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7.9/생을 부여하고 삶을 앗아갔거나, 묵묵히 버텨 내며 감당해왔거나. 모두를 향한 비극 속 가족이란 이름으로.

7.9/생을 부여하고 삶을 앗아갔거나, 묵묵히 버텨 내며 감당해왔거나. 모두를 향한 비극 속 가족이란 이름으로. / 당최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하며 수십 년을 주춤했을 그 심정이 납득되긴 하면서도 결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을 어느 가족 구성원의 내부고발. 당사자 없이 되짚어보는 무상한 회고록. / 결코 악마가 아니며, 당연히 악인이라 볼 수도 없을 누군가의, 당신의, 나의 가족이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벌여왔던 일들. 오프닝부터 한동안 이어진 감독 본인의 내레이션 속 설명과 가족들의 사진만 보고선 굉장히 완고하고 독선적이며 고집불통인, 여러 매체에서 부정적인 부모님상의 전형으로 묘사되는 그런 류의 부모님들이 등장할 것이라 예상했음. 허나 영상을 통해 처음으로 마주했던 그들은 예상과는 달리 보통의 부모님들과 별 다를 바 없는 평범하고 무던한 모습이었음. 아들과 스스럼없이 소통하고, 자식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중년이 된 딸의 발작을 묵묵히 감당하고, 가족들이 모여 나들이도 가고, 새해에는 함께 기도를 올리고, 다같이 둘러앉아 대화도 나누는 단란한 여느 가족의 모습들. 물론 노년에 접어들며 과거보단 한풀 꺾였을 순 있겠으나, 그래도 젊은 부모였을 적의 위세나 기세가 간 데 없어진 것은 아닐 테고, 군데군데에서 왜곡된 인식, 충돌, 억압, 독선 등의 단면이 충분히 엿보이긴 했기에 뒤로 갈수록 그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연유가 납득되는 듯했음. 악의 평범성이란 거창하고 엄중한 개념 대신 평범 속의 악성, 보통 속의 모순쯤에는 해당되지 않겠나 싶었음. / 지금과는 다른 시간대에 벌어졌던 스크린 너머의 일이며 빙산의 일각이나 다름없을 극소수의 사례일 텐데도 보면서 순간순간 얼어붙게 되는 지점들이 더러 있었음. 때문에 바로 눈 앞에서 그 모습들을 일상처럼 지켜봤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했을 것인지 결코 장담할 수가 없었고, 어쩌면 그들도 오랜 시간 동안 버텨 내며 감당해온 것일 지도 모르기에 감히 그녀의 가족들을 섣불리 재단하고 평가할 수도 없었음. 분명 감독을 포함한 가족들 모두 가해자이자 방관자로서 기능해왔고, 그로 인해 수십 년 치의 삶이 통째로 뭉개져버린 명백한 피해자도 발생했지만, 그럼에도 지극히 제한적인 몇몇 부분에서의 뚜렷한 과오를 짚어보는 것까지가 당사자 아닌 제 3자이자 외부인로서의 필연적인 한계라 느껴졌고, 허무와 무기력과 비겁한 안도가 동시에 밀려들었음. / 세상엔 별의별 일들이 다 있고, 이런저런 삶들이 존재할 테지만, 그녀의 삶은 더더욱 기구하고 안타깝고 부당하게 느껴졌음. 물론 자신의 삶에 대해서 후회하는 것도, 만족하는 것도 결국엔 본인의 몫인 지라 감히 함부로 판단할 순 없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고, 내가 겪은 일이 아님에도 잃어버린 그녀의 수십 년 치 삶이 너무 아깝고 억울하게 느껴졌음. 근데 또 이 사단이 벌어지게 된 원초의 의도 속에 어리석음, 경솔함, 아집, 책임 회피 등등이 도사리고 있을지언정 결코 악의까진 느껴지지 않았기에 너무나도 통탄스럽고 야속한 비극이란 생각이 들었음. / 오프닝 속 딸의 조현병을 무려 '못된 짓'이라 칭하는 어머니의 절규를 들으며 본인도 좋아서 그리 된 게 아닐 텐데 아무리 속상해도 너무한다, 좀 심하다는 생각이 절로 스쳤음. 허나 그 가족의 자초지종을 어느정도 파악하고 나니 그저 그 자체로 모두를 향한 비극이었겠다 싶었고, 앞서 했던 생각을 조심스레 회수할 수밖에 없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