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m.blue
2021.06.07
살아보겠다는 열망의 표출이라면
창문을 치우고, 빛을 깼다. 강이에게 소영은 그런 존재였다. 어쩐지 말이 안 되는 문장도, 기어코 그럴듯하게 재현해내고야 마는, 그렇게 해주고 싶어서 애쓰게 만드는 존재. 올해 2월, 내겐 시집으로 더 익숙하던 임솔아 시인님의 소설이자, 영화의 원작인 《최선의 삶》을 읽고 이 영화를 마주하게 되길 손꼽아 기다렸다. 몇 번의 상영을 놓치고 드디어 극장에서 만난 영화 <최선의 삶>은 내가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아픔, 괴로움, 절망 그리고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여전히 모르는 어떤 날것의 감정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최선’이라는 단어가 가질 수 있는 잔인함과 서글픔이 너무나 생생하게 스크린에 펼쳐지고 있었달까. 누구도 알려주지 않고, 아무도 안아주지 않는다. 먼저 어른이 된 이들이 만들어놓은 사회는 그저 최고를 위한 최선만 요구할 뿐이다. ‘잘’ 사는 것이라는 게 대체 뭐길래. 강이와 소영, 아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집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높은 오르막인 채로 강이를 기다렸고, 혼란한 감정을 가눌 수가 없던 소영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분노를 키웠으며, 마음속 구멍들을 메우고 싶어 자꾸만 무언가를 주워오던 아람은 끝내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현실의 한가운데 다시 놓인다. 동경과 질투, 애정과 원망이 뒤섞여 끈적하던 여름의 기억은 덫처럼 이들을 붙잡은 채 놔주지 않았고, 끝내 떼어내고 싶어서, 벗어나고 싶어서 발버둥 치게 만들어버리고 만다. 더 잔인한 사실은 그럴수록 그 여름의 기억은 이들에게 진득하니 붙어서, 기어코 무른 마음을 갉아먹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창문을 치우고 빛을 깨고 나니 남은 건 어둠뿐이다. 당장의 눈부심을 막아보려 했던 선택이 앞으로의 길을 가렸고, 함께 걷던 이들을 숨겼다. 그렇다면 무엇이 최선이었을까. 최선이라는 건 대체 무엇이어야 했을까. 소영을 향했던 흔적이 빨갛게 남은 손과 함께, 꾹꾹 눌러온 울분을 터뜨리던 강이의 뒤로 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덮친다. 또 다른 어둠이 시작될 것이 분명한데, 한편으론 무언가 꽉 찬 기분이 든다. 그것은 아마도 강이에게서 가장 솔직하고, 가장 치열한 최선의 순간을 그제야 보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마주하게 된 최선이 아프고 괴로우면서도, 그것이 살아보겠다는 열망의 표출이라면 기꺼이 감싸 안고 싶어진다. 그 최선의 삶을. + 소설을 먼저 읽어서 그런가, 자세한 설명없이 핵심만 담아낸 영화의 흐름이 다소 매끄럽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책에 담긴 몇 번의 싸움 장면들의 묘사를 덜어낸, 그 생략에서 오히려 사려 깊은 연출의 힘을 느끼기도 했다. 영화를 보면서 임솔아 시인님의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자주 떠올렸고, 소설보다 시집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래」, 「아름다움」, 「벤치」, 「여분」, 「어째서」, 「멍」, 「대신」, 「가방」 등… 영화를 보고 시집을 다시 읽으면서 여러 시에서 강이, 소영, 아람을 볼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