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라씨에이
2025.06.19
7.9/아빠니까, 고모니까, 가족이니까, 친구니까, 사랑하니까. 결코 혼자일 리 없는 너니까.
7.9/아빠니까, 고모니까, 가족이니까, 친구니까, 사랑하니까. 결코 혼자일 리 없는 너니까. / 보편적이지만 언제 들어도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메시지를 제법 인상적인 장면들로 와닿게 전해내는 데 성공. 다만 전반적인 이야기의 얼개는 다소 엉성하고 조급한 감이 있어서 잘 쳐줘봐야 평이한 정도였음. / 엘리오와 우주의 연결고리가 다소 빈약하게 느껴졌음. 영화는 거의 직설적으로 느껴질 만큼 '너는 혼자가 아니야'를 내내 강조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우주에서 지구는 혼자가 아니다' 라는 개념과 매끄럽게 유기적으로 호응하기보단, 그저 우주인들도 한데 모여 조화롭게 어울리고 있으니 엘리오도 그러면 되겠다 라는 느낌 정도로 비교적 얕게 연결되는 편임. 또한 외계인들이 자기를 데려가줬으면 하고 바랄 정도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하며 외로움을 크게 느끼는 아이지만, 정작 극중에서 엘리오가 외로움을 느꼈을 법한 상황들을 생각보다 막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편은 아니어서 엘리오가 왜 저렇게까지 괴짜스러운 행동을 보이나 싶은 지점들이 종종 보이기도 함. 더불어 이야기가 좀 조급하게 흘러가다 마무리되는 감도 있었음. 초반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크게 흥미가 동하진 않는 지구에서의 에피소드들을 쌓아가다가 마침내 중반부쯤에 접어들어서 엘리오를 우주로 데려가는데, 거기서 커뮤니버스를 비롯한 우주의 세계관 전반을 한번 쓱 훑더니 이내 다시 지구로 돌아오고, 그리 흥미롭진 않았던 나름의 우여곡절을 겪고서 다시 우주로 나가자마자 다소 허무하게 빌런이 스스로 교화되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돼버림. 물론 중간중간 펼쳐진 시청각적 즐길거리들은 충분히 인상적으로 남을 만한 고퀄의 것이었고, 막판 빌런인 그라이곤이 스스로 변화를 택할 때의 울림은 영화의 메시지를 고스란히 와닿게 전해주는 인상깊은 모습이었지만, 어쨌든 전반적인 이야기는 우주로 뻗어나가는 스케일에 비해 조금은 싱겁다는 느낌이 드는 편이었음. / 영화를 통틀어 단연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바로 그라이곤 군주의 부성애가 드러나는 순간이었음. 우주를 정복하고 싶어할 정도로 호전적이고, 난폭하며 위험한 폭군 같은 존재일지라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사랑하는 아들을 대하는 의외의 면들을 보여줬음. 글로든의 DNA로 복제된 가짜 글로든을 귀신 같이 알아차렸을 땐 아무리 평소와는 많이 달라 보인다 해도 정말 자기 아들일 수도 있는 존재를 망설임 없이 쏴버리는 걸 보면서 아들을 향한 그라이곤의 압도적인 확신을 실감할 수 있었음. 그리고 막판 아들을 살리기 위해 군주라 불리는 자가 망설임 없이 갑옷을 벗어던지고 치욕이자 약점인 연약한 맨몸을 드러내며 아들을 안아서 고치로 감싸는 모습에선 여느 부모들과 다름없는 무한한 사랑 같은 것이 느껴졌음. 솔직히 그라이곤이란 캐릭터의 극적인 변화가 그렇게까지 매끄럽게 느껴지진 않는 편이었지만, 여실히 와닿았던 부성애, 가족의 사랑 같은 키워드가 윤활유 역할을 해줘서 거슬리는 것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음. / 우주의 각 행성의 리더들이 모인다는 커뮤니버스란 곳을 묘사해놓은 상상력과 표현력이 상당히 흥미로웠음. 엘리오가 포털을 타고 커뮤니버스를 향해 넘어가는 모습을 시작으로 영화는 정말 우주의 지적 생명체들이 모여있는 장소가 있다면 저 정도의 별천지는 돼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의 신비롭고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기발하고 유쾌하기도 한 상상 이상의 세계를 창조해내서 여유롭고 기품있게 뽐내고 있음. 앞선 이야기들만 봐선 도저히 상상도 못할 광경이 펼쳐지니 절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고, 현실감이고 뭐고 그저 구경하고 체험하느라 바빴음. 더불어 커뮤니버스를 위협하는 하일러그들과의 비주얼적인 대비도 인상적이었음. 모든 것이 밝고 화려하고 따스하며 둥글둥글, 부들부들, 말랑말랑해 보이는 커뮤니버스와는 달리, 하일러그 쪽은 어둡고, 각져 있으며, 차갑고, 삭막하며 경직돼 있는 느낌으로 묘사돼 있음. 워낙 확연하게 대비되기에 고도의 기술력으로 뭐든지 가능할 것만 같았던 커뮤니버스에도 위협이 되는 존재가 있다는 걸 단박에 실감할 수 있었고, 어차피 모든 게 다 술술 풀릴 것임을 전제로 두고서 보고있는 와중에도 약간의 위기감 및 긴장감을 느껴볼 수 있었음. / 캐릭터들의 디자인 및 설정도 재미나고 흥미로웠음. 흡사 애벌레, 민달팽이 등과 닮아있는 글로든은 아무리 픽사의 그림체로 둥글둥글하게 그려져 있어도 그냥 딱 봤을 때 귀여움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외모를 보이지만, 하는 짓들이나 말투 등이 워낙에 귀엽고 순수하고 천진난만해서 볼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었고, 꽤나 독특한 마스코트였음. 액상형 컴퓨터 우우우는 글로든보다도 더 마스코트스러운 비주얼을 하고 있지만 생각보단 비중이 그렇게 크지 않은 조력자 캐릭터였는데, 그래도 자유자재로 변형하며 별별 일들을 다 해내는 모습이 상당히 흥미로웠고, 극중 커뮤니버스의 고도로 발달된 기술력을 상징하는 캐릭터로서 신박하고 재미난 활약을 보여줘서 기억에 꽤 남았음. 그밖에 매우 다양하고 개성이 몹시 강한 커뮤니버스 속 외계인들의 비주얼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고, 엘리오를 비롯한 인간 캐릭터들 역시 정감가는 익숙한 모습들로 나름의 존재감을 드러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