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weihnachten
2018.01.06
스포일러 주의!
0. "우리가 그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니체의 원전에 의한 뜻에서 벗어나 이 영화에 맞게 자유롭게 해석한다면 여기서 심연이 가리키는 것은 저 괴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년은 저 나무의 살아있음 여부에 관계 없이 어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또한 그 상상의 세계를 통해 미지의 생명체를 그려내곤 했다. 그리고 지금 그렇게 소년이 바라보던 저 괴물이 드디어 그에게 다가온 것이다. 1. 괴물이 나타나는 12시 7분, 그러니까 12시를 조금 넘긴 시간은 정확한 숫자보다도 그 때가 더 중요하다. 12시는 날짜든 그 하루의 반인 오전과 오후이든 늘 무엇인가를 나누는 경계선을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다. 즉 괴물이 나타나는 그 시간은 무엇인가의 경계를 넘는 시간, 혹은 한계를 초월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후반부에 그 시간이 누군가의 죽음과도 관련되어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관객들은 그것이 실제와 허구를 넘어 싦과 죽음의 경계까지도 관장하고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어쨌든 괴물이 등장한 이유는 소년이 그를 원했기 때문일테지만, 이상하게 소년은 첫 만남에서 괴물을 피하려 하고 괴물은 괴물대로 이야기를 전해주겠다든지, 혹은 '너의 바람대로 너의 어머니를 치료하러 온 것이 아니라 너를 치료하러 온 것'이라는 식의 알 수 없는 말을 할 뿐이다. 그들의 이해관계는 처음부터 어긋나있으며, 그들의 진심 역시 정확히 그것만큼 벗어나있다. 2. 사실 심연은 예상하듯이 소년에 숨겨두었던 진심일 것이고, 괴물은 그 무의식이 실체화되어 나타난 것일 뿐이다. 따라서 괴물이 말하는 것은 이미 소년이 알고 있는 것들밖에 없다. 결국 소년이 괴물에게 하는 행동은 모두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한 반응방식, 혹은 방어기제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가령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코너가 괴물의 이야기에 고개를 젓는 이유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면의 이야기를 진정으로 들을 자신이 없어서다. 그러므로 그가 사용하는 것은 부정이다. 참아왔던 화를 결국 억누르지 못하고 폭발할 때, 소년은 그것을 괴물의 힘인 것으로 착각한다. 엉망이 되어가는 상황을 괴물의 탓으로 투사하지만, 결국 그가 화내는 대상은 자기 자신이므로 동시에 전치나 다름없다. 3. 괴물의 세 이야기가 전부 끝나고 소년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될 때 소년은 절망한다. 절망의 시작은, 그러나, 그렇게 외면하려던 문제인 진심에 대한 직면의 시작이다. 죽음 이후의 삶을 생각해본 적이 없기에 끝내 말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코너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은 '엄마가 나을 것'이라는 거짓된 어른스러움이 아닌 '가지말라'는 슬픈 아이다움이다. 회피하는 아버지보다, 억제하는 할머니보다 있는 그대로를 토로하는 아이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모든 이야기가 끝난 후 자신의 방을 새롭게 얻은 소년이 상상력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하는 장면은 인상깊다. 괴물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동시에 듣는 존재였지만 사실 그는 과거의 추억을 통해 형성된 존재였다. 이제 소년은 자신을 괴롭히던 모든 경계를 넘었기 때문에 괴물은 한동안 그의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지만, 어머니의 부탁처럼 늘 항상 곁에 있을 것이다. 심연은, 그리고 진심은 어디가지 않고 늘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안에 담긴 감정은 오롯이 어른들만을 향하고 있던 속깊은 영화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