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케빈브라이언
2026.07.25
잘 벼려진 칼을 스스로 부러뜨리고, 추억이 가득한 피자집으로 떠나는 극한의 모험기.
■ 소리를 내는 순간 끔찍한 괴물에게 사냥당한다는 설정. 전작들이 구축해 놓은 이 유일무이한 서스펜스는 원래 관객의 숨통을 조이는 최고의 무기였다. 거대한 대도시 뉴욕이 순식간에 침묵에 갇히고 모든 연결이 끊기는 순간까지는, 마땅히 기대해야 할 장르적 쾌감과 극한의 긴장감이 도시에 가득 차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콰이어트 플레이스 : 첫째 날>이 진짜 목적으로 삼은 것은 거대한 재난 속 피비린내 나는 생존기가 아니었다. 종말이라는 극단적인 배경을 빌려와, 한 인간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끝내 움켜쥐고 싶어 하는 지극히 사적인 소망을 조명하고자 했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온 아수라장 속에서 주인공을 움직이는 힘은 거창한 탈출이나 생존의 욕구가 아니다. 그저 잊고 지냈던 추억의 장소로 걸어가 작은 피자 한 조각을 입에 넣는 것. 그리고 그 막막한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타인과 숨죽인 채 체온을 나누고 눈빛을 교환하는 순간들이다. 소음이 사라진 도시에서 역설적으로 인물들의 서글픈 온기와 살아있음의 감각은 더욱 도드라진다. 문제는 이 감성적인 드라마가 '콰이어트 플레이스'라는 이름, 그리고 '첫째 날'이라는 타이틀과 지독하게 겉돈다는 점이다. 관객이 원했던 건 뉴욕 한복판이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 소음이라는 제약 속에서 괴물과 어떻게 사투를 벌이는지 보여주는 팽팽한 장르적 재미였다. 그러나 영화는 재난의 혼란을 다루는 대신 뜬금없는 신파와 힐링 드라마의 궤도로 이탈해 버린다. 긴장감은 맥없이 풀어지고, 인물의 행동은 아포칼립스 상황과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답답함만을 남긴다. 기존 시리즈가 가진 압도적인 장점과 '첫째 날'이라는 흥미진진한 판을 스스로 내던져버린 어설픈 시도다. 장르 영화로서 마땅히 보여줬어야 할 직관적인 재미를 외면한 채 감성 놀이에만 몰두한 결과, 영화는 승자 없는 허탈함만을 안겨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