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폼에 살고 폼에 죽고

트렌치코트를 입고 페도라를 눈썹 위로 비껴 쓴 알랭 들롱의 비주얼만으로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무심하게 걷기만 해도 멋이 흘러넘쳐서 속으로 감탄이 절로 나왔다. 비정한 청회색 도시를 홀로 살아가는 주인공의 태도가 곧 서사가 되는 이 작품에서, 배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정교한 미장센이다. 암살자 '제프'는 자신만의 철저한 규율 속에 갇힌 인간이다. 외출 전 페도라 챙을 매만지며 각도를 조절하고, 꾸러미의 수많은 열쇠를 하나하나 끼워보며 차를 훔치고, 번호판을 교체한 뒤 알리바이를 만들러 가는 일련의 루틴은 그에게 있어 하나의 신성한 의식이다. 하지만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조금만 건드려도 무너질 것처럼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특히 방에서 키우는 카나리아의 울음과 날갯짓만으로 외부의 침입을 감지하는 장면은 냉혹한 킬러의 이면에 있는 극도의 예민함과 고립감을 날 선 감각으로 전달한다. 제프는 자신의 시스템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 그것을 고치려 하기보다 시스템과 함께 사라지는 쪽을 택한다. 타협 없이 스스로 설계한 고독 속에서 파멸을 맞이하는 그의 마지막 선택은 자신만의 미학적 원칙을 완결 짓는 최후의 공연이다. 고독은 그를 지키는 갑옷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를 가두는 감옥이 되어 허탈한 끝을 향해 걸어가게 했다. 그런 마지막이 과정만 있고 목적이 없는 삶을 살아온 자답다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