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샤일록
2025.11.02
진통제는 치료약이 아니다
'레미스' 마을은 과거 기차 사고로 인해 수많은 이들을 잃은 상처를 품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미 모든 상처를 극복했다며, 자신들이 웃음 가득한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 중심에는 포옹을 통해 사람들의 고통을 지워주는 신비한 소년 '마테오'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마테오의 포옹 없이는 삶을 견디지 못하는 중독 증세를 보인다. 마테오 역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공동체에 예속되어, 자아를 억압당한 채 살아간다. 둘은 서로를 갉아먹는 비극적인 공생 관계이다. 외부에서 온 주인공 '세르조'가 마을의 비밀을 알아채고 마테오의 태도를 변화시키자, 주민들은 포옹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여 그에게 은은한 적대감을 드러낸다. 마테오의 포옹은 슬픔을 순간적으로 사라지게 만들지만, 트라우마의 근원은 건드리지 않는다. 상처를 치료하는 대신 마약성 진통제로 감각만 마비시키는 것과 같다. 고통은 인간을 파괴하지만 동시에 인간을 유지시키는 힘이기도 하다. 고통이 없다면 갈등도, 성장도, 선택의 윤리도 존재할 수 없으며, 결국 살아 있기 때문에 느끼는 모든 흔들림을 지워버린다. 그렇다면 진짜 생명력은 어디에 있을까. 고통을 느끼지 않는 삶을 과연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 <홀리 보이>는 고통의 증폭이 아닌 고통의 소멸을 통해 불편함을 준다. 기쁨과 슬픔의 대비가 사라지고, 희망과 절망의 운동도 멈춘 채, 서로에게 억지 미소를 강요하는 공동체가 만든 평온함은 기괴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것은 감정이 죽은 세계이며, 진정한 생명이 없는 세계다. 아픔을 회피하기 위한 잔꾀가 아닌,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회복해 나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회복 과정도 사라지고, 감정의 자율성도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인간이 아닌 껍데기뿐인 인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