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주전장' 덜 간단한 리뷰

1. 어쩌다 보니 최근 얼마간 위안부 관련 다큐멘터리를 꽤 본 것 같다. 내가 보지 못한 영화까지 합치면 이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는 더 많이 나왔다. 이것은 영화가(특히 다큐멘터리가) 세상에 할 수 있는 어떤 일에 해당된다. 나는 아직도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가지고 있다. 때로 그것은 세상을 바꾸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 힘은 우연에 의한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주장이 좀 더 힘을 얻으려면 더 크고 확실한 것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미키 데자키 감독의 영화 '주전장'은 '영화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주장에 가장 근접한 영화다. 이 영화는 위안부 다큐멘터리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접근한 영화이며 그와 관련된 영화 중 가장 힘이 센 영화다. 2. '주전장'의 이야기 방식은 간단하다. 일본 정부와 우익들이 위안부와 한국에 대해 하는 주장들을 정리한다. 이것은 우익 지식인과 정치인들의 입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대단히 진하고 강력한 주장들이다. 그리고 미키 데자키 감독은 반대쪽 역사학자들의 인터뷰와 그 사료(史料)들로 하나씩 반박한다. 이 작업에 그치지 않고 영화는 일본 우익들이 그리는 큰 그림을 밝혀낸다(이 큰 그림이 상당히 소름돋는다). '주전장'의 이같은 작업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우리의 대응 태도를 변화시킨다. 그것은 더 이상 과거의 문제가 아니며 현재와 미래를 위해 해야 하는 싸움인 것이다. 그리고 일본은 우익 권력자들과 지식인들의 음모에 대해 대응할 힘이 없다는 것도 밝혀낸다. 헬조선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 더 일본은 최악의 길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3.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하는 주장은 간단하게 몇 가지로 나뉜다. ①위안부는 자발적이었다 ②일본은 이미 배상을 했다 ③그들은 '성노예'라는 말에 적합하지 않은 생활을 했다 ④소녀상은 말도 안되는 억지다. 이같은 주장들에 대한 반박을 하는 것이 영화의 주된 일이다. 우익들이 이같은 주장을 펼치는 방법은 "(강제동원 됐다는) 증거가 있냐"라는 것과 "(자발적이었다, 배상을 했다는) 증거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증거가 있냐는 말은 고상한 척 하는 억지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성폭행 피해자가 성폭행을 주장하는데 가해자는 "내가 저 여자의 옷을 찢었다는 문서가 있습니까"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강제로 때리고 납치해서 데리고 가는 것은 문서가 아니라 증언에 의거해야 한다. 만약 이를 반박하고 싶다면 그들은 "문서를 내놔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런 적이 없다"는 증언을 확보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전 일본군인이었던 90대 할아버지가 등장해 "일본은 사과해야 한다"고 말한다. 4. "증거가 있다"는 주장은 연합군의 조사보고서와 한일 합의문서 등을 토대로 펼친다. 이것은 명백한 왜곡이다. 보고서의 경우 맥락을 왜곡한 체 문장 하나만 가지고 해석하거나 보고서나 문서의 조사배경을 무시한 체 데이터만 들이대는 식이다. 예를 들어 "미얀마에 있었던 위안부들은 당시 매우 큰 돈을 받았다"며 급여명세서를 들이댄다. 여기에 대해 역사학자는 당시 미얀마의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그 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작은 돈이었다고 반박한다. 할머니의 증언록을 통해 "자발적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장의 일부를 왜곡한 것이다 문맥의 흐름으로 보면 이는 '강제동원' 됐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위안부는 자유로운 생활을 했다"는 주장 역시 국제법상 '노예'의 정의를 언급하며 여기에 따르면 위안부는 성노예였다는 공식을 확정한다. 배상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의 이익을 위해 양국이 편협한 방식으로 이뤄진 것이며 이 과정에서 피해자인 할머니들은 완전히 배제됐다고 말한다(이 대목이 가장 화나고 소름돋는다). 영화는 이같은 방식으로 우익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뒤집는다. 5. 영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왜 우익들이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가"를 묻는다. 여기에는 우익 지식인들과 권력가들로 구성된 '일본의회'가 등장한다. 이들을 통해 밝혀내는 '일본 우익의 비전'은 '메이지 헌법의 부활'이다. 이는 다시 말해 '일본 제국의 부활'이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과거사를 세탁하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을 부정하고 없었던 일로 해야 일본 제국을 부활할 명분이 생긴다. 이 말을 듣고 나니 일본이 군대를 가지려고 평화 헌법을 고친 의도가 보인다. 게다가 국제사회에서 경제적 우위를 되찾으려는 목적도 명백해진다. 우익들이 생각하는 '일본이 부강해지는 길'은 제국주의의 부활 밖에 없다고 판단한 듯 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영화 속 일본 지식인들의 우려도 깊다. 지금의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왕이 허락한 만큼의 자유를 누리는 시대에서는 진정한 자유란 없다. 우익이 계속 집권하면 그런 시대가 올 것이라는 우려다. 6. "일본 우익들은 인종차별주의자다"라는 것도 이와 통한다. 일본 우익들이 하는 여러 말 중 "한국인은 열등하다"라는 말도 꽤 등장한다. 우익들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역사학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과거 일본의 우생보호법 역시 여기에 근거한 것이다. 이는 장애인이나 유전성 질환자들을 '열등하다'고 판단해 강제 불임한 사건이며 올해 들어서야 50년만에 뒤늦은 구제에 나섰다. 만약 이 사건이 세상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다면 일본은 절대 그들을 구제하지 않았을 것이다(물론 알려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제국주의 국가에서 인종차별은 흔한 일이다.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도 이와 유사한 것이며 일본의 난징대학살도 다른 민족을 학살했다는 맥락에서 통한다. 7. 나는 이 주장에 이르자 오싹해졌다. 지금까지 '역사의 문제'라고 여겼던 위안부와 강제징용이 현재와 미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위안부와 강제징용의 역사를 지워 과거를 세탁하고 제국주의 부활의 명분을 얻으려는 속셈이다. 어쩌면 이미 제국주의에 꽤 근접했을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역사교과서는 자율로 제작하지만 국가검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위안부나 독도 등의 이슈를 자유롭게 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여담이지만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활발하던 때(지금도 활발하다) 나는 우리의 대응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일본은 "다케시마 줘. 우리꺼잖아"라고 하는데 우리는 "역사적으로 우리꺼다"라고 주장한다. 일본은 지금 내놓으라고 하는데 한국은 역사자료를 들이댄다. 뺏으려는 자에 대한 대응으로는 올바르지 않다. 차라리 독도 주변의 연구를 강화하고 개발하는 쪽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8. 영화는 일본 우익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면서 중요한 이야기를 던진다. 요약하자면 그 이야기는 '감정적 대응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익들은 주로 문서와 숫자를 가지고 싸운다. 현재 남아있는 문서는 분명 그들이 유리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확인되지 않은 숫자를 언급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는 '민족주의'와 관련이 있다. 한국과 일본의 공통점은 '단일민족'이라는 것이다. 민족주의는 애국심으로 이어진다. 애국심은 국가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전체주의적이며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기도 한다. 민족주의는 다양한 문화의 포용을 막기 때문에 기술과 문화의 발전을 저해한다. 그리고 애국심 때문에 이성적 판단이 흐려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가벼운 예로 '못만든 국뽕영화'가 있다). 9. 누군가가 요구해서 나오는 애국심은 개인의 눈을 가린다. 애국심은 개인과 가족에서 출발해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국가는 결국 개인을 보호하는 울타리이기 때문이다. '나를 보호하는 울타리'로써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진정한 애국심이다. 국가를 위한 희생을 강요받는다면 그것은 거짓된 애국심이다. 민족주의는 전체주의와 이어질 위험이 높다. 우리는 한민족이다. 그것은 그저 '종족이 같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다른 민족과 다른 문화를 포용할 줄 안다는 것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전체주의 국가인 일본의 왜곡된 도발에 발끈해서 감정적인 대응을 해선 안된다. 미개한 원숭이가 날 뛸수록 이성적이고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10. 일본 제국의 부활은 성공할 수 있을까? 아베 정부의 한국 수출 규제 이후 자민당 지지율은 여전히 50%를 넘어서고 있다. 일본에서는 여전히 절반 이상의 국민들이 자민당을 지지하고 있다. 절반이 되지 않는 사람들, 영화에도 등장한 일본 역사학자와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아베와 자민당에 반발하는 세력도 있으나 그들이 성공적으로 변화를 이끌 수 있을지는 부정적이다. 저항과 혁명의 역사를 가진 적이 없는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무기력하고 허무주의적이다. 이는 그들의 대중문화를 통해 드러난다. 게다가 '일본인의 성향'을 떠올려봐도 그들은 예의가 바르고 순종적이다. 부조리를 보고 바꿀 의지도 없고 방법도 모른다. 저항과 혁명의 역사를 여러 번 가지고 있고 이미 한 번 그 일을 실천에 옮긴 한국 젊은 세대와는 분명 다르다.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제국'은 자멸할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이슈와 국제적 고립을 외면하고 세우는 '일본 제국'은 온통 금이 간 건물에 페인트칠만 새로 한 것과 같다. 이웃나라가 박살나는 일이지만 우리는 멀찌감치 지켜볼 수만은 없다. 그 건물은 짧은 시간 우리를 공격할 것이고 무너지는 순간에도 흙먼지와 잔해는 우리에게 피해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오래오래 잘 살기 위해서는 일본 제국의 부활을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한발짝도 물러나선 안된다. 이 싸움은 현재 진행형이며 미래를 건 전쟁이다. 위안부와 강제징용이 걸고 싸우는 이곳은 주전장(主戰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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