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수리남영역
2021.05.19
선지랑 내장 뺀 선지해장국
1. 나는 알렉상드르 아야가 공포영화의 미래라고 믿었다. 그는 '엑스텐션'과 '미러', '피라냐3D', '힐즈 해브 아이즈' 등을 만들면서 피냄새 물씬 나는 공포를 보여줬다. 그러다 이 사람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해리 포터의 머리에 뿔을 달게 하는 이상한 다크 판타지 영화를 만들었다. 한때 일본 애니메이션 '우주해적 코브라'의 실사화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블록버스터 감독이 하고 싶었나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더니 기이한 느낌의 판타지 스릴러 '나인스 라이프'를 또 만든다. 그가 2019년 만든 영화 '크롤'이 초창기 피냄새를 되찾아주는지 아직 안 봐서 모르겠는다. 그러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O2'를 보고, 여전히 그는 초창기 감성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가 지향하는 바를 모르겠다. 2. 'O2'는 가까운 미래(로 추정되는) 기억을 잃은 채 의료캡슐에 갇힌 여성(멜라니 로랑)이 탈출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영화를 보기 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라이언 레이놀즈 주연의 '베리드'다. 지하에 파묻힌 관짝 안에서 펼쳐지는 숨막히는 스릴러는 없던 폐쇄공포증도 일으킬 것처럼 강렬하다. 그에 비하면 'O2'는 썩 지낼만하다. 친절하게 대답도 해주고 능력도 탁월한 AI도 있고 캡슐의 공간도 꽤 넓다. 산소는 점점 떨어져가지만 그 데이터가 크게 긴장감을 주진 않는다. 게다가 기억을 되찾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과거 회상씬은 틈틈이 캡슐 바깥으로 나간다. 시청자가 폐쇄공포증에 걸릴까봐 영화가 지나치게 배려해주고 있다. 그 덕분에 폐쇄공간을 전면에 내세운 이 영화는 다소 심심해졌다. 3. 'O2'는 '나인스 라이프'가 보여준 실패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알렉상드르 아야는 스타일리시한 감독인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그는 피비린내 나는 장면을 꽤 세련되게 묘사하긴 했다. 그러나 그의 미장센에서 피와 내장을 뺀다면 그의 스타일은 그리 특별한 것이 없다. 말 그대로 선지해장국에 선지하고 내장 뺀 것과 같다. 그럼에도 이 감독은 자신의 스타일이 대단히 특별하다고 믿는 모양이다. 'O2'의 회상씬은 느리고 친절하다. 마치 자신의 스타일을 과시하려는 듯 보인다. 이는 '나인스 라이프'에서도 그대로 등장한 패착이다. 그걸 옆에서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건지 이번 영화에서도 반복하고 있다. 덕분에 영화는 늘어지고 지루해진다. 'O2'는 마치 '베리드'를 0.5배속으로 보는 것과 같다. 4. 이야기의 차이는 있다. '베리드'는 주인공을 가둔 빌런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나무관이 긴장감을 준다. 반면 'O2'에서는 빌런도 없고 산소가 떨어지는 과정도 친절하게 숫자로 표시된다. 이 영화가 폐쇄공간 스릴러를 지향했다면 긴장감을 줄 장치가 더 필요했다. 이를 위해 영화는 자신이 준비한 반전으로 '천천히' 전진한다. 그러나 반전 이전의 전개가 늘어지고 있는데 반전에서 다시 탄탄해질 가능성은 없다. 반전조차 늘어진다. 이런 늘어짐은 영화가 지나치게 친절하다는데서 비롯됐다. 어떤 영화들은 친절하지 않아서 이야기에 구멍이 생긴다. 그러나 다른 영화는 친절해서 재미가 없어진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베리드'나 '클로버필드'는 상황 외의 정보를 모두 차단해버린다. 관객과 주인공이 같은 양의 정보를 가진 것도 모자라 관객은 주인공보다 정보가 더 적다. 이 경우에 반전은 효과를 얻고 장면의 충격도 더 크게 다가온다. 그러나 'O2'는 친절한 영화다. 5. 그나마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다양한 해석을 유도한다. 해피엔딩인 듯 하지만 "정말 해피엔딩일까?"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이는 '인셉션'의 마지막 장면과 같은 의도다. 그러나 영화를 함께 본 지인은 "결국 해피엔딩이구나"라고 확신해버린다. 편집을 통해 여지를 남기긴 했지만 내내 친절했던 영화 덕분에 "해피엔딩이 아닐리가 있겠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건 명백한 영화의 잘못이다. 이야기와 연출에서 똑똑하지 못했다. 폐쇄공간 스릴러는 간단해보이지만 공간과 표현에 제약이 많다. 그래서 작가는 더 똑똑하게 이야기를 써야 하고 연출자는 연출의 묘를 통해 관객에게 긴장감을 주는데 집중해야 한다. 'O2'는 그 중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6. 결론: 공포영화 천재를 잃어버린 기분이다. 이건 전주 콩나물해장국 맛집인 삼백집이 프렌차이즈화 되고 맛이 변한 것 만큼 서운하다. 영화가 별로라서 화가 나는 것보다 그저 서운한 마음이 더 크다. 선지와 간·천엽이 그득한 그의 선지해장국이 먹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