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좋은 액션씬 몇개와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정우성의 심리극은 볼만 했지만 이 피투성이 아수라장에 도대체 무슨 목적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악인들의 싸움에 과한 광기와 폭력만 있고 '범죄와의전쟁'같은 카리스마가 없다. -------------이 아래부터 스포주의------------- 지난 몇주간 그렇게 언플을 하고 대중의 기대치를 높인,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아수라'를 드디어 봤네요. 저 또한 정우성, 황정민, 곽도원 등의 배우들의 힘과 스타일리시하게 만든 예고편을 보고 나름의 기대는 했습니다. 하지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할텐데, 제목처럼 영화도 아수라장입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한남시장 (황정민, 주지훈 등) vs 검찰 (곽도원, 정만식 등)의 대립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주인공 역인 정우성은 원래는 황정민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하게 맡은 비리경찰입니다. 과연 정우성이 사실은 선한 사람인지는 끝까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의 악행과 죄의 동기는 가족애 (죽어가는 아내를 살리기 위한) 였고, 이것이 결국엔 약점으로 잡혀 검찰 쪽의 첩보원이 됩니다. 초반에 정우성의 이런 난처한 상황을 정립하고 영화는 그의 이중첩자로서의 위험한 밀당에 초점을 맞춰 전개를 한다. 그렇기에 영화에서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은 바로 정우성의 예측불가능한, 하지만 어느 쪽으로 기울든 납득은 가능한 심리극의 서스펜스다. 그를 끝에는 잡아넣을것이면서도 그를 착취하는 검찰을 도울 것이냐, 그에게 많은 호의를 베풀지만 언제든지 그의 목숨을 노릴 수 있는 사이코패스 시장을 도울 것이냐. 매 돌발 상황마다 우리는 왔다갔다 혼란스러워하며 점점 불안해지고 붕괴해가는 정우성의 모습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였다. 연기력은 캐스팅에서 기대한 대로 나왔다. 곽도원은 '범죄와의 전쟁'에서 보여준, 정의를 위해 불법수사도 감행하는 검사 역을 충실히 했고, 정만식도 그의 오른팔 역할을 잘 했다. 주지훈의 캐릭터에는 (후술할) 불만이 많지만, 주어진 상황에서는 배우가 점점 혼란스러워지고 길을 잃어가는 노예의 역을 잘 소화한듯하다. 정우성은 위에서 언급한 심리극을 설득력있게 전달할 정도의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지만, 몇몇 대사들, 특히 쌍욕을 남발할때, 상당히 어색하기도 했다. 황정민은 매번 웃고있지만 말은 날카로운 사이코패스를 연기한다. 이미 '부당거래' 같은 영화에서 그 또한 살벌한 아우라를 풍길 수 있음을 보였기에 이번 역할도 무난하게 소화한듯 하다. 연기를 총평하자면, 모두 훌륭한 배우고 모두 좋은 연기를 했지만, 어마어마하게 좋진 않았고, 그냥 이전에 봤던 수준의 적당한 연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목적이 과연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우선 확실한 것은 사회 고발극은 절대로 아니다. 비리 경찰, 미친 정치인, 막 나가는 검사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행동과 그들을 둘러싼 이 세계는 너무 비현실적으로 막장이다. 이 영화에서는 꽤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차로 뭉개지고, 감옥에서 칼 맞고, 주행 중 차 밖으로 내팽겨져버리고...그런데 영화에서는 이런 끔찍한 일들을 너무 무감각하게 다룬다. 중간중간에 죽는 인물들은 그저 황정민의 잔혹성을 강조할뿐, 이야기 자체에는 큰 영향을 안 미친다. 경찰 수사도 없고, 의심도 없고, 언론도 없고, 그들만의 세상에서 그들끼리 싸운다. 이런 면을 보면 사회를 반영해서 어두운 면을 들추고 그를 통해 비판적인 스토리를 짜는 고발극이 아니라, 그냥 나쁜 놈들을 가지고 피투성이 난투극을 연출하는 것이 목적인 듯하다. 그렇다면 피투성이 난투극으로서 이 영화는 볼만한가. 유혈이 낭자하는 영화가 나쁘다고 보진 않다, 아니 오히려 즐기는 편이다. 다만 이 영화는 B급 감성으로 고어함을 코믹함으로 승화시키지 않고, 그 고어함이 창의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폭력적인 장면들이 극중 인물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것 같지도 않다. 이 영화는 쉴틈없이 폭력적이다. 거의 쉴틈없이 누군가는 이 영화에서 맞거나 죽임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후반부에서 정우성은 아무 이유없이 유리를 씹어 먹고, 클라이막스에서는 복도 하나를 시체와 피의 바다로 만들어 버린다. 보통 폭력성은 시각적이고 내용적인 충격을 선사해줘야 하는데, '아수라'에서는 폭력적 장면들이 계속계속,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며, 관객들이 점점 스크린에서 벌어지는 참극에 무감각하고 무심해지도록 한다. '맨오브스틸'이나 '트랜스포머'의 과한 폭발과 액션의 향연과 비슷한 느낌이다. 홍보할 때 많은 언론들에서 이 영화와 비교한 '신세계'를 생각해보자. (신세계 약 스포일러 주의)'신세계'에서는 폭력적인 장면들이 분명 많지만, 서로서로 꽤 분리되어있고, 스토리상 영향도 크다. '신세계'에서 이정재는 그의 주변인물이 죽거나 다칠 때마다, 고립성, 이중첩자로서의 갈등과 두려움을 느끼고, 대부 스타일로 연출된 엔딩에서는 잔혹함의 몽타주를 통해 관객들에게 그가 어떤 인물로 변해버렸는지도 전달한다. '아수라'는 딱 하나, 주지훈의 죽임 빼고 나머지 죽음들은 정말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주지훈의 죽음은 무엇이냐. 영화에서는 정우성과 주지훈이 형제 사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황정민의 '너네 형제 같은 사이라며?'라는 대사 하나에서만 말할 뿐, 그 어떤 우정도, 케미도 느낄 수없는 사이다. 물론 영화 끝에서 주지훈은 황정민의 명령과 정우성과의 의리 사이를 갈등하며 정우성을 죽이는 데 망설이지만, 그 전에 그 둘이 끈끈했다는 흔적을 영화는 전혀 안 보여주고, 그냥 대사 하나와 막판에 감정폭발로 사실상 없는 관계를 관객들한테 팔려고 한다. 그리고 주지훈의 죽음으로 정우성은 드디어 황정민을 죽이러 가고 마지막 1대1 결투를 벌인다. 그래봤자 감정적인 동기가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 안 된 막판 결투고 이미 너무 많은 유혈 장면을 목격한 후라 그때쯤 나는 이미 지칠만큼 지쳐있었다. 인물들에 대해서 조금 더 말하자면, 황정민은 사이코패스, 곽도원은 폭력 검사의 메인 구도는 너무 1차원적인 악인들의 향연이다. 기본적으로 악한 사람이 주인공인데 더 악한, 악마같은 사람들이 조연으로 서있으면 그저 밑도 끝도 없이 어둡고 우울해지는 영화가 된다. '범죄와의 전쟁' 또한 부제처럼 나쁜놈들의 전성 시대를 그려 악인들만 나오는 영화지만, 그 영화는 주인공인 최민식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보고 하정우의 카리스마가 있기에 주제의식이 명확한 재밌는 범죄물이 됐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 레벨의 카리스마도, 명확한 주제 의식도 없고 그저 잔인한 장면들을 위해 영화가 존재하는 듯한, 그리고 이 캐릭터들은 그 잔인한 장면들을 위해 존재하는 인형인 듯한 느낌을 강하게 줬다. 몇가지를 마지막으로 더 언급하자면, 갑자기 폭주한 정우성과 불법 체류자들의 카 체이스는 나름 멋있는 장면이지만, 거기서 정우성이 폭주해버린 것은 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어색했다. 그리고 그 후에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두 인물들을, 다시 대부 스타일로, 죽이는 몽타주에 더 와이어의 ost가 나온 것으로 기억하는데, 리얼리즘으로 호평받은 미드의 타이틀곡이 이런 막장스러운 배경의 영화에 등장한 것이 참 아이러니했다. 막판에 복도에서의 대규모 싸움은 정말 그나마 남아있던 현실감을 박살내버리는 어이없는 전개였고, 어떠한 박진감도 느낄 수 없었던 그냥 칼빵 향연이었다. 게다가 주지훈이 총맞자마자 바로 복도 싸움 한창일 때의 아수라장으로 컷하고 다시 갑자기 죽어가는 주지훈 장면으로 컷한 것은, 그나마 있던 감정적인 씬의 흐름마저도 끊어버리는 화룡점정 같은 편집이었다. 결론적으로, 좋은 배우들의 좋은 연기, 괜찮은 액션 한 두개와 정우성의 심리극은 분명 오락적인 측면이 있었지만, 모호한 주제의식, 과하고 무의미한 폭력성과 약한 캐릭터 구성 때문에 이 영화는 즐겁다기 보단 그저 혼란스러운, 정말 아수라 같은 영화였다. 피를 이렇게 많이 쏟을 거면 타란티노처럼 즐겁게 하든가, 좀비물들처럼 극한으로 가서 마니아들을 만족시키던가, 아니면 훌륭한 영화들이 그랬듯이 유의미하게, 충격으로 다가오게끔 연출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