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8.0/서늘한 의심으로 확인하는 굳건한 신뢰. 그 살벌한 소굴에서도 여전히 두 사람이 부부일 수 있었던 이유.

8.0/서늘한 의심으로 확인하는 굳건한 신뢰. 그 살벌한 소굴에서도 여전히 두 사람이 부부일 수 있었던 이유. / 사실 중간중간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잘 못 알아먹겠거나 주인공은 왜 저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여기저기 쏘다니나 싶은 부분이 종종 보이긴 했음. 허나 그걸 딱히 모르더라도 인물들 간의 대치 상황 및 관계 변화 등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고, 여기에 배우와 캐릭터의 매력, 첩보물다운 서늘하고 건조한 분위기, 첩보극과 추리극의 콜라보를 보는 듯한 연출 및 전개 덕에 긴장감은 내내 짙게 감돌았고, 장르적으로 즐길거리들도 상당했음. 그리고 막판에는 혹여나 못 알아먹은 사람들을 위한 배려인 듯, 의미심장하고 고상하며 있어 보이는 방식으로 사건의 전말을 생각보다 소상히 밝혀주기에 끝날 때쯤엔 의문 따위 없이 후련하게 스파이들 간의 두뇌 게임을 즐겼단 느낌만 남게 됨. / 후반부 들어서는 긴장감이 좀 사그라드는 감이 있었음. 주인공 조지의 시점에서 아내 캐슬린을 비롯한 4명의 요원들을 의심하고 추적하는 식의 전개가 내내 이어지는데, 캐슬린을 제외한 나머지 넷이 다들 만만치는 않아 보여도 주인공의 카리스마에는 영 미치지 못하는 편이라 중반부까진 사실상 조지 대 캐슬린의 구도로 흘러가는 느낌이었음. 근데 후반부에 접어들며 조지와 캐슬린이 서로 간의 의심과 오해를 거두고서 의기투합하게 되고, 대결 양상이 '잔뼈 굵은 노련한 베테랑 요원 부부' vs '만만치는 않아도 아직은 덜 여문 듯한 떠오르는 신성들'쯤의 구도로 바뀌게 되면서 나머지 넷 중 누가 배신자여도 딱히 큰 기대가 되지 않는 상황이 펼쳐져버림. 때문에 해당 대결 구도가 이어지는 동안에는 긴장감이 좀 떨어지는 감이 있었고, 막판 배신자가 누군지 밝혀지는 순간에도 애초에 배신자가 자기보다 모든 면에서 한 수 위인 상대를 어줍짢게 건드린 모양새라 주인공들의 승리에 따른 쾌감이나 임팩트가 좀 떨어졌고, 다소 애매한 마무리를 맞게 됐음. / 마이클 패스벤더가 <더 킬러>에 이어 다시금 철두철미하고 냉철한 요원 류의 역할을 맡았는데, 여기서도 역시나 딱 맞는 옷을 멋드러지게 소화해냈음. 이따금씩 멈칫하는 모습이나 인간적인 면, 티끌 같은 흠을 노출하지만, 특출난 실력과 평정심과 기지를 발휘해 결국 임무를 멋드러지게 완수해낸다는 점에서 장르적으로 잘 만들어진 캐릭터와 배우의 싱크로율 즐기는 맛이 쏠쏠했음. 마치 각자의 평행세계 속에서 각각 솜씨 좋은 킬러와 정보력 및 심리전에 능한 첩보 요원으로서 정점을 찍은 마이클 패스벤더들을 보는 듯했음. 어쨌든 배우가 캐릭터를 워낙 높은 싱크로율로 멋지게 소화해준 덕에 중간중간 다른 인물들을 당황케 만드는 약점에 대한 정보들을 치트키 마냥 뚝딱뚝딱 꺼내들더라도 얼마든지 그럴 듯해 보였고, 이는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 만드는 사람에게나 보는 사람들에게나 상당히 편리하고 유용한 기능이기도 했음. 한편, 영화가 대부분 마이클 패스벤더가 연기하는 조지의 시점으로 전개되기에 상대적으로 좀 묻힌 감이 있지만, 케이트 블란쳇의 캐슬린 역시 배우 특유의 고상함과 우아함, 여유로운 포커페이스 등이 캐릭터에 잘 녹아든 덕에 진작부터 범상치 않은 포스와 존재감, 카리스마를 뿜어냈음. 거의 후반부에 접어들어서야 이야기의 주체로 올라서기 시작하고 마이클 패스벤더와의 본격적인 합을 보여주며 능력치를 드러내지만, 배우의 역량과 캐릭터와의 싱크로율 덕에 충분히 멋진 끝인상이 남았음. / 뭔가 현대 첩보물의 배경 및 설정 위에서 고전 추리물의 스타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느낌이었음. 끝나기 직전까지도 총 한번 쏘지 않지만, 인물들 간의 잔잔하면서도 치열한 눈치 게임과 심리전, 정보전을 통해 첩보물로서의 장르적 재미를 충분히 챙겼고, 주인공이 마치 범인을 찾아내듯 하나둘씩 드러나는 단서들을 쫓으며 배신자를 가려내는 추리물스러운 과정에선 지적인 스릴과 긴장감이 감돌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