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태양 아래, 거대하고 완벽한 연극 무대 위 영혼 없는 꼭두각시.

■ <태양 아래>는 북한의 참상을 은밀히 고발하는 전형적인 몰래카메라 방식의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당국의 정식 허가와 철저한 감시라는 제약을 역이용해, 선전용으로 완벽하게 조작된 일상의 뒷모습을 그대로 담아낸다. 카메라를 끄지 않고 '컷' 이후의 재촬영과 대사 지도 과정을 그대로 노출함으로써, 다큐멘터리의 탈을 쓴 차가운 잔혹극을 완성한다. 그 정교한 연출의 목적은 단 하나, 체제의 우수성을 과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가리키는 진실은 거창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완벽히 통제된 화면을 통해 체제가 개인의 삶과 일상을 어떻게 침범하고 집어삼키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거대한 거짓의 장막을 걷어낼수록 드러나는 것은 시스템의 위대함이 아니라, 그 안에서 철저히 소외된 인간의 모습이다. 화면 너머로 전해지는 정서적 아픔은 지독하게 사실적이다. 거대한 무대 한가운데 놓인 여덟 살 소녀 진미의 지친 눈빛과 기계적인 미소는 지켜보는 내내 깊은 불쾌감과 답답함을 안긴다. 천진난만해야 할 아이에게서 유년의 자유를 박탈하고 그 위에 인공적인 행복을 강요하는 모습은, 그 어떤 직접적인 폭력보다 서늘하게 가슴을 후벼판다. 하지만 폭로 방식의 윤곽이 명확해진 이후로는 유사한 패턴이 반복되며 관객에게 구조적인 피로감을 남긴다. '세트장'이라는 장치가 주는 충격이 지나가면 지루함이 밀려오고, 카메라가 철수한 뒤 북한에 남겨졌을 아이와 가족의 안전에 대한 윤리적 찜찜함도 완전히 털어내기 힘들다. 메시지의 선명함과는 별개로, 감상 과정 자체가 유쾌할 수 없는 명확한 한계를 지닌다. 체제라는 거대한 거짓에 대한 신선한 고발이지만, 지켜보는 일 자체가 정서적 고문이자 피로로 다가오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