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타잔
2021.04.01
<약전과 창대>였다면 '더' 재미 있었을 것 같다.
현재는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된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은 미래의 시간에는 역사로 기록될 것 이고 그 역사 안에서 지금의 현재가 어떻게 평가가 될지는 시간이 지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언제나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의 몫이다. 죽어 있는 사람들의 역사를 글이나 다른 다양한 매체를 통해 기록되어 있는 것들을 보고 당시의 상황들을 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역사는 펙트이기 전에 어느정도의 예측과 상상이 가미 되기도 한다. <자산어보>는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역사속 인물인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이 신유박해로 유배를 당해 쫒겨났던 흑산도의 기록에서 시작된다. 그 흑산도에서 바다생물에 뛰어난 '창대'라는 청년을 알게 되고, 그 청년의 도움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학 전문서적으로 평가 받는 '자선어보'라는 책을 쓰게 되는 이야기다. 라고 알고 있어서 해양생물에 대한 이야기가 같이 곁들여지면서 어느 역사속에 잘 소개되어지지 않은 숨겨진 학자의 고고함을 보여주는 것이겠거니 했는데 그런 이야기 보다는 창대라는 청년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이 영화속의 '창대'에 대한 이야기는 어떠한 기록에서도 자세히 소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역사를 빛낸 위인도, 사대부집안도 아닌 흑산도에서 자란 어느 어민의 모습이였을 것이기에 그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었을 것이다. 단지, 정약전이라는 역사속의 인물이 유배되었던 역사에서 그를 '만났다'는 정도의 기록에서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그들의 관계가 재 창조 되었을 것이다. 특히, 역사이야기 라면 왠지 복잡할 것 같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나게 해준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정약용, 목민심서, 신유박해, 유배, 천주교....다양한 역사속의 키워드들이 배경이 되기는 하지만, 그러한 키워드와는 별개로 이 영화는 여느 드라마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두 남자의 '브로맨스'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한 브로맨스에서 역사에 대한 어떠한 것도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쉽고 편하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역사 영화들이 사전 지식 없이 보게 되면 이해 되지 않는 것들이 은근히 많지만, <자산어보>는 그러한 지식을 모르더라도 이해하는데, 혹은 재미를 느끼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물론, 그 키워드들을 알고 본다면 '더' 재밌고 이해가 빠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영화를 느끼는데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다. 이 영화속의 이야기가 모든 것이 역사속의 사실은 아니지만, 어떤 역사속의 사실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정약전과 창대라는 두 남자의 이야기에 집중할 뿐이다. <자산어보>는 흑백의 화면으로 만들어졌다. 덕분에 오랜만에 보는 흑백의 화면이 낯설기도 하지만, 무언가 화려한 색체속의 영화와는 색다른 감정으로 이어진다. 그러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화면에 걸맞는 이야기들속에서 사람이라는 근본의 과제를 영화로 잘 풀어 냈기 때문이다. 특히 시대극이라는 장르와 흑백화면이 묘하게 조화 되면서 이야기를 집중하는데 훨씬 더 도움이 되는 느낌이다. 바다가 배경이 되는 공간이였기에 바닷물결과 드넓은 바다의 이미지가 영화적인 조화를 이뤄나가는데 흑백 화면속의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그 바다의 색깔이 흑백의 한가지 색이 아닌 오롯한 바다의 색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면서 이 두 남자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절적한 공간적인 이미지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준익 감독이 사극영화는 확실히 잘 만든다는 느낌이다. 대부분의 사극들이 무겁게 장중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과는 다르게 이 영화 는 무겁거나 거창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없다. 그래서 관객들과의 거리는 한층 좁혀질 수 있고, 집중력도 높아진다. 장르적으로 정의 한다면, 이야기 꾼이라고 해도 충분할 것 같지만, 이 말은 사극에서만 통용됐으면 좋겠다. 그가 보여준 현대극의 이야기와 사극 안에서의 이야기는 확실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영화적인 집중력과 재미는 충분하지만 너무 쉽고 너무 친절하다는 느낌도 있다. 특히, 흑백영화에 이준익 감독을 상상할때 <동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서 그 정도의 영화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지만, <자산어보>는 그 정도의 영화적인 완성을 따라가지는 못한다. 정약전은 정약용의 형으로 역사속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창대라는 인물은 그야말로 어촌의 촌부 이기에 이름외에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순전히 창작에 의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그 두 남자의 이야기는 너무 쉽고 너무 전형적이다. 특히, 창대가 글을 배우고 싶고 사람노릇을 하고 싶다며 섬을 떠나 아버지를 찾아간 후 부터의 이야기는 너무 전형적인 배경과 사건들로 여느 사극에서 봐왔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벼슬아치들과 탐관오리들의 비리 속에서 오롯한 주인공의 모습은 티비만 틀면 나오는 어느 사극에서도 빠지지 않는 모습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 익숙한 설정안에서도 특별한 경우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 영화속에서는 그런 특별함은 찾아볼 수 없다. 그동안 흑백화면 속에서 특별함으로 채워졌던 전반부의 느낌에서 갑자기 거리가 생겨 버린다. 그래서 영화는 창대가 섬을 떠나 육지로 간 후 부터는 약간의 실망스러움도 느껴진다. 만약 이라는 전제를 달고, 창대라는 인물을 그렇게 글을 좋아하고 첩의 자식이라는 전제가 아닌 어촌의 촌부 그대로의 이미지 안에서 그들의 관계에서 영화제목 같은 물고기와 해양생물들의 이야기에 조금 더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대한민국 최초의 해양생물도감이라고 불리우는 제목에서 해양생물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쉽게 소비된 것이 여간 아쉬운게 아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영화제목이 <자산어보> 보다는 <약전과 창대>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려 보이기도 한다. 이준익 감독을 '사극 이야기 꾼'이라고 이야기 했지만, <자산어보>속에서의 섬을 떠난 창대의 이야기는 굳이 시대극이라고 불리우지 않아도 무방한 만큼 익숙하다. '그래서 결국' 다시 돌아온 창대는 이미 고인이 된 약전앞에서 눈물을 보이면서 자신을 뉘우치는 모습 역시 다르지 않다. 정약전을 통해 창대라는 역사속의 인물을 꺼내들었다. 그 꺼내든 인물의 이야기가 어디까지가 펙트 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설정에 따른 이야기는 영화만의 특권이기도 하다. 그 특권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는 있겠지만, 그 무엇 안에서는 조금 더 고민스러움이 동반 됐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