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1 영화의 장르를 규정하는 것은 영화의 소재가 아니다. 아니, 사실은 영화의 장르를 규정하는 것 자체가 지금에 이르러서야 과연 의미가 있는지 질문을 던지는 게 먼저겠지만, 어쨌든 그렇다. <인터스텔라>는 물론 과학 영화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지만, 그것보다는 가족 영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홍보에 그러므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지점은 이 풋풋한 영화에 '퀴어 영화'라는 장르 구분을 구태여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화에 따라서는 퀴어라는 타이틀이 영화의 주요 소재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17세 소년의 동성애자로써의 정체성 혼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관계에 대한 비밀스러움, 격렬함, 불안정함 따위는 이 영화의 관심사가 아니다. 오히려 부모님마저 따뜻한 시선으로 이들의 관계를 조용히 지켜봐주는, 사랑 그 자체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이들에게 퀴어라는 타이틀은 어쩌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했는데 우연히 같은 남자였을 뿐이지. 2 첫사랑의 기준은 누구에게나 다르다. 누군가에겐 처음 짝사랑한 사람, 누군가에겐 처음 사귄 사람, 누군가에겐 몇 번의 연애 이후에 드디어 찾아낸 진짜 사랑일 것이다. 하지만 그 중 어떤 사람이 자신의 첫사랑이였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지 못한 사람은 아마 찾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나의 영혼이 공명하는 바로 그 상대, 이 사람이 정말 내가 처음 사랑한 사람이구나 하고 느낀 사람이 누군지 떠올렸을 때, 가장 처음 떠오르는 그 사람이 바로 첫사랑이 아닐까. 첫사랑은 불멸한다. 아무리 새로운 사랑이 나타나도 첫사랑은 특별하다. 마치 나의 영혼의 일부를 맡겨놓은 것만 같다. 사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별 볼일 없는 영화였던 건축학개론이 그렇게 돌풍을 일으킨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수지의 외모에도 불구하고 수지가 아니라 나의 첫사랑을 대입시켰던 것은 나만의 기억이 아닐 것이다. 이 영화의 첫사랑 또한 숱한 다른 첫사랑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섬세한 감정, 첫만남부터 운명임을 느낀 것은 아니었지만 계속 만날 수록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는구나, 하고 인정하게 되는 미묘한 감정선의 변화를 오롯이 담아낸 것은 아무리 첫사랑에 대한 영화를 많이 봤어도 누구에게나 설렐 수밖에 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3 풋풋하고 미묘한 감정선 또한 이 영화의 눈에 띄는 성취 중 하나이지만, 동방예의지국의 백성으로써 가장 인상깊었던 지점은 엘리오의 아버지의 태도이다. 감히 유교국가 조선에서는 아마 몇 세대가 지나가도 일어나기 힘든 기적같은 일이다. 나의 자식의 사랑을 온전히 존중해주고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하는 아버지상은 대체 어떤 깨달음 이후에야 나타날 수 있는 것일까? 내가 나로써 인정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아직 너무 어려운 일이다. 특히 우리의 아버지들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