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진격의 죽음 앞에 강해지는 진격의 엄마.

우주의 만물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고통스러운 목소리들이 들립니다. 앵무새가 날개짓을 하며 다가옵니다. 누군가는 죽여 달라고 외치고, 노인은 앵무새에게 침을 뱉습니다. 하지만 앵무새의 날개가 얼굴을 감싸자 그들은 평온하게 눈을 감게 됩니다. 한편 병원 같은 의료기기가 있는 곳, 하지만 가정집입니다. 코에 호흡기를 달고 있는 소녀 튜즈데이 앞에 앵무새가 나타납니다. 다른 사람들은 두려움에 떠는 반면, 튜즈데이는 썰렁한 농담을 합니다. 하지만 튜즈데이에게도 떠날 시간이 다가오죠. 튜즈데이는 엄마 조라와 통화를 시도하지만, 같은 시간 조라는 딸이 아끼던 바티칸 동물 인형 세트를 팔고 나옵니다. 조라가 돌아오고 앵무새가 시킨 대로 오늘 밤 죽는다고 털어놓지요. 믿지 않던 조라는 앵무새를 때려눕히고 불태우고 씹어 먹습니다. 죽음이 제거되었다고 느낀 조라와 튜즈데이는 말다툼을 벌이고, 흥분한 조라의 몸이 앵무새처럼 커지죠. 죽여 달라는 전 세계 사람들의 환청을 듣고 나서야 앵무새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조라. 딸을 등에 메고 거구의 조라는 사람들과 동물들을 찾아 나섭니다. 죽어야 할 사람들이 죽지 않으면서 세상은 아비규환이 됩니다.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달은 조라는 자신의 몸에 있는 앵무새를 소환합니다. 떠나보내긴 싫지만 사랑하는 딸을 보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소녀와 죽음을 거부하는 엄마의 이야기. 가족을 지키려는 엄마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죽음을 막으려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죠. 앵무새는 죽음, 즉 저승사자입니다. ‘제 7의 봉인’의 낫, ‘전설의 고향’과 ‘케이팝 데몬 헌터즈’의 검은 도포의 저승사자처럼 말이죠. 자연스러운 순환의 의미로 앵무새를 죽음으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죽음을 공포스럽게 묘사하지 않았죠. 괴로우면 전자 담배도 피우고 공황 장애를 겪기도 합니다. 집행자이지만 자신도 그 집행을 피하고 싶은 가여운 존재로 그렸고, 오히려 인간인 튜즈데이가 보듬었지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입니다. 튜즈데이는 죽음을 환영하는 의미로 썰렁한 개그를 하고, 딸 조라가 죽음이 두려워 전화하는 것을 회피합니다. 바쁜 척 거짓말을 하지만 윗층의 엄마 침실은 정돈되지 않은 슬픔이 느껴지죠. 슬프고 기괴해 이 영화에 도전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신’의 노릇을 한 엄마가 ‘신’이 나버렸지만, 죽음의 경건함에 마음이 흔들리죠. 죽음은 말합니다. “좋은 날은 고통이 없는 날이다.” 병마와 싸우고 괴로워하며 살아가느니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말이지만, 가족들은 동의할 수 없지요. 당사자가 아니고선 그 고통을 느낄 수 없지만, 당사자와 가족의 고통의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느낌이겠죠. 이 우울한 이야기는 약간의 희망을 말하고 있어요. 딸과의 약속은 죽음이 조라를 찾아왔을 때 녹음기처럼 재생됩니다. 혼자가 되고 살아있음이 지옥처럼 느껴졌을 때 강해지기로 한 약속을 들려주는데, 잔인하게 들춰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에게 소중하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이죠. 영화가 어둡습니다. (흥행이 안 된다는 의미죠.) 사람들은 이런 영화를 잘 보지 않아요. 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죽음에 대해 냉정하게 고민할 순간이 생기게 됩니다. 죽음을 권장하는 영화는 아니에요. 하지만 적어도 나라면, 나의 가족이라면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 당신에게 오늘은 어떤 느낌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