이고 미적인 연출들이 심심찮게 튀어나오며 분위기를 환기시켜주고, 이야기를 정리해줬음. 다수의 성직자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선명한 색감과 함께 널찍하게 담아낸 장면들에선 위엄이나 엄숙함, 성스러움마저 느껴졌지만, 한편으론 그들 역시 인간 본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낱 인간 군상임을 실감케 해주기도 했음. 또한 후반부 로렌스의 투표와 동시에 별안간 교회의 천장이 박살나는 장면은 마치 그 곳에 있는 모두에게 지금 당장 정신을 차리라며 신이 보낸 작지만 단호한 호통처럼 느껴졌고, 동시에 추잡하고 난잡한 성직자들 간의 반목과 암투에 점점 적응해가는 관객들에게 전하는 경고처럼 느껴지기도 했음. 더불어 사운드의 활용도 인상적이었는데, 오프닝부터 수시로 들려온 음악은 이야기 내내 고퀄의 긴장감을 패시브로 깔아줬고, 종종 일상 속 특정 소음을 요란하게 증폭시켜서 들려주는 사운드 연출은 인물들이 느끼는 혼란스러운 심리 상태나 복합적인 감정 등을 관객들에게도 전해주는 듯했음. / 콘클라베의 진행을 담당하는 단장 로렌스 역의 랄프 파인즈가 보여준 연기는 단연 돋보였고, 영화를 지탱하는 기둥이자 동력이기도 했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지만 철저히 폐쇄된 환경에서 진행되는 '콘클라베'라는 특수한 이벤트의 관리자로서 모두를 아우르고 살피면서도 의심과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만 하며, 본인이 얽혀있는 파벌 등의 이해관계까지 신경써야 함. 그런 몹시도 까다롭고 가시방석이나 다름없는 위치에 있는 로렌스란 인물의 당사자이자 관리자이자 관찰자로서의 입장과 심리적 고뇌 및 갈등, 요동치는 감정 등을 랄프 파인즈는 상당한 몰입과 이입을 통해 디테일을 챙기면서도 굵직한 존재감으로 표현해내며 성공적으로 극을 이끌어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