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는 동안 우리는 항상 무엇인가를 보고, 듣고, 만진다. 그것들이 단지 정보의 형태로 쌓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감각 하나하나가 고스란히 기억된다는 생각.

(...) <내 몸이 사라졌다>가 독특한 서사를 완성하는 방식은 물론 ‘손’의 시점과 기억을 만드는 것 자체에 있다. 기억이 뇌만 가지고 있는 영역이 아니라 부분적인 신체 부위 각자에게도 존재하는 것이라고 상상하는 순간 아주 새로운 종류의 일이 일어난다. 가령 ‘10대 때 잠시 갖고 있었던 꿈 하나가 지금의 나를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몰라’ 하고 문득 상상해보는 일은 이 작품이 ‘손’의 시점과 기억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제레미 클라핀 감독이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것에 관해 설명하는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나우펠’의 삶은 역동적이지도 않고 미래도 없이 무기력해보이지만, ‘손’의 여정은 해부학실 냉장고를 탈출해 주변의 여러 위협으로부터 살아남는 과정인 동시에 ‘나우펠’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것은 곧 해부될 운명을 거스르고 떠나간(잘려나간) 주인의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나우펠’을 추적하는 과정을 뜻하기에 ‘손’의 여정과 ‘나우펠’의 여정은 상반된다. 이는 ‘손’의 시점을 단지 상상하는 일을 넘어서 그 ‘손’을 가지고 있었던 ‘나우펠’의 삶 자체를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게 만든다. 감각의 기억엔 한 종류가 더 있다. ‘나우펠’이 중요하게 갖고 있는 기억들은 테이프 레코더와 마이크를 중심으로 한 갖가지 ‘소리’에 있는데, 해부학실 냉장고를 탈출한 ‘손’의 여정이 시작되는 동안 ‘나우펠’에게도 변화가 생긴다. 도서관 사서 ‘가브리엘’을 찾아나서게 되는 계기도 피자 배달을 하던 중 ‘가브리엘’과 현관 인터폰을 통한 ‘소리’로 나눈 대화였다. ‘나우펠’은 그에게 중요하게 각인된 청각을 통해 막다른 운명 앞에서 새 길을 찾고자 하고, 그동안 관객은 ‘손’의 시각과 촉각을 통해 ‘손’과 ‘나우펠’이 만나는 과정을 ‘손’의 시점에서 지켜보게 된다. 앞에서 이것이 실사 영화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이어서 다행이라는 언급을 했다. 제레미 클라핀 감독 역시 같은 말을 한다. “CGI의 도움을 받아 실사 영화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었겠지만,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한 지금의 결과물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라고. 애니메이션은 아무리 정밀하게 잘 그려도 결국 실사가 아닌 그림이기에, 현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둔다. <라이온 킹>과 <캣츠>의 사례처럼 ‘지나치게’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현실을 살고 있는 ‘나’의 삶과 ‘나’의 감각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겠다. 제레미 클라핀 감독은 ‘metaphysical’이라는 단어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설명한다. 사전이 말하는 뜻은 형이상학적인, 추상적인, 철학적인, 난해한. ‘손의 기억’이라는 발상 자체가 낯설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에 아마도 그러한 표현을 사용한 듯하다. 그러나 뇌가 몸의 주인이어서 모든 사고와 행동을 관장하는 게 아니라, 손과 같은 특정 신체 부위에게도 각자의 감각을 통한 기억이 존재할지 모른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감각은 물리적이고 꽤 구체적인 것이니까. 사는 동안 우리는 항상 무엇인가를 보고, 듣고, 만진다. 그것들이 단지 정보의 형태로 쌓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감각 하나하나가 고스란히 기억된다는 생각. 키보드에 자음과 모음 하나하나를 입력하는 내 손에게 조금이나마 더 나은 기억을 감각시키고 싶다는 생각에, 어리둥절한 채로 두 손을 새삼스럽게 바라본다.

https://brunch.co.kr/@cosmos-j/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