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8.7/무려 고작 7년을 소분해서 거기에 남겨두고, 저기에 버려두고, 여기에 담아두고, 내 자리를 채워나갈 당신에게도 조금 나눠드립니다.

8.7/무려 고작 7년을 소분해서 거기에 남겨두고, 저기에 버려두고, 여기에 담아두고, 내 자리를 채워나갈 당신에게도 조금 나눠드립니다. / 떠날 사람은 복잡한 심경을 안고서 홀연히 떠날 테고, 남겨진 이들은 시원섭섭함을 뒤로한 채 여전한 일상을 살아갈 것이고,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은 그 모든 새롭고 두렵고 떨리는 것들 속에어 떠난 이의 자취를 훑을 것이고. / 베를린에서 헤어졌던 구 남친을 굳이 우연히 마주쳐서 후련한 결말 대신 또다시 감정을 쏟아내고, 같이 친하게 지내온 룸메가 자기 대신 집에 들어갈 낯선 한국인과 금세 친해져 있으니 괜히 성질을 내며 티셔츠도 줬다 뺐고, 한국에 있는 엄마와 통화를 하다가 습관처럼 또 짜증을 내버리고, 급기야는 자기 송별회에 온 윤정에게 무안을 주고 친구들을 향해서도 급발진하며 쌍욕을 박고서 자리를 박차고 나와버림. 7년 간의 시간을 뒤로한 채 떠날 예정인 은하가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못난 모습들을 보여주는데, 비호감스러우면서도 충분히 납득이 되고, 은근 공감도 좀 되는 듯했음. 7년 동안 그곳에서 함께 꿈을 키워나가며 사랑을 나눴던 구 남친은 역시나 쌀쌀맞고, 자신이라서 그토록 친근하고 살가운 줄 알았던 룸메는 쌩판 낯선 이와도 금세 친해져 있고, 내가 떠난다는 데도 친구들은 아무렇지 않게 평소와 다름없어 보이며, 어디선가 갑자기 튀어나온 윤정이라는 여자가 떠나는 자신의 자리를 꿰차는 듯보이니 싱숭생숭할 수밖에 없을 테고, 구 남친과 룸메, 윤정과 현지의 친구들을 향해 은하가 느끼는 복잡미묘한 감정도 충분히 그럴 만하겠다 싶었음. / 영화 곳곳에 담아낸 베를린의 낯설지만 일상적이며 평온한 풍경이 기억에 남았음. 무려 7년 동안 살아온 은하의 기억과 추억이 곳곳에 묻어있는 정겨운 터전인 동시에 그런 은하가 떠난 뒤에도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할 터인 야속한 이국의 땅이기도 하며, 이제는 은하 대신 윤정을 품은 채 또다른 이야기의 배경이자 무대가 될 예정인 곳. 베를린이란 공간이 주인공의 심정과 감정에 호응하며 함께 서사를 만들어주는 느낌마저 들었고, 영상미와 서사적 기능 두 가지를 동시에 잡아낸 사례랴 생각도 들었음. / 오프닝부터 중간중간 수시로 들려온 몽환적이면서 서정적이고 아기자기한 느낌의 음악이 인상적이었음. 왠지 모를 쓸쓸함과 아련함을 자아내며 낯선 이국의 땅과 그 곳을 걷고 있는 초면의 주인공 캐릭터에게 속성으로 적응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감성을 충전시켜주고, 분위기를 귀띔해주는 듯했음. / 은하의 내레이션으로 수미상관을 이루는 오프닝과 엔딩도 인상적이었음. 같은 대사가 그대로 반복되지만 앞에선 작별을 앞두고 아직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이의 싱숭생숭함, 쓸쓸함 등이 묻어났다면, 뒤에선 마침내 어느정도 털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준비를 마친 이의 시원섭섭함과 후련함이 담겨있는 듯했음. // [21회 미쟝센단편영화제/고양이를 부탁해/넷플릭스 수상작 상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