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타잔
타잔

타잔

2018.01.06

<허삼관 매혈기>라는 위화의 소설은 정말 대단했다.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개방성과 위트는 물론, 시대적 상황까지 몰고 가는 해학은 고대소설속 등장하는 그 멋들어짐 까지 존재 했다. 소설이라는 장르에서 풀어낼 수 있는 것들은 모두 풀은 것이 아니였을까 생각했다. '대세배우' 하정우가 이 원작을 영화로 만든다는 말에 하정우의 <허삼관>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과연 이 위화의 색깔을 어떻게 살릴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충분히 재미있고 기발한 영화적인 소설이긴 하지만 중국색이 강해서 다른나라에서 영화로 풀기는 쉽지 않은 소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정우의 <허삼관>이 정말 기대만큼, 혹은 원작소설 이상으로 환호할 수 있다면 그것은 순전히 각색의 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하정우의 <허삼관>은 그가 '대세배우'라는 타이틀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만든다. 연기를 잘하는 것이 좋은 연출을 할 수 있는 좋은 기반이 되는 것에는 충분히 동의 하지만, 이제 두편의 영화를 만든 신인감독 하정우는 '아직' 연기자로만 보인다. <허삼관>에서 두 가지중에서 선택 했을 것이다. 원작 그대로 갈 것이냐? 아니면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조금더 붙이고 빼서 새롭게 해석할 것이냐? 순전히 감독의 몫이고 감독 하정우는 전자를 택했다. 중국색이 아주 강한 이 이야기를 배짱좋게 밀어 붙인 것이다. 그러나 그 선택에 손을 들어줄 수는 없을 것같다. 그가 선택한 결과물은 박찬욱의 끝내주는 각색이 돋보였던 <올드보이>까지 상상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사람도, 상황도, 이야기도 만들었을 것이다 라고 상상했는데 하정우는 그 어떤 새로움도 포기 한채 원작을 그대로 스크린에 '재현' 하는데만 충실하다. 초반에 이어지는 원작자인 위화의 독특한 대사빨과 상황들로 계속 소설을 '재현'하면서 관객들은 간간히 박장대소를 하며 즐거워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감독의 힘이 아니라 순전히 원작의 힘으로 느껴진다. 감독이 무언가를 했어야 하는데 그 무언가는 보이지 않고 바둑을 복기 하는 것 처럼 책을 그대로 '재현' 해주기만 한다. 그래서 <허삼관>은 하정우의 영화가 아니라 위화의 영화다. 전반부의 박장대소를 실실거리면서 후반부로 이어지면 영화가 갑자기 바뀐다. <허삼관>이 아니라 <저 하늘에도 슬픔이>로 변한다. 전반의 그 뻔뻔하게 밀어붙이는 뚝심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갑자기 인물들이 돌변하면서 연신 울고 불고 짠다. 70년대 가족 신파로 돌변하는데 보는 입장에서는 아연실색하다. 그들이 아무리 울고 불고 해서 그들의 눈물에 결코 동의 할 수 없는 상황이 되 버린다. <허삼관>이 연기적으로도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다. 하정우, 하지원을 비롯해 하정우라는 브랜드 네임덕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마무시한' 명품 조연들이 등장하지만 잠깐만 얼굴을 비추고 사라지는 모습은 아무리 이벤트성 특별 출연이라도 그들의 얼굴이 너무 아쉽다. 하정우 감독은 배우들의 쓰임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기는 힘들 것 같다. <허삼관>이 영화적으로 아주 형편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하정우와 위화라는 브랜드가 아마 좀 많은 기대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재미있는 조합이 만들 '물건'을 기대 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천재는 없고 기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정우라는 대세배우가 그 멋진 연기에 걸맞는 멋진 연출까지 바랄 수는 있지만 현실은 하정우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직은 감독으로 흉내만 내는 수준일 수 있어도 분명 한 것은 그가 앞으로 더 영화를 만들게 된다면, 이 영화가 그가 앞으로 만들 영화에 또 다른 기반이 될 거라는 사실은 아마 틀림이 없을 것이다. 좋은 음식을 만들기 전에는 여러가지 냄새를 풍기듯이 말이다. 그가 풍기는 <허삼관>은 하정우에게 어떤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될 지 자못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