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라씨에이
2026.06.16
8.5/어찌됐건 '가수들'.
8.5/어찌됐건 '가수들'. / 왕년에 반짝 잘나갔고, 어쩌다 불의의 잘못을 저질렀고, 그렇게 동병상련들 중에서도 눈에 띄게 초라해졌고, 지금은 사람들이 못 알아볼 정도로 잊혀졌고, 그럼에도 다시 뜨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악했고, 재기의 발판에 발가락 하나 간신히 걸쳤고, 어찌어찌 재기한 후에도 딱히 잘 나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꿈과 팬과 그 시절을 지켜냈기에, 녹록지 않을 그 판에 다시금 뛰어들었기에 어찌됐건 가수들, 여전히 가수들. / 배우 오정세 활용도가 가히 극에 달한 영화였음.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 가운데, 코미디 파트에 있어선 사실상 원톱의 지분 및 활약을 보여주며 영화의 웃음 전반을 하드캐리해줬음. 초반에는 되도 않는 실력파 발라드 가수 컨셉을 뻔뻔하게 밀어붙이더니 이후 부드러운 감성 발라드 가수의 정체성과 유해 조수를 잡고 다니는 거친 포수의 정체성이 사이에서 자아가 충돌하며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경찰 체포에 대한 강한 두려움과 트라우마로 인해 폭주도 하고, 간신히 선 재기의 무대 위에서 노래와 구토를 일 대 일의 비율로 선보이는 더럽게 웃긴 난장판을 보여주기도 함. 그리고 막판엔 기어이 트라이앵글의 새 멤버로 영입돼서 활동을 이어나가는 썩 다행스럽고 골 때리는 후일담을 전하며 끝까지 안심할 수 없는 병맛 웃음을 선사해줬음. 막 오버스럽거나 애쓰는 느낌 없이 조곤조곤 혹은 중얼중얼 거리면서 웃음을 유발해내는 오정세 특유의 스타일을 적극 활용해서 성공적인 코미디를 완성시켰음. / 뇌리에 확 꽂히는 직관적인 작명에 개성 확실한 컨셉들, 치렁치렁 화려하거나 과한 스타일, 지금 보면 촌스럽고 투박해 보이는 당시 음악방송 특유의 화면 연출, 모르고 들으면 정말 당시에 나왔다고 착각할 것 같은 주인공들의 노래 등등, 초반 주인공들의 과거 이야기를 전하면서 2000년대 초쯤의 가요계 풍경을 상당히 그럴 듯하게 재현해놨음. 더불어 잠깐씩 스쳐지나갔던 길거리의 풍경 역시도 시대 고증을 고려해서 나름 그럴 듯하게 담아낸 듯보였음. 요즘도 길을 가다가 가뭄에 콩 나듯 볼 수 있는 파란색 줄무늬의 구버전 sk텔레콤 간판이나 연식 있어 보이는 오래된 식당 간판 등, 최대한 예전 느낌을 물씬 풍길 만한 곳들을 엄선한 듯했고, 동시에 요즘의 흔적이 덜 느껴질 만한 곳들을 고르려 노력한 티도 났음. / 얼추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쯤의 가요계 풍경을 다룬다고 하기에 당시 활동했던 실제 가수들의 카메오 출연이 적잖이 있을 줄 알았고, 카메오 출연의 반가움을 당시를 재현하는 데에도 좀 보탤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런 류의 카메오 출연은 없었음. 대신 미술, 음악, 분장, 편집 등, 당시의 컨셉 및 스타일을 재현하기 위해 꽤나 공을 들인 듯보이는 영화 자체의 연출만으로 기어이 그 시절의 감성 및 향수를 자아내는 데 성공했음. 뭔가 카메오와 같은 찬스, 치트키에 기대지 않고 정공법을 택해서 기어이 목표를 달성해낸 느낌이라 패기 같은 게 좀 느껴졌고, 엔딩 크래딧과 함께 틀어준 극중 주인공의 그룹 트라이앵글의 뮤비 및 앵콜 무대를 보면서 영화가 꽤나 작정하고 준비했구나 싶어서 그 패기와 실력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음. / 만족스럽게 웃겨주는 와중에 나름 그 시절의 감성을 자극하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기어이 소정의 감동까지 찔끔 전해줬음. '팬이 아니어도 저장'한다는 뜻의 '팬아저'라는 줄임말처럼 당시 너무 어렸기에 딱히 그 시절을 만끽하지 못했음에도 이 영화가 담아낸 그 시절의 흔적들이 충분히 당시의 감성을 자극하고 향수를 불러일으켜주는 듯했음. 그냥 영화 속에서 창작된 가상의 팀이며, 서사래봤자 초반의 과거 파트에서 제시된 것들이 사실상 대부분이고, 극중 주인공들의 전성기 시절 가요계의 풍경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 애정이나 추억을 크게 갖고 있진 않은 편이지만, 그럼에도 뭔가 시대를 관통하는 공통적인 감성까지 영리하고 디테일하게 잘 건드렸다 싶어서 괜히 반갑고 두근거리고 아련하고 여운도 슬쩍 남고 그랬음. 잘은 몰라도 당시에 청소년기, 청년기를 보냈던 세대에게는 더욱 남다르게 와닿을 것 같기도 했음. / 전반적으로 유치하고 병맛스러운 말장난 및 과장된 슬랩스틱을 통해 웃기는 스타일이었는데, 가끔 그 정도가 심해지거나 오버할 때에도 배우들의 기세 및 매력이 단점들을 충분히 커버해준 덕에 거부감이 들 정도의 선은 결코 넘지 않았음. 뭔가 극중의 모두가 언제든지 코미디에 뛰어들 준비가 돼있는 듯한 느낌인 데다, 어이없게 웃겨주는 스타일에 배우들도 제법 겹치는 편이어서 한국 코미디 장르의 GOAT급 작품인 이병헌 감독의 <극한직업>이 종종 떠오르기도 했음. 그리고 무엇보다 오정세 배우가 여러 코미디 영화 속에서 짤막하게 보여줬던 씬스틸러, 치트키급의 활약을 여기선 높은 빈도 및 밀도로 선보여준 덕에 수시로 빵빵 터졌고, 내내 실실거리며 즐길 수 있었음. / 강동원은 비중 및 분량이 가장 큰 주인공으로서 코미디적으로나 드라마적으로나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게 무난한 활약을 펼치며 극을 안정적으로 끌어갔음. 엄태구는 주연급 캐릭터들 중에선 가장 과하단 느낌이 들었으나 그래도 너무 막 나가진 않아서 밉거나 거부감이 들진 않았음. 박지현도 까칠하지만 당찬 성격의 캐릭터를 맡아 강동원처럼 무난하고 안정적으로 소화하며 나름대로의 매력도 슬쩍 내비쳤음. 사실 오정세 배우의 대활약에 비해 주인공 3인방 배우들의 활용력이 성에 차지 않긴 했지만, 그래도 다들 괜찮은 케미를 만들어내긴 했고, 기본적인 기대치만큼의 연기력, 매력 등은 충분히 보여줬다 싶었음. / 막판 우여곡절 끝에 주인공들이 무대를 끝마치니 그들을 의심하던 관객들이 태세 전환하며 열띤 성원과 함성을 보내는데, 좀 비현실적, 작위적으로 느껴질 뻔했음. 리더는 노래가 끝나고도 헤드 스핀 뺑뺑이를 계속 돌고 있고, 래퍼는 간주마다 자꾸 자기 이름 꾸역꾸역 넣은 시끄럽고 산만한 랩을 뱉어내며 오디오를 굳이 꽉꽉 채우는데, 솔직히 그런 모습을 보고도 관객들 반응이 좋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에 가깝게 느껴졌음. 그래도 그나마 PD가 그걸 보며 나름 현실적인 리액션을 날려준 덕에 비현실과 현실감 사이의 균형이 어느정도 유지될 수 있었고, 막판 감동과 여운도 무리없이 전달될 수 있었음. 더불어 최성곤을 새 멤버로 영입한 주인공네 팀이 대표가 된 변도미의 지휘 아래 근근이 활동을 이어나간다는 병맛스러우면서도 은근 현실적인 마무리까지 보여준 덕에 찝찝함도 딱히 남지 않았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