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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최후의 밤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드라마 / 2018

개요
드라마, 미스터리, 중국, 138분, 12세 이상 관람가, 2019.07.25 개봉
감독
필감
배우
탕웨이
황각
장애가
리홍기
진영충
투안 춘하오
시놉시스
아버지의 부고로 고향으로 돌아온 남자가 과거에 만났던 한 여인의 흔적을 발견하고 따라가는 여정을 그린 멜로 영화

지구 최후의 밤 다시보기: 스트리밍, 다운로드(구매, 대여)

현재 웨이브, 왓챠플레이에서 지구 최후의 밤을(를) 볼 수 있으며 웨이브, Google Play 무비에서 대여가 가능하며 네이버 시리즈on, 씨네폭스, Google Play 무비, 웨이브에서 유료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

80.95%
3.79점
키노라이트 분포
12개
51개
별점 분포
리뷰
37

송씨네 님의 리뷰
2019.08.21 17:30:45
사랑은 사과처럼 흔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자몽처럼 다가가기 힘든 존재였어. 밀레니엄 시대였던 2000년대와 현재를 왔다갔다 하는 작품이지만 현재의 상황도 그 차이가 없다는게 이상하죠.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찾기 위한 여정이 중심이고 집착처럼 보여지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여기서 함정은 제목은 SF스럽지만 결국 사랑이야기라는 것이죠. 그러나 후반에는 멜로에서 볼 수 없었던 온갖 기술력이 숨어 있는 범우주적(?) 러브스토리이기도 합니다. 타이틀 제목이 뒤늦게 나오고 나서야 3D로 나오는 장면이 등장하죠. 짐라인 장면이나 우수수 떨어지는 사과 등등... 하지만 우리는 그걸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영화는 생략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물컵은 깨졌을까, 조폭보스는 극장에서 최후를 맞이했을까 등등... 이런 생략과 간결하지만 영상미를 추구하려는 노력은 웬지 포스트 왕가위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비간이란 생소한 이름의 젊은 감독의 다음 작품이 은근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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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씨네 님의 리뷰
2019.08.11 20:53:27
<지구 최후의 밤, 2018>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몽환적 분위기.
팜므파탈 탕웨이와 환각을 겪듯 짙은 황각의 연기.
후반 30분 같은 58분 야외 롱테이크는 가히 역대급. 어메이징.

제 71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30세 중국 천재 감독의 등장.
이동진 평론가 5점 만점.


"영화와 기억."

"난 어디까지 본 것인가."

"전반부, 복잡 난해 지루 주의"


☆ 4.0 / 5.0



#지구최후의밤 #비간 #탕웨이 #황각

#movie #film #cinema #instamovies
#영화 #영화스타그램 #무비스타그램 #영화리뷰 #추천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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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님의 리뷰
2019.08.09 16:23:27
나는 모르겠다.
보면서 3D로 보고싶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 아... 나는 안 맞는구나 '는 덤.

에무시네마에서 본지라,
한 번 즈음 스크린 큰 관에서 보고 싶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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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mon 님의 리뷰
2019.08.03 21:49:14
제71회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받았던 영화 <지구 최후의 밤> (2018)은 이전 세대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서 벗어나 인간의 정신적 영역을 탐험하는 육체적 영역을 표현하기 위한 비간 감독 고민의 결과물이다. <지구 최후의 밤>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시간, 공간, 꿈, 기억 등이 모호하게 혼재되어 있다. 근데, 이 영화의 특징은 어느 부분이 현실의 영역을 다루고 꿈과 기억이 혼재된 영역을 이야기하는지 파악하려고 계속 애쓸수록 인지적 정체나 오류에 갇히게 된다는 점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지구 최후의 밤>은 현실인 영역과 현실이 아닌 영역을 구분해 완성하는 퍼즐이 아니다. 어쩌면 1부와 2부 모두 꿈일 수도 있다.

배우 탕웨이가 연기한 두 여인을 중심으로 본다면, 1부는 고향 카일리로 돌아온 남자 '뤄홍우(황각)'의 기억에 관한 꿈을, 2부는 그의 상상에 대한 꿈을 펼쳐놓은 거로 볼 수 있다. 하나의 시공간에서 또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하며 부모와의 관계나 과거의 경험에 생긴 공백이 점차 채워지는 과정 자체가 심리적 안정감을 형성하는데 기여한다. 게다가, 58분 동안 롱테이크로만 펼쳐지는 2부는 1부보다 육체적 움직임 강도를 끌어올림으로써 정신적 영역을 탐험하며 잃어버린 감각을 회복하는 영화적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지구 최후의 밤>에서 제공한 정신적 영역에 생긴 공백을 메우고 무디어진 육체적 감각을 회복하는 체험이 누군가에게는 애틋함과 위안으로 기억되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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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in Job 님의 리뷰
2020.04.26 00:18:16
촬영감독 욕지기가 여기까지 들린다
#지구최후의밤 #찬란_배급 #비간_각본연출 #탕웨이 #황각
.
.
- 사실상 2019년 메가박스 시네마 리플레이는 <지구 최후의 밤> 하나에 시네마 리플레이 5회 패키지를 태워?!라고 할 수 있겠다.
수 많은 온라인 매체와 SNS를 통해 마지막 1시간 롱테이크에 대한 찬사를 너무 많이 들었던데다가 영상자료원 3D상영까지 놓치고 나니 독이 오를데로 올랐었다. -.-;;;
가히 소문의 명성대로 대단한 영화이면서 준비없이 관람하는 버릇 탓에 초반과 중반을 이야기 중심으로 관람해 버려서 구조적인 특징을 너무 많이 놓쳐버렸지만 기회가 되면 다시 관람을 하고 싶으면서도 이런 영화를 극장에서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또 언제 생길지 몰라 애가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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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 님의 리뷰
2020.02.17 23:27:30
2020년대 시네마는 어떻게 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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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 님의 리뷰
2020.01.31 23:22:14
삶과 공명하는 영화의 형태
<아사코>와 함께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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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망한 아시아 감독을 고르라면, 다양한 이름을 거론할 수 있지만, 일본의 하마구치 류스케와 중국의 비간은 반드시 언급되어야 한다. 비전문 배우를 기용한 <해피 아워>(2015)로 본격적인 이름을 알린 하마구치 류스케는 <아사코>(2018)로 제71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랐고, 서른의 젊은 나이에 <카일리 블루스>(2015), <지구 최후의 밤>(2018) 단 두 편의 영화로 혜성처럼 떠오른 비간은 기존 중국 영화의 흐름과 무관한 독창적인 개성을 보여주고 있다. 다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두 감독을 일본과 중국의 동시대를 이끌어가는 차세대 거장으로 점찍어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마구치 류스케와 비간을 함께 비교하면 어떤 특징을 발견할 수 있을까. 동시대를 공유하는 아시아 감독이라는 공통점 외에 이렇다 할 접점을 찾기 어려운 두 감독을 포괄하는 작업은 매우 흥미롭고 도전적인 시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아직 하마구치 류스케의 <해피 아워>와 다른 전작을 보지 못했으며, 비간의 데뷔작인 <카일리 블루스>도 못 봤다. 오직 두 감독의 가장 근작인 <아사코>와 <지구 최후의 밤>만 보았을 뿐이다. 그러니, 이 글은 두 감독의 작가적 세계와 무관한 시선으로 시작한다. 비록 필모그래피를 아우르는 거시적인 조망은 불가능하지만, 무모하더라도 <아사코>와 <지구 최후의 밤>이 공유하는 지점에서 색다른 의미를 발굴하는 것도 흥미로운 과제일 것이다.<아사코>와 <지구 최후의 밤>은 가볍게 소화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모종의 신비한 기운이 가득한 영화다. 두 작품은 언뜻 상반된 외형을 갖고 있지만, 영화의 안과 밖을 매듭지으며 온전한 세계를 조성한다. 그것은 도식적인 의미로 메워진 닫힌 세계가 아니라, 형태가 부서진 채 자유롭게 흐르는 열린 세계다. <아사코>와 <지구 최후의 밤>은 삶과 영화가 어떻게 공명하는지에 관한 매혹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영화 <아사코>는 꿈을 꾸는 듯한 몽롱한 기운을 잔뜩 내장하고 있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바쿠(히가시데 마사히로)는 행동의 동기를 설명하기 어려운 인물로 꿈의 비논리성을 체현한 존재처럼 보인다. 매사에 수동적인 아사코(카라타 에리카)는 바쿠와 얼굴이 똑같은 남자인 료헤이(히가시데 마사히로)를 만나 혼란스럽다. 판타지 영화에서 일어날 법한 이 괴상한 상황은 놀랍게도 당연한 현실이다. 그런가 하면, 사라졌다 5년 만에 갑자기 돌아온 바쿠와 함께 료헤이를 떠나는 아사코의 돌발적인 선택은 당위의 문제를 초월한 것으로 매우 비현실적이다. 여전히 바쿠를 사랑한다는 핑계로 아사코의 변심을 설명하기에는 개연성의 치명적인 오류로 영화적 허용으로도 용인하기 어렵다. 아사코는 바쿠에게 '왜 지금 돌아왔냐'는 원망 섞인 투정과 함께 자신의 모든 과거를 한낱 꿈으로 치부한다. 그녀는 왜 료헤이와 함께 한 지난 시절을 꿈으로 말해야 했을까. 오히려 러닝타임 상 20분이 채 안 되는 바쿠와 함께한 시간이 꿈에 더 가깝지 않은가. 아사코가 료헤이를 배신하는 이 시퀀스 전체가 통통 튀는 신디사이저 음악으로 인해 신비로운 꿈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지극히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도 몽롱한 꿈의 기운을 내장한 <아사코>는 꿈을 말하는 영화일까, 현실을 말하는 영화일까. 아니면, 꿈과 현실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영화일까.

영화 <지구 최후의 밤>은 2부 전체를 묶는 롱테이크로 꿈의 세계를 재현한다. 기억의 파편을 떠도는 정체불명의 여자, 완치원(탕 웨이)을 찾아 헤매는 뤄홍우(황각)는 과거 그녀와 함께 있던 극장에서 '영화라는 꿈'에 빠져든다. <아사코>가 현실과 꿈의 경계를 모호하게 다루었다면, <지구 최후의 밤>은 영화와 꿈의 정의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다. 둘은 마치 하나의 형태에 혼재하는 혼합물 같다. 만약 영화와 꿈을 분리해서 <지구 최후의 밤>을 관찰하면 어떨까. 3D 안경을 착용한 뤄홍우를 마지막으로 타이틀('지구 최후의 밤')을 내보이며 2부의 시작을 선언한다는 점과 실제로 <지구 최후의 밤> 2부가 3D 기술로 제작된 정황을 고려하였을 때, 관객이 보는 화면은 뤄홍우의 시점과 동일한 영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2부를 영화로 단정하기에는 꿈을 언급하는 <지구 최후의 밤>의 도입부를 무시할 수 없다. '그 여자가 나타나면, 꿈 속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뤄홍우의 대목은 기억 속의 존재 완치원과 얼굴이 같은, 하지만 전혀 다른 붉은 옷을 입은 단발의 여성 카이리(탕 웨이)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꿈을 자각하면, 유체이탈처럼 영혼이 떠다니는 경험을 한다'는 말은 2부에서 라켓을 돌려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시점 숏으로 변주된다. 따라서 <지구 최후의 밤>이 보여주는 2부는 뤄홍우의 신비한 꿈일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구 최후의 밤> 2부가 영화와 꿈을 포개는 방식 그 자체다. 꿈과 영화는 인간이 소망하는 관념이나 감정을 담는 측면에서 유사하며, 보이는 모든 것이 허구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 한다. 꿈과 영화를 포개어 독특한 질감의 세계를 구현하는 2부는 뤄홍우의 자의식인 1부를 재료로 재구성한다는 측면에서 영화라는 자각몽을 말하고 있다. 덧없는 기억 속을 살아가는 뤄홍우의 트라우마는 영화라는 자각몽 속에서 치유된다.

이렇게 비교해보는 것은 어떨까. <아사코>가 재현하지 않은 꿈의 세계는 <지구 최후의 밤>에서 매혹적인 광경으로 나타나며, <지구 최후의 밤>이 보여주지 않은 리얼한 현실 세계는 <아사코>에서 느슨하게 이어진다. 다소 막연한 상상이지만, 두 영화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간극에서 상호작용을 하며,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기억, 그리고 삶을 비추어 보려는 것 같다. 물론 두 영화를 손쉽게 조합하고 압축하여 의미를 추론하는 해석은 오히려 다양한 가치와 복잡한 감흥을 단순화하는 것으로 흥미롭지 못하다. 괄호를 채우기 위해 다른 영화를 이용하기보다, 서로의 세계가 영화라는 매개를 통해 느슨하게 묶여있는 모습을 가정하면 어떨까. <아사코>는 영화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려는 세계이며, <지구 최후의 밤>은 영화의 매혹에 골몰한 세계로 두 영화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팎 구분이 무의미하며, 끊임없이 연속하는 우리의 삶 어딘가를 붙잡아 투영한다.

<아사코>의 도입부는 일상적인 풍경이지만, 형용하기 어려운 이상한 감각이 깃들어 있다. 초장부터 귀를 사로잡는 신디사이저 음악은 신비한 기류를 형성하고, 아사코와 바쿠는 고쵸 시게오 사진전에서 우연히 스친다. 그리고 이들은 갑자기 터진 폭죽 소리와 함께 서로를 마주 본다. 마주 보는 순간은 슬로모션으로 우악스럽게 강조된다. 바쿠는 '스치면 인연, 스며들면 사랑'이라는 때늦은 신화를 수행할 기세로 입술을 맞댄다. 이처럼 청춘 남녀가 운명처럼 첫눈에 반하는 설정은 멜로드라마 장르에서 익히 봐온 것으로 이젠 진부하기까지 하다. 운명적인 사랑을 노골적으로 표상하는 <아사코>의 도입부는 멜로드라마 장르의 도식성을 답습하는 작위적인 연출로 아사코와 바쿠의 첫 만남을 포장한다. 하지만, 속된 말로 <아사코>의 도입부가 '영화 같다'면,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는 흔히 운명적인 것을 영화 같다고 말하지 않는가. 영화사에서 멜로드라마 장르가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유도 운명적인 사랑을 믿고 싶은 관객의 정서와 심리가 시대를 초월하여 강렬히 요동치기 때문이다. 아사코와 바쿠의 사랑은 때늦은 사랑법이지만, 영화 같은 순간을 상상하면 떠올릴 법한 신비한 기운이 응집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영화 같은 순간을 작동케 하는 폭죽의 우연성이 있다. 평범한 일상을 단숨에 뒤집는 폭죽 소리는 무심히 지나친 시간의 틈을 인식하게 한다. 아사코와 바쿠의 시선 응시, 키스, 대화의 행위는 모두 폭죽 소리를 중심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폭죽의 우연성 아래 운명적 사랑을 맺는 것이다.

만약 <지구 최후의 밤>에서 영화 같은 순간이 있다면 무엇일까. 고정된 형상의 키스를 나눈 <아사코>와 달리 역동적으로 회전하는 방에서 뤄홍우와 카이리가 키스를 나누는 마지막 장면은 어떤가. 이때 의미심장한 것은 카메라의 움직임이다. 두 남녀의 키스를 바라보던 카메라는 자리를 이동하여 발광하는 폭죽을 보여준다. 이 폭죽은 극 중 카이리의 말에 의하면, 찰나의 순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뤄홍우의 꿈을 지시한다. 폭죽이 꺼지면, 뤄홍우의 꿈도 끝날까. 카메라는 화면을 암전하여 그 마지막 순간을 유예한다. 같은 의미로 <지구 최후의 밤>은 폭죽으로 영화의 허구성과 재현성을 은유한다. 영화가 초당 24장의 사진으로 구성될 때, 그것은 항상 형형하게 살아 움직이는 존재로 보이지만, 실은 탄생과 소멸을 수없이 반복하는 허구적인 재현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폭죽도 발광하며 존재를 증명하지만, 발광은 곧 종언을 무수히 알리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따라서 마지막 암전은 찰나의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려는 무력한 진심이 아닐까.

그런데 흥미롭게도 두 영화 중 태도를 바꾸는 쪽은 <아사코>다. 운명적인 사랑을 이야기하던 <아사코>는 장르적 관습을 탈피하여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간다. 도입부에서 첫 키스를 나누는 장면 다음은 친구 오키자키(와나타베 다이치)와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아사코와 바쿠의 모습이다. 바쿠는 "그렇게 만나게 되었지."라 말하고, 그 말을 믿을 수 없는 오키자키는 "에이, 말도 안 돼"로 응수한다. 바쿠와 오키자키의 대화는 아사코와 바쿠의 운명적 사랑을 지시하는 발언이면서, 도입부의 시제를 현재에서 과거로 바꾼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아사코와 바쿠는 사랑을 시작한 과거에서 오키자키와 대화를 나누는 현재까지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이야기하지 않은 시간의 공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사코>는 사랑이 싹튼 첫 순간을 이야기하면서, 그 사랑을 간직하고 변화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이것은 거시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사코>는 크게 세 개의 시점으로 분류할 수 있다. 아사코와 바쿠가 처음 만난 순간, 2년 조금 지난 후에 료헤이와 아사코가 처음 만난 순간, 5년 후 바쿠가 아사코에게 다시 찾아온 순간이다. 그런데, 세 시점 사이에는 응당 있어야 할 이야기가 없다. 바쿠가 떠난 이후 아사코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료헤이와 아사코는 어떻게 사랑을 가꿔왔는지에 관한 맥락은 모조리 제거되어 있다. 그렇다고 관객에게 시간의 공백을 추리하거나 묻지도 않는다. 그저 시간을 건너뛴 사실만을 친절히 알려줄 뿐이다. 이를테면, 아사코와 료헤이가 다시 만난 순간, 영화는 5년의 시간을 가뿐히 초월한다. 그리고 5년 후 보여주는 것은 지극히 단순하다. 아사코와 료헤이의 단란한 모습, 친구 쿠시하시(세토 코지)와 마야(야마시타 리오)의 결혼과 같은 삶의 개괄적인 부분을 몽타주로 요약하여 기능적인 정보만 제공할 뿐이다. 이것은 인물의 입체성을 도려내는 매우 안일한 방식이다.

그럼에도 <아사코>가 시간의 공백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아사코와 바쿠가 처음 만난 도입부를 영화 같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것은 영화의 통속적인 외형과 분위기, 스타일만 남은 겉치레를 지칭하는 것에 가깝다. 운명적인 이야기는 우리의 삶에서 지루한 부분을 제거한 요약본으로 매력적이지만,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복잡한 삶과 거리가 먼 종류의 것이다. <아사코>는 시간의 공백으로 멜로드라마 장르의 핵심인 감정과 정서, 공감의 영역에 의존하지 않는다. 잘 짜인 원인과 결과, 위기 구조와 완결적인 운명처럼 관습적인 공식과 상반된 태도를 견지한다. 영화의 마지막, 아사코가 료헤이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는 이유도 감정과 공감의 영역을 벗어나기 위해서 아닌가. 그러니까, <아사코>는 반(反) 멜로드라마다.

그래서일까, <아사코>는 관객에게 동의를 요구하지 않는다. 영화 속 인물들은 동의의 문제를 벗어날 때, 내면에 기거하는 이중성을 드러낸다. 신발을 사러 다녀온다는 말과 함께 사라진 바쿠와 아사코의 돌발적인 선택이 의중을 파악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까닭은 영화 전체가 이중성을 함의하고 있어서다. <아사코>가 청춘의 사랑을 대표하는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응시하고 있어서다. 영화 속 인물이 절대적인 감성과 공감에 지배당하지 않을 때, 관객은 타자의 위치에서 날것의 정체성을 오롯이 응시할 수 있다. 그렇게 <아사코>는 공감의 영역 밖에서 선택하고 움직이며 삶과 닮은 영화가 된다. 닮은 얼굴인 도플갱어라는 설정도 이중성을 보여주는 방식의 일환으로 히가시데 마사히로 한 배우가 료헤이와 바쿠 두 배역을 연기하는 모습은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이질감을 준다. 그럼에도, <아사코>는 판타지로 넘어가지 않고, 리얼리티를 유지하는 기묘한 균형감을 자랑한다. 이런 설정으로 <아사코>는 현실과 꿈, 현실과 영화, 일상과 비일상, 우연과 운명이 교차하는 묘한 순간을 반복, 변주하며 나타내고 있다.

반면 <지구 최후의 밤>은 오히려 영화의 허구성에 더 몰두한다. '기억은 진실과 거짓이 섞인 채 수시로 눈앞에 떠오르는 것이며, 영화는 몇 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가짜'라는 뤄홍우의 말은 <지구 최후의 밤>을 견인하는 내적 논리로 기억과 영화의 성질을 조금도 숨길 마음이 없어 보인다. 이 대목을 전제로 1부의 조각난 기억들에 주목해보자. 보통 영화가 인물의 혼잡한 내면과 기억을 다룰 때는 플롯을 복잡하게 구성하여 순수한 기억을 조각낸다. 하지만 <지구 최후의 밤>은 조립을 목표로 분절된 기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각나 불완전한 상태가 기억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기억은 애초에 조립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명료하지 않은 기억의 파편은 어떤 이해나 의미를 조성하는 도구가 아닌, 기억 그 자체다.

<지구 최후의 밤>은 수시로 눈앞에 떠오르는 기억을 영화의 편집법에 녹여낸다. 뤄홍우가 트럭을 수리하는 장면에서 (시제가 명시되지 않은 시기의) 완치원과 키스를 나누는 기억이 틈입하는 장면이 그렇다. 키스신은 미학적으로 아름답지만, 등장해야 할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 난해한 편집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영화라는 예술이 본질적으로 눈속임이라는 것을 떠올린다면, 뤄홍우와 완치원의 키스는 영화의 허구성 자체를 체현하는 편집이 아닐까. 갑작스러운 키스는 당혹스럽지만, 편집은 원래 자유로운 것이다. 기억은 치밀한 논리의 문제가 아니기에 당혹스러운 마음이 당연하다. 영화에 관한 영화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지구 최후의 밤>이 2부를 3D로 재현하는 이유도 인물이 움직이는 과정을 세심히 보여주기 위해서다. 비록 거짓으로 가득한 허구의 세계이지만, 그것이 영화의 본질이자 매혹이라는 듯이 말이다. 따라서 3D 롱테이크만을 활용하여 2부를 완성해야 하는 까닭은 감독의 현학적인 야심이나 기술 시연의 과시가 아니라,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공간감을 극대화하여 허구와 실제의 간극을 드러내고, 불안하게 이어지는 꿈의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아사코>의 도플갱어와 <지구 최후의 밤>의 도플갱어는 무엇이 다를까. <아사코>가 같은 얼굴이지만, 다른 인간의 모형으로 관객에게 다가갔다면, <지구 최후의 밤>은 비슷한 얼굴이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가상의) 인간임을 드러내는 철저한 영화적 재구성이다. 같아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것. 그것이 영화의 본령이니까. 그런가 하면, <지구 최후의 밤>에서 보이는 반복의 모티브는 <아사코>처럼 이중성의 간극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변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다.

서로 상반된 방식이지만, <아사코>와 <지구 최후의 밤>을 쿠시하시(<아사코>)의 대사를 빌려 이렇게 통칭할 수 있을까. "형태가 있는 물건은 모두 깨지기 마련"이듯, 두 영화는 전방위적으로 형태를 부수어 무형적인 세계를 만든다고. 기계적인 스타일의 확장이 아니라 영화와 삶의 접점을 독창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아사코>의 마지막 장면, 강물이 불어났다고 말하는 료헤이의 인식 변화는 기존의 고정된 형태(그릇)가 부서져 비가 내렸기 때문이다.(이 비는 오키자키 어머니의 비밀을 알게 된 순간 내리는 소낙비로 세계의 변화를 은유한다) 비록 급격히 불어난 강물은 료헤이의 말처럼 더럽지만, 더러움이 곧 강물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아사코는 료헤이의 말에 덧붙여 아름답다고 말한다. 더럽고 아름다운 것은 사랑의 양면적 속성일까, 인물의 이중성일까, 영화와 삶을 지시하는 말일까. 분명한 사실은 강물은 자유롭게 흐를 뿐이다. 흐르는 것은 더럽고 아름답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연속성을 가진다. 불연속적인 언어는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을 정확히 규정할 수 없다. 우리 삶은 규정할 수 없이 계속 흐르고 변하는 강물이 아닐까. 그렇기에 <아사코>의 인물들은 화면을 쳐다본다. 어떤 언어로도 치환할 수 없는 '본다'는 행위로 영화를 드러낸다. 영화는 끊임없이 흐르는 삶을 보아야 한다. 그때 영화는 스크린 밖을 응시할 수 있다.

그 물컵은 깨졌을까. <지구 최후의 밤>에서 뤄홍우와 카이리가 바라보던 물컵은 기차 소리에 흔들리다 테이블 아래로 떨어진다. 하지만, 카메라는 땅에 떨어져 물컵이 깨졌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어쩌면 뒤늦게 강물이 불어난 사실을 깨달은 료헤이와 아사코처럼, 뤄홍우는 영화라는 꿈에서 깨었을 때 물컵이 깨진 사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아사코는 바쿠의 자동차에서 잠에 든다. 잠에서 깬 그녀가 다시 료헤이에게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아사코는 뤄홍우와 똑같은 꿈을 꾸지 않았을까.

영화가 삶을 오롯이 담아내는 것은 불안하고 불완전하다. 아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불가능 속에서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아보는 시도는 영화가 할 수 있는 흥미로운 일인지도 모른다. <아사코>와 <지구 최후의 밤>은 영화의 안과 밖을 자유롭게 오가며 삶과 공명하려는 독창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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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namen 님의 리뷰
2020.01.23 03:20:03
라라랜드를 비웃는 동양의 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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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님의 리뷰
2020.01.06 11:47:18
어떤 생각
왕가위, 데이빗 린치가 거론되는 영화 <지구 최후의 밤>.

며칠 전에 일찍 퇴근한 덕분에 명동cgv씨네라이브러리에서 봤다.

이 영화를 두고 수많은 영화광이 호평을 쏟아내고 있는데

난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에서 왕가위의 색채를 끄집어낼 수 없었고

촬영에 문외한이라 그런지 템포 있는 전반부와 롱 테이크의 후반부에서 조금도 감탄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저, 특별히 피곤하지 않았는데도 잠을 참느라 혼났다.

탕웨이가 실컷 팔색조의 매력을 뽐내는 데도 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난 중국 영화와 맞지 않는 건가 하는,

흥미롭게도 남들은 다 지루함을 느꼈다는 <황금시대>를

3시간 내내 초롱초롱한 눈으로 지켜본 나는 생각했다.


요즘 들어 느끼는 건데,

내 수준에 비해 너무 어려운 영화들을 보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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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님의 리뷰
2019.12.12 12:34:43
수직과 수평으로 직조된 마지막 밤을 쫓는 명징한 시선을 나는 잊지 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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