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일초라도 함께하지 않는다면 그건 일생이 아니야...

1993년에 제작된 영화로 이번에 재개봉했다. 1993년 그 시절, 한국 영화는 어땠는가 떠올려보면서 그 시절만큼은 중국 영화가 정말 월등했구나란 생각을 했다. 3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게 영화에 몰입했다. 장국영과 공리, 그 두 배우의 눈빛과 몸짓 연기에 온 마음을 빼앗길 지경이었다. ​ 작중 장국영이 맡은 데이는 어쩌면 장국영의 성 정체성을 여실히 보여준 게 아닐까? 아역, 청소년, 성인 역할로 변하는 연기자들의 눈빛은 거의 동일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캐스팅에 얼마나 신경을 썼을까, 데이란 캐릭터의 성장영화로 손색이 없는 훌륭한 캐스팅이었다. 어느 순간 몇 차례 나도 모르는 사이, 눈시울이 뜨거워져오다가 뜨거운 눈물 몇 방울이 뺨을 타고 내려왔다. 출처: 네이버 영화 장국영의 운명이 데이의 운명에 오버랩되더라. 불행하고 질긴 운명의 영화 속 데이와 장국영이란 배우의 삶이 너무나 닮아 있었다. 실제로 경극 속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우희와 같은 죽음을 무대에서 선택하는 데이, 결국 현실 세계에서 장국영은 우희와 데이의 삶을 이어간 것이 아닌가? ​ 영화가 끝나고 돌아오는 발길 내내 그의 슬픈 눈빛이 발목을 부여잡았다. 영화의 여운으로 용산 CGV에서 관람을 마치고 노들 섬까지 걸었다. 경극에서 데이가 부르던 노래와 그의 눈빛과, 끝까지 살로의 삶의 행적을 눈빛으로 쫓던 데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차라리 고통이었다. 관객을 그토록 고통스럽게 만드는 배우의 눈빛이라니... 그의 눈빛만큼이나 절절했던 공리(주샨)의 삶 역시 가슴을 찌르듯 아팠다. [붉은 수수밭][5일의 마중] [인생] [귀주 이야기]에서도 그녀의 연기는 빛이 났으나, 패왕별희에서 두 남자 사이에서 오가는 미묘한 감정을 온몸으로 감지하고 아파하면서 동시에 샤오류를 향한 데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샤오류보다 데이를 온몸과 마음으로 이해한 사람은 바로 주샨이 아니었을까? 서로에게 적일 수밖에 없는 관계였음에도 그 둘은 밀접히 연결되어 있었다. 파국으로 치닫던, 살기 위해 사랑하는 이들을 고해바칠 수밖에 없던 문화혁명의 시기, 중국의 파란만장한 20세기 역사극을 참으로 리얼하게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 고된 훈련과 구타, 혹설에 밖에서 떨면서 벌을 받고 들어온 샤오류를 이불로 감싸안고 울던 어린 데이의 모습 앞에서, 스승이 원하는 노래 가사대로 부르지 않아 호되게 맞아서 망가질 대로 망가진 데이의 손바닥을 보며 마음 아파하던 샤오류의 마음을 느끼면서, 비 쏟아지던 날, 샤오류와 주샨의 대화를 엿듣고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창밖에서 지켜보던 데이의 젖은 눈을 보면서, 관객의 한 사람인 내 마음속에도 이미 몇 센티의 눈물이 고였다. 비 내리는 날처럼 내 마음도 그렇게 젖고 있었다. ​ 사실 관람 전만 하더라도 중국 경극에는 관심이 거의 없었다. 경극은 북경에서 발전한 연극으로 베이징 오페라라고도 한다.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중국의 경극이란 것이 그들의 소중한 문화유산과도 같은 것이란 걸 새삼 깨달았다. 작년 DMZ 다큐영화제에서 중국의 다큐 작품 중 경극의 역사를 다룬 작품이 있었는데 패왕별희를 보는 내내 떠올랐다. ​ [아비정전] [친니친니] [해피 투게더] 내가 관람한 장국영의 영화다. 짧은 생애에 비해 의외로 다작을 하고 떠난 배우였다. 그의 작품들을 찾아서 더 관람해보고 싶다. ​ 기억에 남는 대사를 옮겨본다. 옮기다 보니 모두 데이의 대사뿐이다. "나는 본래 사내아이로서 계집도 아닌 것이 머리를 깎이어..." "엄마, 추워요. 강물이 얼 것 같아요." 아편을 끊으려고 한 데이가 이렇게 말하자, 엄마처럼 주안이 안아준다. "한 번 웃으면 온 세상 봄이요, 한 번 훌쩍이면 만고에 수심이 가득하다." "일생을 같이 하기로 했잖아. 일 년, 한 달, 일초라도 같이하지 않는다면, 그건 일생이 아니야..." "재앙은 스스로가 한걸음 한 걸음씩 다가서는 거야." "패왕이다, 패왕! 어떻게 저렇게 멋있게 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얼마나 맞았기에... 난 언제 저런 배우가 될 수 있을까?" 친구와 함께 도망쳐 나와서 유명 배우의 경극을 보며 감동해 울면서 데이와 친구가 했던 대사가 정말 인상적이다. 그토록 먹고 싶었던 과일 사탕을 실컷 먹고 훈련장에서 목을 매고 자살한다. 매 맞는 것이 그만큼 두려웠던 거였지, 죽음보다 더 두려운 매, 왜 그토록 맞아야만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