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수리남영역
2020.10.03
스포일러 주의!
에놀라 홈즈는 왜 자꾸 카메라를 쳐다보는가
1. 영화보고 글 쓰는 것을 즐기고 시나리오 공모전에도 글을 내본 적이 있지만 시나리오를 정식으로 배워본 적은 없다(순전히 독학으로 쓴 적은 있다). 그래서 시나리오 작법에 '제4의 벽'이라는 게 등장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 단어를 처음 들은 것은 '데드풀'에서다. 제4의 벽에 제4의 벽을 더해서 '제16의 벽'을 깬대나 어쩐대나 하는 정신없는 대사였다. 그렇게 그 단어를 처음 듣고 이해해보니 대충 어릴때 뭣 모르고 접했다가 충격과 공포를 받은 고다르의 영화들이 떠오른다('데드풀'에서 고다르의 흔적을 느꼈다는 개소리는 아니다). 누벨바그는 프랑스 68혁명과 함께 영화 역사의 흐름을 바꾼 중요한 사조지만 그로부터 50여년이 지난 지금은 세계영화사 한쪽 귀퉁이에 형광펜으로 밑줄 긋고 외워야 할 단어에 불과하다. 누벨바그를 낡았다고 한다면 '제4의 벽'에 대한 정의도 당연히 낡았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변두리에 사는 16살 철부지 소녀는 내내 카메라에 대고 말을 건다. 나는 왜 이 아이가 영화 내내 관객과 영화적 거리두기를 시전하는지 잘 모르겠다. 관객이 특정인물에 이입하는 것을 막고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길 바라는 것일까? 그러기에는 관객이 사건에서 물러나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제4의 벽'을 깨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관객에게 "이것은 영화다"라고 주입시키는 것이다. 관객이 영화에 이입하지 않고 영화로부터 한발 물러나게 만드는 것은 영화가 가진 어떤 것을 객관적으로 보길 바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무려 셜록 홈즈(헨리 카빌)의 여동생 에놀라 홈즈(밀리 바비 브라운)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사건을 해결하는 수사극이지만 관객은 사건에 개입할 수 없다. 그렇다면 대체 관객은 여기서 무엇을 객관적으로 봐야 할까? 3. 이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에놀라 홈즈'의 존재에 대해 따져보자. 셜록 홈즈는 영국의 작가 아서 코난 도일에 의해 창조된 인물이다. 영국의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탐정 캐릭터로 이후 미국과 일본 등 세계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공식적으로 셜록 홈즈의 가족관계는 형인 마이크로프트 홈즈뿐이다. 에놀라 홈즈는 2006년 낸시 스프링어라는 작가에 의해 탄생된 캐릭터다. 우선 '에놀라 홈즈는 셜록 홈즈의 알려지지 않은 여동생'이라는 설정이다. 게다가 작가도 다르다. 간단히 말해 이것은 셜록 홈즈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헌정소설이다. 공식적으로 슈퍼맨에게 가족은 크립톤 행성에 두고온 친부모와 지구의 켄트 부부뿐이지만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사촌동생 '카라 조엘'과 같은 셈이다. 4. 어쨌든 그런 녀석을 영화화하겠다고 과감하게 뛰어든 밀리 바비 브라운과 그 언니 페이지 브라운(두 사람은 이 영화의 제작에 참여했다)에게 박수를 보낸다. 대체 에놀라 홈즈가 왜 자꾸 관객에게 말을 거는지 이해하기 위해 나는 이 브라운 자매들이 대체 왜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려고 했는지 따져보려고 한다. '에놀라 홈즈'의 원작이 되는 '사라진 후작'을 읽어보진 못했다. 그러나 영화 '에놀라 홈즈'가 하려는 이야기는 대단히 명확하다. "뭐야 그냥 흔한 PC주의잖아"라고 말할 수 있지만 최근 본 몇 개의 영화들('미녀 삼총사3', '버즈 오브 프레이:할리퀸의 황홀한 해방')에 비하면 '에놀라 홈즈'는 한결 세련됐고 진지하다. 이 이야기는 '정말로 그랬을 것 같은' 시대에서 '정말로 그렇게 살게 되는' 주인공 소녀과 그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다. 19세기 영국에서 가장 진보적 사고를 하던 여성과 그녀의 딸이 이 이야기의 중심인 셈이다. 여기서 여성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운동은 실제 페미니즘 운동의 기반이 된다. 거기에 폭탄테러까지 등장했는지는 페미니즘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5. 때문에 '에놀라 홈즈'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적어도 '미녀 삼총사3'이나 '버즈 오브 프레이' 같은 후진 결과물보다는 세련되고 쉽게 페미니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정말로 그렇게 살았을 것 같은 시대에서 그렇게 사는 인물들이 등장하니 반박의 여지가 적어진다. 그러면서 이 영화는 '19세기에 억압받으면서 사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집중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무려 홈즈 가문의 피를 이어받은 에놀라 홈즈다. 이 영화는 억압을 보여주는 대신 스스로 억압에서 벗어나는 에놀라의 모습을 보여준다. 때로는 튜크스베리 자작(루이스 패트리지)에게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지만 유약한 자작이 위기에 빠질때마다 그를 구하는 것은 에놀라였다. 에놀라는 19세기 영국에서 스스로 자신을 구하고 가치를 증명한 여성이다. 그 이름이 왜 'ALONE'을 의미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도움은 받지 않는다는 취지다. 6. 영화가 시종일관 '제4의 벽'을 깨면서 관객과 거리를 둔다. 그 결과 관객이 가장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사람은 에놀라 홈즈다. 에놀라 홈즈는 영화 내내 카메라를 쳐다보고 관객에게 말을 걸지만 그 결과는 에놀라 홈즈를 스크린 너머로 밀어내게 한다. 이로써 에놀라 홈즈는 '혼자'가 된다. 에놀라 홈즈는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지만 관객의 지지를 바라지 않고 있다. 영화는 관객이 이 아이를 '셜록 홈즈의 여동생', '16살 소녀'로 바라보는 대신 '19세기 영국을 살았던 주체적인 탐정'으로 봐주길 바라고 있다. 즉 에놀라 홈즈와 셜록 홈즈를 동등한 위치에 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는 '제4의 벽'을 깨 관객을 영화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그 결과는 성공적이다. 에놀로 홈즈는 영웅시되지도 않았고 탐정의 위용을 갖추지도 않았다. 시대를 살았던 숨은 천재가 됐으며 '주체적 여성'의 위치를 '스스로' 얻었지만 '여성성'을 강제로 부여받진 않았다. 에놀라 홈즈는 자기 의지대로 사는 탐정이다. 7. 영화가 '제4의 벽'을 깬 의도는 충분히 이해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에놀라 홈즈'는 대단히 잘 만든 영화같지만 큰 결점 하나가 눈에 띈다. 이 영화는 스스로 프렌차이즈가 될 자신감이 결여돼있다. 낸시 스프링어의 소설 '에놀라 홈즈'는 '사라진 후작'을 포함해 6편이 있다. 즉 마음만 먹으면 6개의 시리즈를 내놓을 수 있다는 의미다. 영화가 공개된 직후 넷플릭스에서 큰 화제를 모은 걸 봤을 때 속편을 만들 여지는 충분했다. 그러나 영화는 속편으로 향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속편까지 끌고 갈 수 있는 몇 개의 '떡밥'을 모조리 영화에서 해소시켜버리기 때문에 이야기는 다소 산만해진다. 예를 들어 에놀라가 어머니를 찾다가 갑자기 튜크스베리 자작을 찾기로 마음을 바꾼 대목은 개연성애 대단히 결여돼있다. 이 지점에 충분히 논리를 더할 수 있었으나 그랬다가는 영화 안에서 모든 사건을 해소하기 어렵다. 속편을 위한 떡밥으로 남겨두려는 생각은 꿈에도 할 수 없다. 이야기를 과감하게 밀어붙이고 미처 다 전달하지 못했다면 속편으로 이어가겠다는 뚝심이 필요했다. 이것은 에놀라 홈즈의 이야기다. 이 소녀가 사건 하나만 해결했을리 없다. 8. 결론: 이야기에 과감하지 못하고 다른 것에 과감한 영화다. 그것은 이 영화는 이야기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와도 같다. 뭔가 '할 말이 있어서 만든 영화'처럼 느껴진다. 제작자(producer)에 밀리 바비 브라운과 그녀의 언니 페이지 브라운이 이름을 올린 것은 두 사람이 이야기에 대해 느낀 바가 확고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나는 이 영화가 시리즈로 쭉 나오길 원한다. 그러나 제작자가 그럴 의도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에놀라 홈즈'의 시청자 수가 잘 나온다면 넷플릭스가 먼저 속편을 제안할 것이다. ...그걸 기다려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