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규정 할 수 없음을 규정하려는 시도는 무모함의 증명일 뿐!

청춘. 한창 푸르는 인생의 한 시기를 봄에 빗댄 말이다. 가객 김창완은 언젠가 갈 청춘을 지고 또 지는 꽃잎이라 빗댔다. 하물며 그 수많은 인문학자들이 보이지 않은 인간 탐구의 영역을 끓어와 제도 안으로 규정하려 들 때에도 딱 하나. 사랑만큼은 제도 바깥에서 학자를 비웃듯 야멸차게 그들을 손절했다. 사랑이 청춘의 특권은 아닐지언정 청춘에게는 사랑이 바로 특권이며 권리인 것을, 지나고 나서 깨달을 때에는 그저 한숨만 돋을새김으로 주변을 맴돌 따름이다. 이 영화,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의 경우 규정할 수 없움에 대해 규정하려는 시도는 여전히 무모함의 증명일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내가 아무리 이 영화를 보며 용산 cgv 12관의 의자가 발끝만 까딱해도 삐걱거리는 참이라, 요즘 내 삭신과 같음을 비교한다고 해서 갈아주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무릇 내 아픔도 모르는 것처럼. 살아가면 살아질 일이다. 어떻게든 될 테니까. 애면글면 이건 이래서 어떻고 저건 저래서 어떻다고 꼬치꼬치 따지도 캐물어도 그건 다 지나가는, 청춘의 한때일 테니까. 규정할 필요 없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