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션스
2026.02.05
왕조의 비극을 가볍게 소비하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좋아해서 역사와 관련된 책을 1년에도 몇 권씩 읽을 정도인데, 그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역사는 조선사라 그 분야의 책은 몇십 권 정도 읽었다. 조선왕조실록은 두 번 읽었고, 조선사 시리즈를 여러 권 읽었으며, 인물별로도 읽고, 문화별로도 읽는 등 읽고 싶을 때마다 각종 조선사를 두루 읽으려고 하고 있다. 책을 많이 읽긴 했어도 세세하게 외울 정도로 공부하는 건 아니기에 역사적 업적을 남긴 왕과 위인, 그리고 또렷하게 남은 사건만 기억하고 있을 뿐인데, 계유정난은 조선 초기 왕족의 비극사라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 왕위에 욕심을 낸 삼촌이 보위에 오른 어린 조카를 끌어내려 폐위시킨 것으로도 모자라 유배를 보내고 그곳에서 죽게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세조는 5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욕을 먹는 게 당연하다. 세조가 업적을 세우고 정치를 잘 했다고 해도 말이다. 조선사는 역사적 사료가 어마어마한 분량으로 남아 있으나 반정으로 왕이 되거나 단종처럼 권력을 쥔 자에 의해 억지로 양위하고 물러난 경우에는 실록이 그 후대 사람에 의해 집필되어 선왕에 대한 평가가 객관적이라고 볼 수가 없다. 더욱이 단종은 보위에 오른 기간이 3년으로 굉장히 짧은 터라 사료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럼에도 단종의 삶과 죽음이 비극적이라는 것만은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 비극의 역사를 영화는 너무 가볍게 소비하고 있었다. 단종은 워낙 짧은 인생을 살았기에 영화화하기 위해서 역사적 사실에 픽션을 가미한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엄흥도를 내세워 마을의 부흥을 일으키기 위해 유배자를 모셔오려는 장면에서부터 영화에 대한 반감과 거부감이 크게 생겼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유쾌하고 밝은 장항준 감독이 연출을 맡고 유해진 배우가 출연한 사극이라는 점에서부터 예상된 부분이지만, 이렇게까지 코믹하게 끌고 갈 줄은 몰랐기에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비교하는 건 지양하려고 하지만 역사에 픽션을 가미한 영화 중에서 <광해, 왕이 된 남자>나 <관상>을 좋게 보는데, 그 이유는 두 작품은 역사적 사실에 가상의 인물과 코믹한 요소를 섞었음에도 만듦새가 좋고 의미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왕과 사는 남자>는 비극의 역사임에도 톤이 한없이 가벼워서 취향에 맞지 않아 시작부터 아쉬움을 느껴야만 했다. 더구나 후반에는 비극만을 강조하여 끔찍해 마지않는 신파로 이어지고 말았다. 코믹 신파 사극은 명절 특수를 노리기에는 더할 나위 없겠지만, 내 취향에는 전혀 맞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