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조항빈
2021.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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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의 밤'은 제주도로 도피를 오게 된 조직폭력배가 그 곳에서 한 여자를 만나게 되는 느와르 영화다. 박훈정 감독은 다시 한번 피비린내 나는 조폭물로 돌아왔으나, 안타깝게도 '신세계'의 영광을 재현하지는 못했다. 박훈정 감독은 조직폭력배들의 거친 세상을 맛깔나게 잘 연출하는 감독임은 분명하다. 의리와 형제애로 뭉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생존과 실리를 위한 배신으로 점칠되는 조폭들의 생태계는 쌉싸름한 멋이 있으며, 찰지게 내뱉는 협박과 욕설들이 광기의 주먹과 칼질을 만나며 테스토스테론과 피가 뒤범벅이 된 아수라장을 액션 씬들 속에서 잘 그리며,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또한 바로 그런 점들이다. 생존 욕구, 복수심, 배신감, 의리 같은 상당히 단순하지만 몰입감 있는 감정선들을 적절히 섞으며, 그는 역동적으로 권력관계가 뒤바뀌는 판을 만들고, 거기에서 영화의 스릴이 많이 나오기도 한다. 영화는 엄태구, 전여빈, 이기영, 차승원, 박호산이라는 강력한 출연진의 덕을 많이 보며, 이들은 모두 각자의 역할을 최대한 매력적으로 소화한다. 하지만 이는 조폭 미화와는 꽤 거리가 멀다. 결국 이 영화는 굉장히 차갑고 허무주의적인 느와르 스릴러이며, 제주도라는 배경을 특이하게도 창백한 파랑색으로 그린 영상미는 제목의 아이러니함, 그리고 그 아이러니함이 가리키는 이 이야기와 배경의 대비를 더욱 강조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세계'가 되진 못한다. '신세계'는 '무간도'라는 나름대로 잘 정립된 이야기를 적절히 변주한 느낌이라서 기본적으로 주인공의 아슬아슬한 이중생활로 이야기를 잘 끌어갔으나, 이 영화는 주인공이 이야기를 주도하고 있지 않다. 영화의 중반부는 조연들의 수다와 계략들이 주인공과 별개로 막 돌아가고 있는 상황들을 나열하기만 하기 때문에, 주인공의 플롯으로 돌아올 때마다 영화의 전개가 급격히 루즈해진다. 두 주인공이 서로 관계를 쌓아가지만, 그 관계의 성격과 감성이 너무 애매하게 표현이 돼서 딱히 몰입이 되지도 않는데, 계속해서 보여주는 영화의 다른 플롯과의 연관성마저도 없으니,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없다. 그 시간동안은 영화에 남는 것은 그냥 차분하고 비관적인 분위기라는 허울 뿐이고, 러닝타임이 꽤나 긴 장르물로서는 꽤나 치명적인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