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상의 민주화는 이루었으나 타도의 대상은 여전히 건재했던 1980년대 막바지의 대한민국. 이때의 한국은 오랜 기간 억압된 에너지가 드디어 그 분출구를 찾기 시작한 매우 특수한 시공간이었다. 특히 수십 년간 지속된 ‘반공-민족주의-파시즘’의 체제가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함에 따라 젊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금기시돼 온 ‘북한’과 ‘통일’에 대한 논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때마침 한반도 양측에서 개최 예정이던 88년 서울 올림픽의 공동 개최 요구와, 89년 평양 청년학생 축전 참가 강행이라는 두 가지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표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