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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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라이츠 지수 93.5% (538명 평가)

별점 3.8/5 (102건 리뷰)

시청 정보 업데이트: 2026년 10월 17일

몬스터 콜
몬스터 콜
12+
·2016
·영화
·108분
·공포(호러)
, 서사/드라마
, 어드벤처
, 판타지

93.5

%

·

기본정보

기댈 곳 없이 빛을 잃어가던 소년 코너. 어느 날 밤, 코너의 방으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거대한 몬스터가 찾아온다. 코너는 매일 밤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외면했던 마음 속 상처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관전 포인트

30대가 선호해요

출연진/제작진

리뷰 & 평점

3.8

리뷰 평점

86%

로튼토마토

7.4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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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야기를 세 개 들려줄테니, 그 다음엔 너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줘야 한다." 몬스터가 코너에게 우르르쾅쾅 나타나서 한 말이다. 나는, 그 마지막 부분. 이야기를 들은 후에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야한다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원체 이야기라는 소재에 잘 매료되기도 하지만, 이야기는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 의해서 비로소 완전해진다는 뜻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듣는 사람은 말해야한다. (이 영화에서는, 현실과 나를 인정하는 것이 진실이고 그것이 비로소 이야기를 완성하지만..) 고백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있다. 특히 영화가 극장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마치 온전히 나를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 같아서 황홀하기까지 하다. 그런 후, 내 안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종종 나도 놀랄정도로 잊고 있었던 것이거나, 잊고 싶었던 것이거나. 이야기가 스스로 길을 찾아 나오는 광경 역시 황홀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누군가가 생각났다. 내가 상상도 못할 두려움과 슬픔을 감당했을 그 사람이 생각났고, 내가 그동안 놓쳐버린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반성 했다. 그렇게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다가 코너가 결국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정말 끅끅하고 감정이입을 엄청하고 말았다. 마치 '네버엔딩 스토리'의 주인공처럼, 난 영화속에 들어가 있었다. 아이도 어른도 아니었던 시절이 생각났고, 자꾸 우르르쾅쾅 나오던 나의 괴물이 떠올랐다. 괴물은 얼마나 상냥한가. 얼마나 다정하고 넓고 단단한가. 나는 나의 괴물을 적으로만 여겼는데...... 아니, 나도 괴물이 있었다는 걸 잊고 있었다. 잘 가는 내과가 있는데, 그 곳 의사선생님은 진찰을 하시곤 꼭, "너 무슨 걱정있나?"하고 물으신다. 그러면 난 이상하게도 매번 울고만다.아... 정말 싫으시겠지. 정신과도 아닌데 티슈를 찾으며 운다. 울면서 이것저것 말한다. 그러던 어느날 의사선생님이 말했다. "그래도 너는 괜찮은거야. 아주 아픈 사람은 이렇게 말도 못해. 이야기를 한다는 건 괜찮다는 거야." 그 날도 그렇게 진료받다가 위로까지 받고 나왔다. 영화가 끝나고 쉽게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일단 눈물이 쉽게 멈추지가 않았고, 눈물콧물 범벅된 얼굴을 바깥 세상으로 나가기 전 급수습을 해야했기때문이닷. 바깥 세상에 나가서 무전기를 켰더니, 띠리링 띠리링 신호가 갔다. 우리는 그렇게 접선해서 연태고량주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렸을 적 이야기를 털어놓듯 말하고 있었다. 다행히 접선자는 날 내버려두었고 꾹꾹 잘 들어주었다. 나는 계속계속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끌어내는 이야기가, 영화가 있다. 그 영화가 바로 나를 여태껏 지키고 이끌어준 나의'몬스터'다. 그래서 불꺼진 극장안이 그렇게 포근한가보다. *우리 펠리시티! 이제..엄마 역도 하는 구나. 왠지모르게 짠하고 대견하고....흑. 펠리시티 존스 넘 좋다아. * 리암 니슨은 초월적인 존재 목소리에 정말 딱인듯. 목소리 넘나 좋네.

5

당신에게도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몬스터 콜'(감독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은 동화가 아니다. 12살 소년이 주인공이라는 것, 밤 12시7분에 그를 찾아오는 나무괴물이 존재한다는 게 이 작품을 동화처럼 보이게 할 여지가 있어도 이 영화를 '동화 같다'는 식으로 표현하면 곤란하다. 오히려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 따위의 동화 속 가르침을 걷어차는 게 '몬스터 콜'이다. 대신 영화는 잘 살기 위해서, 잘 사는 게 벅차다면 최소한 버티기 위해서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스려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이건 교훈의 문제가 아니라 실존의 문제다. '몬스터 콜'을 성장영화로 분류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영화 속에서 성장은 더 나은 인간으로 발전하는 것 혹은 작은 것이라도 깨달음을 얻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뜻할텐데, 코너 오말리(루이스 맥더겔)에게 그런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나를 둘러싼 세계가 무너지고 있을 때 중요한 건 '발전' 같은 게 아니다. 이 붕괴와 함께 흔들리는 삶을 지키는 것 그것 만이 지상과제다. 그게 바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아니겠냐고 할지도 모르나 나이가 많다고 해서 덜 흔들리고, 어리다고 해서 더 흔들리는 건 아니다. 코너 오말리는 하루하루가 힘겹다. 사랑하는 엄마는 중병을 얻어 힘겹게 투병 중인데,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혼자 만의 세계에 빠져사는 코너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동급생들은 그를 어떻게든 괴롭히려 든다. 게다가 엄마의 병세가 악화해 입원하면서, 성격이 잘 맞지 않아 싫어하는 할머니와 함께 살아야 한다. 최악의 상황에 처한 코너는 악몽을 꾸고 깨어난 어느 날 밤 12시7분, 정체 불명의 나무괴물을 만난다. 이 괴물은 앞으로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말한다.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의 새 영화는 형식과 이야기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모범 사례로 앞으로 거듭 언급될 작품이다. 점점 지쳐 더 큰 슬픔에 젖어드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현실이 아닌 환상인지도 모른다. 코너 역시 그렇다. 그가 그림을 그리며 미쳐버릴 것만 같은 이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과 나무괴물의 갑작스럽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등장은 결국 같은 말이다. 그러면서도 '몬스터 콜'은 장르영화 틀 안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이 판타지를 둘러싸고 있는 건 엄중한 현실이다. 환상은 오히려 현실을 더 극명하게 보여줘 어찌됐든 살아가야 하는 지독한 세상을 인정하게 한다. 이 작품은 위로의 영화이고, 위안이 되는 감격적인 108분을 선사하지만, 코너와 관객을 무작정 끌어안아 보듬어주는 데는 관심이 없다. 나무괴물은 부모도, 교사도, 멘토도, 친구도 아니다. 그는 그저 1000년 가까이 인간들을 면밀히 들여다본 냉혹한 선지지다. 나무괴물은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말한 뒤 "네 번째 이야기는 네가 해야 한다"고 반복 강조한다. 스스로 고백하라는 것, 너 자신의 이야기를 하라는 것, 나에게 솔직해져야 한다는 것, 나무괴물은 오히려 가혹하다. 그는 코너를 위로하기는커녕 네 번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홀연히 사라지기도 한다. 세계는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다. 이같은 엄격함에도 불구하고 '몬스터 콜'이 뜨거운 눈물을 쏟게 하는 건 게으른 긍정이나 싸구려 위로를 뛰어넘는 포용을 보여줘서다. 나무괴물은 코너를 뻔한 윤리와 도덕으로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두려워하는 너무나 인간적인 모순된 감정들을 솔직하게 꺼내놓으라고, 그래도 괜찮다고, 잘못하는 게 아니라고, 그 죄책감까지도 안고 가야 하는 게 삶이라고 말한다. 코너가 반복해서 꾸는 악몽의 가장 두려운 부분이 비로소 드러났을 때, 그제서야 그가 다시 명백한 현실로 복귀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코너가 세상을 노려보며 화를 낸 이유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부조리 때문만은 아니었다("나도 킹콩처럼 다 부숴버리고 싶다"라는 대사). 그는 먼저 자기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었고, 사랑하지 못했기에 다른 곳에 연신 화풀이를 해댔다. 나도 모르는 이가 세상을 알 수 있을리가 없다. 나무괴물은 "네가 나를 불러냈다"며 "네 번째 이야기를 하라"고 말하고, 코너는 "난 널 불러낸 적이 없다"며 "나는 할 이야기가 없다"고 맞선다. 그러나 몬스터는 코너가 불러낸 것이었고, 그에게는 할 이야기가 있었다. 그건 '몬스터 콜'을 보는 모든 관객도 마찬가지다. (글) 손정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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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을 봤을 때는 애들 영화라고 생각했고, 사실 전반부가 지나갈 때까지도 조금 섬세한 애들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후반부로 넘어가면서부터 코너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되고, 급기야 결말에서는 정말 참을 수 없는 눈물...☆ 처음의 감상을 정정하자면 이 영화는 아이들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 12세 관람가고 코너가 12살이지만 정말 12살인 아이들이 본다면 이만큼의 감상을 받기 어려울 거다. 그 나이는 엄마가 영원히, 아주 영원히 옆에 있을 거라고 믿는 나이니까. 영화는 관객에게 감정을 들이밀지 않고, 교훈을 주려고도 하지 않는다. 어떤 교훈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아이들이 받아들이기엔 냉정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따뜻하다. 이 영화를 친구들에게 영업할 때 "따뜻하다 못해 더워버리는 영화"라고 표현했는데, 그 냉정한 교훈이 오히려 누군가에게는 큰 위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 괜찮을 거야, 라는 두루뭉술하고 막막한 위로보다 더. 카메라가 코너의 집을 훑을 때 스쳐지나가는 장면 속에 코너의 엄마와 그녀의 아빠가 찍은 가족사진이 있다. 사진 속에만 있는 그녀의 아빠, 그러니까 코너의 할아버지는 리암 니슨이다. 몬스터의 목소리 역할을 맡은 배우가 리암 니슨이라는 부분을 되새겨보면 그 사진은 사소하지만 의미있는 소품이다. 주인공인 코너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또래에 비해 연약하고 피부가 흰 소년, 엄마의 손을 놓치는 악몽을 꾼 아침에도 혼자 빨래를 널고 밥을 차려먹는 아이, 어쩔 수 없이 일찍 철들어버려서 엄마를 잡고 싶은 마음도 숨기는 아들, 그 모든 역할을 몸에 맞춘 것처럼 잘해냈다. 사연 있어 보이는 연한 갈색 눈동자가 그의 연기에 크게 도움이 됐다. 자신을 혼내지 않는 어른들을 볼 때의 그 외로움과 쓸쓸함에 이입되기가 쉬웠다. 널 혼내서 뭐하겠냐니 진짜 섭섭하네요ㅠ 코너의 엄마 역할을 맡은 시고니 위버도 정말 좋았음. 전반부가 그저 그랬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고 이 영화에서 좋았던 장면은 후반부의 20분 정도지만 그 시기의 한국 영화에 여혐이 판치고 있어서 이 영화를 더 좋게 평가하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뭐 언제는 안 그랬냐만은(...) 그러나저러나 영화는 역시 진리의 호불호다. 내 옆의 남자는 어깨를 들썩여가며 울었고 그 옆의 여자는 나한테 들릴 정도로 코를 골면서 잤던 걸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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