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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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5

그 사고는 일어날 일도, 신의 뜻도 아니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붙잡혀 가서 국가 체제에 반발했다는 누명을 쓰고서 눈을 가린 채 고문을 당하고,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껴야만 했다. 몇 년이 지났어도 잊을 수 없는 그때의 기억은 아마 더 오랜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을 터였다. 발자국 소리, 삐걱거리는 소리만 듣고도 식은땀이 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굳어진 표정을 보면 죽는 순간까지도 기억할 게 분명했다. 그런 폭력에 똑같은 고문과 폭력, 죽이겠다는 협박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얼떨결에 모인 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걸 보며 내가 감히 어떤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들이 살아온 삶에 비하면 나의 삶은 너무나 안온하게만 여겨졌기 때문이다. 폭력이 옳다 나쁘다가 아니라 그들이 마음 가는 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내내 옥신각신하던 이 논쟁은 예상치 못한 사건에 대응하는 태도를 보며 숙연해지게 만들었다가 후반에는 다시 고통 속에서 살아간 한 인간의 대가와도 같은 선택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해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의 해답은 없었다. 저마다 다르게 살아온 인생이기에 감히 옳다 그르다 판단 내리면 안 되는 일이었다. 폭력에 똑같은 폭력을 가한다면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된다는 걸 스스로 감수해야 할 테고, 폭력에 용서를 되돌려준다면 고통과 후회를 평생 감내하며 살아갈지도 몰랐다. 그렇게 뒤집고 뒤집히던 선택은 초반부터 느껴졌던 한 인간의 성격으로 당연한 결과임을 보여줬다. 하지만 엔딩 장면을 통해 모든 것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영원히 끝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만들어 내 마음에 바윗덩어리를 남겼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 이 상황들을 보며 행동하고 바뀌어야 하는 건 개인이 아니라 체제에 있다는 걸 깨닫게 했다. 국가에 의해 누명을 쓰고 고문을 당하며 현재까지도 지옥을 살아가는 사람, 여느 국민과 다를 바 없이 직업을 갖고 국가에 부역한 개인으로서 명령을 수행한 사람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라고 말이다. 체제 전복까진 아니어도 인권을 유린하고 탄압하는 그런 사회는 피해자이며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모든 국민을 좀먹게 될 터였다. 옳고 그른 데에 대한 분명한 기준과 국민으로 이루어진 국가라는 점, 그리고 일어날 일도 아니고 신의 뜻은 더더욱 아니라는 걸 기억한다면 폭력에 폭력으로 화답하는 일은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영화는 작년에 개봉한 <노 베어스>만 관람했고, 최근 이란 영화를 드물게 접했었다. 근래에 본 이란 영화들은 국가에 관한 문제를 은유 아니면 직관적으로 상반되게 표현하는데, 이 영화는 두 가지 기법이 모두 사용되었다고 느껴졌다. 여기에 의외의 코믹함을 가미해 가볍게 즐기게 하다가 메시지를 분명히 한 엔딩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영화가 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는지 알 수 있었다. 폭력적인 사회에 저항하며 영화로나마 소리쳐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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