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라씨에이
2025.11.24
8.2/선사와 첨단의 사이 지금의 복판에서. 궁시렁대며 떠돌다 끝내 스스로를 내던지는 누군가, 부유하다 이번에도 보기 좋게 스스로를 구해내는 현대인들.
8.2/선사와 첨단의 사이 지금의 복판에서. 먹을 것과 걸칠 것과 잠들 곳을 찾아 궁시렁대며 떠돌다 끝내 스스로를 내던지는 누군가, 죄책감과 자기연민 속에서 부유하다 이번에도 보기 좋게 스스로를 구해내는 현대인들. / 주인공이 화면 속에서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 둘이서 대화하는 롱테이크씬들이 계속 나오는데, 그냥 롱테이크도 아니고 대화로 가득가득 차있는 씬들이라 일단 배우들의 대사량이 상당했음. 또한 주인공의 업무이자 관심사인 복지 및 기부부터 해서 철학, 윤리, 역사, 전쟁, 종교, 문화, 민족 등에 관한 대화가 주절주절 이어지는데, 결국 그 끝에는 언제나 노숙인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오르솔리아의 죄책감에 대한 토로와 자기연민의 진술들이 이어졌음. 또한 오르솔리아는 그렇게 한바탕 대화를 거치며 위로도 받고, 기부도 늘리고, 즐기기도 하고, 성찰도 하고, 속죄도 하며 스스로를 구하는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해나감. 때문에 다양한 소재에 대해 롱테이크로 논하고 있는 대화씬들 전반이 단순히 연출적으로도 흥미로운 가운데 조금은 맥거핀스러워 보이기도 했고, 본론을 언급하고자 만드는 사람들이나 연기하는 사람들이나 듣고 있는 사람들이나 참 고생들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자체가 통째로 블랙 코미디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음. / 궁시렁거리면서 루마니아의 길거리를 걷는 노숙인을 몇 발짝 뒤에서 그저 지켜보고만 있는 오프닝을 비롯해 중간중간 주인공이 어딘가를 이동할 때 멀찌감치서 관찰하듯 지켜보거나 혹은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일상적인 배경을 진득하게 보여주는 등의 컷들이 수시로 보임. 차이가 좀 있긴 하지만 감독의 전작 <배드 럭 뱅잉> 속 '1부 일방통행'에서의 연출이 절로 떠올라서 새삼 감독의 색깔이 뚜렷하다 싶었고, 동시에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컷들에다 의미심장함을 담아내는 솜씨가 여전히 상당하다 느꼈음. 듣기에 너저분하고 구구절절하니 만만하게 느껴지면서도 은근 뼈가 있고, 시사하는 바가 있어 무시 못할 극중의 여러 긴 대화들처럼 카메라의 시선 역시 언뜻 일상적이고 평온한 것을 비추지만, 왠지 모르게 서늘하면서 무게감에다 위압감마저 느껴졌고, 의미심장해 보이기도 했음. / 근데 생각할수록 노숙인의 죽음이 너무 비참하고 서글프고 안타깝게 느껴졌음. 높은 곳에서 목을 매달아서 자기 몸무게로 인해 질식하는 건 최초의 결심 이후로는 자연의 힘인 중력이 거들어 주기에 온전히 자신의 의지대로 죽어가는 게 아니라고도 볼 수 있는데, 영화 속 노숙인은 바닥에 앉아서 질식할 때까지 스스로 힘을 주며 버티고 있었다는 것일 테니 죽음을 향한 의지가 숨이 넘어갈 때까지도 확고했다는 것이고, 그토록 확고했어야 할 만큼의 커다란 절망을 느꼈음을 의미하기도 함. 그가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거나 민폐를 끼치거나 곤란하게 만든 점 등은 분명 잘못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악인이라고까지 보기는 힘든 사람이 그토록 비참한 최후를 맞아야 했다는 것 자체가 사람 대 사람으로서 안타깝게 느껴졌음. 그렇기에 오르솔리아를 제외한 극중의 모두가 그의 죽음에 대해 보인 반응들, 그리고 거의 유일하게 죄책감을 느꼈던 오르솔리아마저 일련의 어떤 의식, 과정을 거친 뒤에 죄책감을 떨쳐내고 자존감을 충전하며 훌훌 털고 일상으로 복귀하려는 위선의 단면을 보여줬기에 영화의 마무리에서 헛웃음, 흥미로움 등과 함께 서늘함과 씁쓸함 또한 남았음. / 개인적으로 영화를 현실도피용으로, 문화적 유희를 즐기기 위해 보는 편이라 극영화에다 현실의 이런저런 현안들 및 지식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들을 너무 많이 때려넣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데, 이 영화가 딱 그런 유형이었음. 여러 장소들을 가만히 응시하는 의미심장한 컷들과 인물들 간의 너저분한 듯 뼈 있는 대화들 속에 현 시대의 여러 이슈들과 배경 지식을 요하는 정보들이 적잖이 포함돼 있었음. 특히 헝가리와 루마니아의 역사 및 관계 등은 영화가 꽤나 비중있게 다루는 편이었는데, 일단 대사들을 듣다 보면 대강은 파악할 수 있게 되고, 여전히 잘 모르겠더라도 그냥 거들 뿐이라 생각하며 오르솔리아의 죄책감 극복기, 자존감 회복기를 지켜보면 그 뿐이라 크게 상관 없어 보였음. 알면 아는 만큼 볼 수 있으니 좋은 거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봐도 괜찮은 그런 느낌. 덕분에 영화가 준비한 것들을 제대로 취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찝찝함 같은 게 딱히 느껴지지 않았고, 이것저것 많은 양을 밉지 않게 담아냈단 생각도 들었음. / 영화의 주제라든지, 메시지 등이야 넓은 의미에서 보편적, 전지구적으로 확장해서 적용할 순 있겠음. 허나 제목도 그렇고, 유럽 대륙 한복판에 위치한 국가 루마니아라는 배경도 그렇고, 구체적인 대화의 내용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이곳과 조금은 동떨어져 있단 생각이 적잖이 들어서 막 시원스럽게 공감하고 동감할 수만은 없었음. / 지극히 일상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알고 있었는데 예고편에 왠 공룡들이 보이길래 꿈 속이나 상상 속에서 등장하는 판타지 요소들인 줄 알고 살짝 골치아파질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조금은 경계하고 우려했음. 허나 다행스럽게도 공룡 테마 파크 속 움직이는 모형들이었고, 어디까지나 현실의 영역이었기에 안심할 수 있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