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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Little Women)

드라마 / 2019

개요
드라마, 멜로/로맨스, 미국, 135분, 전체 관람가, 2020.02.12 개봉
감독
그레타 거윅
배우
시얼샤 로넌
엠마 왓슨
플로렌스 퓨
엘리자 스캔런
티모시 샬라메
메릴 스트립
로라 던
밥 오덴커크
루이 가렐
제임스 노턴
트레이시 레츠
크리스 쿠퍼
시놉시스
Dear women

그해 겨울, 사랑스러운 자매들을 만났다

배우가 되고 싶은 첫째 메그(엠마 왓슨)
작가가 되고 싶은 둘째 조(시얼샤 로넌)
음악가가 되고 싶은 셋째 베스(엘리자베스 스켈런)
화가가 되고 싶은 막내 에이미(플로렌스 퓨)

이웃집 소년 로리(티모시 샬라메)는 네 자매를 우연히 알게되고 각기 다른 개성의 네 자매들과 인연을 쌓아간다.

7년 후, 어른이 된 그들에겐 각기 다른 숙제가 놓이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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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77%
4.05점
키노라이트 분포
6개
136개
별점 분포
예고편
리뷰
99

DAY 님의 리뷰
2020.02.14 09:06:14
<작은 아씨들>, 불행 옆에 있을 때 행복은 더 뜻깊다
1. 미국 뉴잉글랜드의 한 마을, 제각기 다른 꿈을 꾸는 네 자매가 살아간다. 배우가 되고 싶은 '메그(엠마 왓슨)', 작가를 꿈꾸는 '조(시얼샤 로넌)', 음악가의 길을 가려는 '베스(엘리자 스캔런)', 그리고 화가 지망생 '에이미(플로렌스 퓨)'. 네 자매는 서로 다투고 싸우기도 하지만 '엄마(로라 던)'를 도우며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조는 한 연회에서 우연히 이웃집에 사는 소년 '로리(티모시 샬라메)'를 알게 되고 그는 곧 네 자매 모두의 친구가 된다. 그러나 행복하고 즐거운 유년시절은 곧 끝나고, 7년이 지난 후 어른이 된 그들은 사랑과 꿈을 둘러싼 현실의 벽을 마주한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7번째 영화 <작은 아씨들>은 인상적인 문장을 하나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나는 고난이 많았기에 즐거운 이야기를 썼다." 원작자 루이자 메이 올컷이 남긴 이 문장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작은 아씨들>의 스토리, 구성과 연출 등 영화의 모든 부분에는 이 문장이 스며들어있다.

2. <작은 아씨들>은 서로 다른 꿈을 지니고 각각의 개성을 자랑하는 네 자매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여성을 제약하는 현실의 벽을 넘어서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묘사한다. 특히 그중에서도 '조'가 어떻게 시련을 밑거름으로 삼아 당당히 작가로 거듭나는지가 이 스토리의 핵심이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면서 그녀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시점만 교차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화는 주로 행복하고 희망찬 순간을 중심으로 과거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반대로 현재 시점에서는 대부분 불행하고 어두운 순간만을 보여주면서 인물들의 불행과 행복을 극적으로 대조한다. 이를 통해 과거의 행복은 더 아름답고, 현실의 불행은 더 날카롭고 고통스럽게 묘사된다.

이러한 스토리텔링 방식은 오프닝에 등장한 루이자의 문장과 일맥상통한다. "고난이 많았기에 즐거운 이야기를 썼다"는 말은 곧 '불행했기에 행복한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고, 바꿔 말해 '불행했기에 행복할 수 있었고, 불행을 경험할 때 행복이 더 뜻깊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와 현재, 즉 불행과 행복을 오가는 전개 방식은 원작자가 남긴 메시지를 고스란히 품어낸 모범적인 스토리텔링인 셈이다.

3. 이러한 대조와 대비의 스토리 텔링은 영화 속 조명을 통해 더 확실히 전달된다. 작중 조명은 과거와 현재, 행복과 불행의 대립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낸다. 과거의 사건들은 오렌지 느낌의 밝은 조명 아래에서 묘사되어 밝고 따뜻하며 훈훈한 이미지로 포장된다. 반면에 현재 시점에서 네 자매가 겪는 어려움과 시련은 푸른빛의 조명이 비추며, 이러한 조명은 건조하고 차가우며 꾸밈없는 이미지를 만든다.

시각적 이미지의 대립은 각 에피소드마다 미처 사건의 전말이 다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도 관객들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졌고 또 벌어질지 직관적으로 알려준다. 과거의 네 자매, 현재의 조와 베스가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시다. 이 장면들 속 조명은 같은 해변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극명하게 다른 분위기를 전해주며, 이후 전개를 암시한다.

영리한 편집도 도움을 준다. 영화는 주인공들이 카메라에 담긴 구도가 혹은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가장 비슷한 순간을 기점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위함으로, 이어지는 스토리의 괴리감과 비극성을 가장 강렬하게 제시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같아 보이는 한 에피소드의 시작이 전혀 다른 결말로 마무리되는 과정을 곧바로 대조시키면서 묘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의 조가 베스 병간호를 하던 중 잠깐 잠에 들었다가 깨는 순간은 영화의 스토리텔링, 조명, 그리고 편집이 가장 잘 맞아떨어진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베스의 침대 옆에서 잠깐 잠에 든 조가 일어나는 순간은 과거와 현재 시점 모두 동일한 구도로 카메라에 담기고 과거 시점의 이야기가 펼쳐진 후 바로 이어서 현재의 이야기가 제시된다. 이때 상반된 조명이 만들어 낸 이미지는 조가 잠에서 깬 이후 전개될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것임을 암시한다. 또한 이 장면은 조가 결혼을 하지 않고 작가가 되려고, 또한 진짜 자신만의 글을 쓰기로 결심하며 성장하게 되는 계기로써 스토리 전개 상 가장 결정적인 분기점의 역할도 한다.

4. 이처럼 상반된 이미지를 활용해 의미를 만들어내려면 행복과 불행의 기준점을 찾아야만 한다. 그래야 영화가 의도하는 불행과 행복의 대조가 명확해진다. 또한 인물들이 겪는 불행과 행복은 단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관객들의 것도 되어야 한다. 그때 영화가 말하는 메시지가 주는 울림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작은 아씨>들은 여성들을 제약하는 시대적 현실과 네 자매가 그 현실을 극복하는 과정을 묘사하면서 위 조건들을 충족시킨다.

<작은 아씨들>의 배경은 미국의 남북전쟁 전후로, 여성들의 이상적인 삶이 결혼해서 가정을 유지하는 것에 국한되어 있던 시기다. 여성이 돈을 벌려면 배우가 되거나 사창가로 가야 하기 때문에 결혼을 잘해야 한다는 '대고모(메릴 스트립)'의 말은 당시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그에 반해 네 자매는 결혼을 하든 안 하든 각자가 꿈꾸는 방식으로 여성의 한계를 깰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낸다. 그러나 7년이 흐른 후 그들은 이내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가정교사 존과 결혼을 선택한 메그는 가난한 삶을 살아간다. 뉴욕으로 떠난 조의 글은 쉽게 인정받지 못한다. 유학을 떠나는 에이미는 자신이 생각한 만큼 그림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한 조와 에이미는 본인이 선택한 사랑과 결혼이 옳은 선택인지 혼란스러워한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그들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도, 혹은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경력을 쌓아가더라도 모두 응원을 보낸다. 결혼을 말리는 조에게 너의 꿈이 나의 꿈과 다를 수 있다고 말하는 메그의 대사처럼, 서로 다른 선택 안에서 각각 얻을 수 있는 행복을 모두 보여주며 모든 여성들의 선택 그 자체를 존중한다. 그리고 현재에도 많은 여성들이 네 자매처럼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불행, 좌절, 시련, 극복, 선택은 영화를 보는 관객 자신의 모습과도 쉽게 동일시된다

5. <작은 아씨들>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과 각색상 등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서 의상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도 숱한 시상식들에서 여러 부문에 걸쳐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직접 만난 <작은 아씨들>은 자신에게 쏟아진 호평이 결코 과장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대조의 스토리텔링과 편집, 그리고 시각적인 이미지에 이야기를 담아내는 조명을 활용한 연출은 "나는 고난이 많았기에 즐거운 이야기를 썼다"는 문장에 담긴 원작자의 메시지를 적절히 작품 내에서 환기시켜준다. 관객들로 하여금 150여 년 전 네 자매의 이야기에 자신의 행복과 불행에 일치시키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도 인상적이다. 여기에 더해 당당한 표정과 주관이 매력적인 시얼샤 로넌, 시간에 따라 변화한 인물에 완전히 녹아든 플로렌스 퓨, 그리고 능청스러운 매력을 뽐내는 티모시 샬라메 등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겸비한 영화, <작은 아씨들>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고전 소설 영화화의 모범답안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박성현 님의 리뷰
2020.02.13 02:52:25
[작은 아씨들]은 [작은 아씨들]을 완성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이는 주인공 조 마치가 남성 중심 문학계의 벽에 부딪히지만 네 자매와 함께한 소년기와 청년기의 추억과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여성을 하나의 주체로 표현하는 이야기고, 자매들의 상실, 베스의 죽음과 메그, 에이미의 결혼으로 인한 소년기의 끝을 돌아보며 그 슬픔과 행복, 변화와 성장이 잊히지 않게 노력한 이야기며, 네 자매를 비롯한 로렌스 일가와 다른 여러 주변인들이 남북전쟁 직후의 북부에서 살아가던 이야기다.

1부와 2부의 시간적 단절이 각각의 내러티브를 나눠놓은 원작 소설과 다르게 그레타 거윅은 2부 시점의 조 마치가 1부의 사건들을 회상하는 형태를 취하며 과거와 현재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작동하게 만든다. 작가의 꿈을 키우며 다락방에서 밤새 소설을 쓰던 어린 조 마치의 모습이 바로 뉴욕 하숙집에서 가족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신문사가 원하는 자극적 소설을 집필하는 청년 조 마치의 모습으로 넘어가는 구성이 대표적인데, 이런 구성을 통해 마치 일가의 일대기는 가정적 사건의 시간적 나열이 아닌 성장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이야기가 된다.

그레타 거윅의 각색만 훌륭한 것이 아니라 연출 또한 각 순간에 캐릭터들의 상호작용이 갖는 의미와 캐릭터의 감정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방식을 택한다. 19세기의 시대상을 재현해낸 미술과 의상은 말할 것도 없고 장면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서로 다른 색감으로 나타내어지는 것도 아름답다.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음악이야 말할 것도 없고...

굳이 아쉬운 점을 말해야 한다면 바뀐 결말부 정도가 있을까? 원작자 루이자 메리 알콧이 소설의 주인공 조 마치와 다르게 평생 결혼하지 않은걸 이용한 트릭이 있는데 조와 로리의 관계, 조와 프리드리히의 관계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데 있어 조금 혼란이 생겼다.

정리하면, 작은 아씨들은 2019년 최고의 영화 중 하나이고, 고전의 훌륭한 각색과 빼어난 연출, 음악, 촬영, 의상, 미술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아카데미가 기생충의 진가를 알아보는데는 성공했으되 그레타 거윅의 성취를 인정하지 못한 것은 많이 아쉬운 일이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리디 님의 리뷰
2020.02.12 11:17:40
새삼 자라난 내가 보여 어쩐지 아득한 감정들이 올라왔던 작은아씨들
먼저 칭찬부터 하자면 가난하지만 고풍적인 그 시대 집과 의상, 소품들의 조화가 아름답게 스크린을 채운다. 디테일한 소품까지 세심한 디렉팅으로 특히 여성관객이 많은 그레타거윅 다웠다.
출연진들로 인해 먼저 화제가 되었던 이 영화는 엠마왓슨, 시얼사 로넌, 엘리자 스캔런, 플로렌스퓨, 티모시살라메, 루이가렐, 로라던 등이 출연하며 이 시대 핫한 스타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조금 아쉬운점이 있다면 인물에 대한 포커스이다. 책을 써내려가는 조마치가 화자이므로
비중이 많은것은 어찌보면 당연하겠지만 로리와 에이미의 비중이 원작에 비해서는 투머치라는 것이 주관적인 느낌. 사실 자매들의 러브스토리보다 그들의 관계, 꿈에 대한 노력과 좌절등에 대해서는 책보다 가볍게 지나가지 않았나 싶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 영화로 만난 네 자매를 이제는 어른의 시점으로 보자니 어쩐지 소녀 때
그녀들을 만났을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조의 글을 무시하고 결혼만을 이야기하는 사회, 죽은 가족의 빈 침대를 보는 조의 감정,
가족을 위해 좋아하는 물건을 사고 후회하는 메기의 마음 등은 내가 커버렸기도 하고, 책을 읽은 그 때의
내 인생 이후에 겪은 일이므로 이해하고 싶지 않아도 이해되는 감정들이다.
영화를 보며 소녀와 어른 사이의 틈을 느낀다. 새삼 자라난 내가 보여 어쩐지 아득한 감정들이 올라왔던 작은아씨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조신익 님의 리뷰
2020.02.23 18:51:38
깊이있는 인물로 기품있게 일궈낸 기분 좋은 앙상블
2017년, <레이디 버드>로 뛰어난 배우를 넘어 뛰어난 감독임을 증명한 그레타 거윅의 차기작은 이미 수차례 영화화된 고전, [작은 아씨들]이었다. <레이디 버드>로 어리고 새로운 인물과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풀어냈던 그레타 거윅 감독이기에 고전적인 [작은 아씨들]을 선택한 것은 의외라 느껴졌고 더군다나 이미 성공적인 영화화 사례가 오래전부터 수차례 존재했던 [작은 아씨들]이라 더더욱 의외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니 그 선택의 이유가 충분히 와닿았다. 감독 본인에게는 1인극(<레이디 버드>)에서 앙상블의 이야기로 확장하는 계기이면서 동시에 다시 한번 성공적인 여성 서사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장점은 살리면서도 감독의 세계를 확장한 좋은 영화이지 않나 생각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여러 인물들의 앙상블에 있다고 생각한다. 시얼샤 로넌, 엠마 왓슨, 플로렌스 퓨, 엘리자 스캔런, 티모시 샬라메, 로라 던, 메릴 스트립, 등등등. 각각의 좋은 배우들이 펼치는 뛰어난 연기와 그 연기들이 합쳐져 폭넓게 상황을 살려낸다는, 표면적이고 기술적인 이유에서도 아주 뛰어나고 보는 재미가 충분하지만 그 앙상블의 상황을 살려내고 활용하는 연출이 아주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네 자매의 과거, 그리고 그들이 살던 집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앙상블 자체가 다수 등장할 수밖에 없고 감독은 그 상황에서 주요한 이야기를 진행하면서도 각 인물들의 개성을 아주 잘 살려내고 있다.



그러한 장면은 수도 없이 등장하지만 딱 하나의 예시를 들자면 영화 초반 등장하는 크리스마스 장면을 들고 싶다. 형편이 그리 좋지 않음에도 자신들의 음식을 불우한 이웃에게 주자는 어머니[로라 던 분]의 말에 네 자매는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그리 탐탁지만은 않아 보이는 에이미[플로렌스 퓨 분]와 조[시얼샤 로넌 분], 그에 반해 어머니의 의견에 곧잘 따르는 메그[엠마 왓슨 분], 베스[엘리자 스캔런 분]. 결국 어머니의 의견에 따르긴 하지만 잠깐의 대화를 통해 인물을 아주 잘 드러낸다. 이러한 묘사를 겹겹이 쌓아나가면서 영화는 인물들의 깊이감을 더해나가고 그 깊이감이 새로운 앙상블을 만들어내며 선순환을 이어나간다.


인물들의 깊이감이 확보가 되기에 꽤나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이야기해도 그리 큰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예를 들면 소설가이자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조가 가족, 그리고 그 당시 시대와 상호작용하며 느낀 부분이 영화 내내 쌓이기 때문에 여성의 고충을 직접적이고 일상적이지 않은 말투로 언제든 이야기해도 이상하지가 않다. 이미 그 인물 자체에 대한 설명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그러한 발언에 대한 당위성을 확보해놓은 셈이다. 나머지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직접적으로 이를 언급할만한 인물은 영화 내의 맥락에서 봤을 때 조가 유일하긴 하지만, 다른 인물들을 바라봐도 확실한 특징과 개성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인물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가 된다. 캐릭터의 성격이나 상황, 많은 부분에서 조의 대척점에 있는 메그, 천방지축이지만 점차 성장하고 각성하는 에이미, 인물의 대사를 빌리자면 "그들 중 가장 착한" 베스. 각 인물마다 큰 축을 담당하고 있고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내용을 적진 않겠지만 영화의 결말은 그 네 인물의 성격이 모두 합쳐져 만든 일종의 이상향과도 같은 방향이다.


<버즈 오브 프레이>를 리뷰하며 필자는 이런 말을 했다. 아무리 보편적으로 맞는 말이라도 그것이 영화의 맥락 안에서 당위성을 확보해야 비로소 영화 안에서 맞는 말이 될 수 있다고. <작은 아씨들>은 그 당위성을 깊이 있는 인물들로 확보하고 그러한 인물들의 앙상블로 확장해내며 하고자 하는 말을 풍부하게 이끌어내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방향성을 이미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레타 거윅 감독은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작은 아씨들]을 선택해 영화화한 것은 아니었을까.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동구리 님의 리뷰
2020.02.13 01:06:16
현재와 현재를 교차시키는 지금의 나
*스포일러 포함



배우가 되고 싶은 첫째 메그(엠마 왓슨), 작가가 되고 싶은 둘째 조(시얼샤 로넌), 음악가가 되고 싶은 셋째 베스(엘리자 스캔런), 화가가 되고 싶은 막내 에이미(플로렌스 퓨). 아버지(밥 오덴커크)는 남북전쟁에 자원해 전장으로 떠났고, 네 자매는 엄마(로라 던)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한 파티에 참석한 조는 우연히 옆집에 사는 로리(티모시 샬라메)를 알게 되고, 네 자매와 로리는 유년시절을 함께하게 된다. 각자의 꿈과 감정이 교차하는 유년시절은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는 성인기를 향해 나아가는 토대가 된다. 그레타 거윅의 두 번째 단독 연출작 <작은 아씨들>은 너무나도 유명한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1917년 영국에서 처음 제작된 이래 이번이 일곱 번째 영화화이다.


그레타 거윅은 원작의 2부의 해당하는 성년기의 이야기와 1부에 해당하는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교차하여 보여준다. 뉴욕으로 떠난 조의 시점에서 시작한 영화는 조를 비롯한 자매들이 과거를 떠올릴 수 있는 순간들을 만날 때마다 7년부터 시작되는 유년시절의 기억이 플래시백으로 등장한다. 직선적으로 흘러가는 이야기가 아니기에 네 자매(와 로리)의 유년시절이 어떻게 이들의 현재를 구성하는지 조금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원작을 읽지 않았기에 알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네 자매는 자신의 현재를 각자의 선택으로 결정한다. 그 선택의 근거가 되는 것은 각자, 그리고 함께 살아온 시간, 남북전쟁을 통과한 시대적 상황, 배우/작가/음악가/화가라는 꿈과 그것의 변화이다.


영화를 구성하는 두 타임라인을 잇는 것은 네 자매의 형상이다.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순간들, 그 기호들은 마치 과거의 데자뷔처럼 찾아온다. 처음 파티에서 춤을 춘 순간과 앞으로 계속 기억하게 될 누군가를 만나는 순간, 같은 해변을 다시 찾아 보내는 시간, 뉴욕으로 떠나는 기차와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집의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 그 순간들은 갑작스레 현재에 끼어들거나 대신하고, 심지어 사운드를 통해 중첩되기도 한다. 나의 것이면서 동시에 너의 것인 기억, 때문에 우리의 기억이 된 과거는 그렇게 현재를 구성한다. 이러한 구성의 백미는 조가 출판사 대표를 만나는 장면이다. 영화 초반, 조가 단편 소설을 팔기 위해 잠시 만났던 그는 여성이 주인공이라면 엔딩에서 죽거나 결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팔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네 자매에게 그대로 일어난다. 메그와 에이미는 결혼했고, 베스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조는 뉴욕에서 만난 이민자 프리드리히(루이 가렐)와 애매한 관계에 놓여 있다. 자신의 고향집을 방문한 프리드리히를 붙잡기 위해 메그와 에이미, 로리의 도움을 받아 서둘러 기차역으로 떠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격렬하게 키스를 나누는 로맨틱한 장면은 직접 쓴 ‘작은 아씨들’의 출판 계약을 위해 출판사 대표와 대화하는 조의 모습과 교차 편집된다. 조는 영화 초반부에도 언급됐던 “소설의 여성 캐릭터들은 결말에서 결혼하거나 죽어야 책이 팔린다”라는 대표의 말을 수용한다. 현재와 조금 더 현재 시점인 장면이 교차되는 이 장면은 19세기 말에 출간된 작품을 페미니즘적으로 재해석하는 연출임과 동시에, 영화의 앞선 장면들 모두가 교차하는 현재들이었음을 넌지시 암시한다.


조가 쓴 소설은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이며, 네 자매가 공유하는 기억이다. 그가 소설을 쓰는 현재는 과거를 기록함과 동시에 그것을 현재화한다.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을 대신하는 ‘작은 아씨들’의 표지와 책이 제본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조의 표정이 담긴 마지막 장면은 7년의 시간을 포괄하는 영화 전체가 언제나 현재였음을 확신하게 한다. 과거의 기억을 상기하는 행위, 특히 그것이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기호들과 연관되었을 때의 상기는 과거에서 떠오른 기억을 현재에 전면화한다. 때문에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수없이 오감에도 산만하거나 늘어지지 않는다. 전작 <레이디버드>에서 9.11 테러와 뉴욕에서의 동양인 소년을 끌어오며 미국에 거주하는 백인의 안전한 성장 서사라는 맹점이 <작은 아씨들>의 시대적 배경을 통해 소거되었기에 더욱 안정적으로 이들의 교차되는 현재를 그려냈다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아씨들>이 현재를 교차시키는 방식, 과거들을 현재로 만들어 그것이 지금의 자신임을 명명하는 조의 모습이 내게 더욱 흥미롭고 필요한 부분으로 다가왔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수키 님의 리뷰
2020.02.12 19:02:23
다양한 가치관과 삶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타협점이 필요하다.
예전에 학원 다닐때 선생님이 고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시면서 고전은 현재에도 통한다고 하셨는데 그말이 맞는 것 같다. 메그, 조, 에이미, 베스 4자매는 각자 다른 재능이 있었지만 당시 남북전쟁 시대의 여성으로 각자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대부분 조를 통해서 시제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단순하게 조의 성격을 통해 여성의 자립이 필요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시대와 타협점을 찾아가며 존중을 통해 얻어내야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처음에 조는 자신의 원고료를 일방적으로 통보 받지만 마지막에 자신의 책에 대한 판권과 인세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타협점을 찾아서 협상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 메그의 결혼전에 결혼하지말라는 조에게 메그는 서로의 꿈이 다르다고해서 자신의 꿈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는 이야기를한다. 조 같이 자립을 통해 독신으로 살아가겠다는 삶만이 여성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 메그처럼 평범하게 여성으로 살아가는 삶이나 에이미처럼 부자와 결혼하기위해 노력하는 삶 또한 존중 받아야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신념을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 이 이야기는 현대의 모든 대립과 의견차이로 생겨나는 사회문제들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양한 가치관이 존중받아야하며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며 서로 다르다면 타협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2020.02.07 13:38:49
[작은 아씨들] 그레타 거윅과 여성들의 이름 찾기
*<레이디 버드>와 <작은 아씨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은 아씨들>은 감독 그레타 거윅의 두 번째 단독 연출작이며, 시얼샤 로넌을 또 한 번 페르소나로 내세운 영화다. 티모시 샬라메의 연이은 출연, 아카데미의 높은 주목, 여성이 중심에 있다는 점이 전작과 유사하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그레타 거윅의 영화 세계가 반복되고 확장되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작은 아씨들>은 원작이 있는 작품임에도 그레타 거윅만의 색을 입히는 데 성공했고, <레이디 버드>의 훌륭한 변주였다.

<레이디 버드>는 자신의 이름을 거부하던 소녀 ‘크리스틴’(시얼샤 로넌)이 본명을 되찾는 여정을 담았다. 새크라멘토라는 땅을 답답하게 느끼고, 고향에서 물려받은 이름을 거부하던 소녀는 스스로를 ‘레이디 버드’라 칭했다. ‘레이디’(숙녀)라는 이름처럼 여성으로 성숙하고 싶었고, ‘버드’(새)처럼 자유롭고 싶었던 소녀. 그녀는 결국 뉴욕으로 떠나며 자신이 원하던 삶을 얻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정작 그 땅에서 그녀는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버리고 ‘크리스틴’이라는 본명을 선택한다.

<작은 아씨들>도 조 마치(시얼샤 로넌)의 이름 찾기가 중심에 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이야기로 책을 내고 싶었지만, 시대적 한계로 여러 가지 벽에 가로막힌다. 출판할 수 없던 그녀는 자신이 원치 않던 이야기를 무명의 이름으로 출판하려는 시도까지 한다. 그러나 그렇게는 좋은 이야기를 쓸 수 없었고, 자신의 본질과도 점점 멀어진다. 그리던 조는 자신의 유년기를 배경으로 이야기로 걸작을 쓰고, 마침내 ‘조 마치’라는 이름으로 출판에 성공한다.

<레이디 버드>는 자신의 이름을 거부하던 소녀가 이름을 찾는 서사였고, <작은 아씨들>은 자신의 이름을 쓰고 싶던 작가가 이름을 되찾는 서사였다. 이들의 이름 찾기에는 유년기의 기억과 그 시절을 소환하는 과정이 있다. 그레타 거윅은 두 작품에서 ‘이름 찾기’라는 걸 반복하면서 유년기를 향한 그리움을 표현했고, 동시에 거기에 인물을 정의하는 정체성이 있다고 봤다.

자신의 기원을 찾는 신화 속 인물들처럼 그레타 거윅은 이름과 고향에서 인생의 중요한 지점을 계속 발견하려 했다. 그녀는 이 유년기의 기억에서 무엇을 더 발견하고 싶은 걸까. 그리고 이 유년기의 울타리 밖에선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 세 번째 영화로 그레타 거윅을 더 제대로 말할 수 있을 때, 이 궁금증을 풀어볼 수 있을 것 같다.

P.S 두 작품 모두 뉴욕이라는 도시가 유년기의 반대항으로 존재한다는 게 흥미롭다. 더불어 최근 개봉한 <결혼 이야기>에서도 뉴욕은 니콜(스칼렛 요한슨>의 반대 지점에서 갈등을 유발하고 있었다. 세 여성에게 ‘뉴욕’이라는 도시는 어떤 의미일까. 미국인에게 뉴욕은 어떤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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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6 14:09:32
삶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별것 아닌 이야기, 그래도 우리들의 이야기를 품고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 조가 끝내 넘겨주지 않은 것은 그의 유년기와 추억이다. 과거에 그저 묻어두는 추억이 아닌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는 추억. 재능, 열정,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한 사랑, 그게 전부라는 것.

+) 94년도 작품을 보고 재관람하니, 그레타 거윅의 작은아씨들은 굉장히 미래지향적이고 시대에 맞는 대사들로 뛰어나게 각색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적인 편집과 전환이 잦아도 난해하지 않은 플롯구성까지, 앞으로 이 감독의 행보가 너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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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님의 리뷰
2020.03.29 20:54:05
이상한 나라의 그레타 거윅
그레타 거윅은 루이자 메이 올콧의 원작 <작은 아씨들> 속 시간을 뒤엉키게 하며, <작은 아씨들>을 쓰는 작가 조(시얼샤 로넌)의 성장기를 찍는다. 감독은 전작인 <레이디 버드>에서도 시얼샤 로넌을 캐스팅해 크리스틴이라는 한 여성의 성장기를 그려낸 이력이 있다. <레이디 버드>가 레이디 버드가 자신을 크리스틴이라 인정하고 뉴욕에 있는 대학교에 정착하기까지의 성장담이라면 <작은 아씨들>은 익명으로 글을 발표하던 조가 작가 "조 마치"로 책을 출판하기까지의 성장담이라 할 수 있다. 똑같은 배우의 차용은 이 두 영화를 하나의 연장된 작품으로 보게끔 만드는 착시효과가 있다. 크리스틴의 성장을 보여주려 계속 앞으로 달려야만 했던 <레이디 버드>가 시간을 선형적으로 배치한데 비해 <작은 아씨들>이 시간대를 뒤엉키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조가 소설을 쓴다는 점에서 찾아낼 수 있다. <작은 아씨들>을 이렇게 말해볼 수 있을까. 성장해야 한다는 압박에 쫓겨 숨가쁘게 달려온 레이디 버드가 조로 성장해 무엇이 자신을 성장하게 했는지 반추하면서 소설을 써가는 과정을 다루는 영화라고. 두 영화가 별개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레타 거윅의 자서전으로 읽히기에 이런 가정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작품의 차이는 두 작품이 만들어진 환경의 변화가 있다. <레이디 버드>가 인디 진영에 있던 그레타 거윅의 데뷔작이었다면, <작은 아씨들>은 상업 진영에 있는 그녀의 데뷔작이다. "자극적이지도 않"고, 누군가를 위로해주지도 않는 그의 영화는 필연적으로 변했어야 했다. 이 영화를 물론 "매 순간을 기쁘게 싸워나갈"것이라 다짐하고 "내 꿈이 네 꿈과 다르다고 소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말하는 페미니즘 영화라 정의내릴 수 있다. 할리우드가 요구하는 스펙터클한 영화의 기준을 거부하며, 개개인을 비춘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모든 여성의 삶을 응원하고, 매 순간 일상이 투쟁이자 기쁨이라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미스터리다. 장르 문법을 끌어들인 영화다. 로드무비에 가까운 <레이디 버드>와 달리 <작은 아씨들>은 그 내부에 미스터리의 요소를 삽입한다. 그레타 거윅의 트릭은 조가 쓰는 소설이 무엇인지, 어디까지가 소설인지 명확히 하지 않은 데에서 온다. <작은 아씨들>은 이를 흩뜨리려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할 것이라는 신호도 주지 않은 채 급작스레 플래시백을 해 관객을 혼란에 빠뜨리게 하는 것이다. <작은 아씨들>이 단순히 독신주의자인 조가 복원해낸 네 자매(조, 메기, 베스, 에이미)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과거와 현재의 긴장에서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관객과의 게임을 벌인다. 고전을 틴에이지 문법으로 재해석한 평작에 그칠 수 있던 이 작품은 메타-픽션 식의 각색과 거친 편집으로서 그 단점을 극복해낸다.

카메라는 무인칭, 현재 시점이고 카메라가 찍고 있는 것은 그곳에 있는 고유한 이미지다. 즉, 우리가 영화라 묶어서 지칭하는 것들은 일련의 숏들을 다발로 묶어놓은 것에 불과하고, "대상들의 배열이 사태를 형성한(비트겐슈타인)"다고 볼 수 있다. <작은 아씨들>이 시퀀스를 흩뿌려놓고, 그것들을 배열하는 방식이 그러하다. <작은 아씨들>이 시간대를 흩뜨려 만드는 것은 어느 장면이 어느 장면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긴장감이며, 그 긴장감은 미스터리를 발전시킨다. 모든 사실을 흩뿌리고 마지막에야 그들이 하나로 이어진다는 전모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아씨들>은 첫 시퀀스에서 네 자매는 각각 누군가를 만난다. 그리고 그녀들은 그 순간 만난 누군가와 끝내 사랑에 빠지고 만다. 조가 현재 시점에서 프리드리히와 커플로 발전하는 과정을 따라가보면 다음과 같다. 1. 뉴욕에 살면서 글을 쓰는 조는 프리드리히에게 독설을 듣는다-> 2. 그 즈음 베스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프리드리히에 실망해 뉴욕을 아예 떠나기로 결심한다-> 3. 베스가 죽은 뒤 로리가 에이미와 함께 돌아온다는 소식에 놀라고, 고독함을 토로하며 자신이 로리를 사랑했다는 것을 깨닫는다->4, 그러나 로리는 에이미와 약혼했다->5. 프리드리히와 자신이 만났던 순간을 회상하며, 그 둘이 어떻게 친구로 발전했는지 첫만남을 다룬다->6. 프리드리히가 집에 찾아오고, 조는 자신이 프리드리히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7. 떠나는 그를 붙잡고 결혼하며, 소설을 완성한다. (에이미와 로리의 만남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시퀀스1에 나온 조와 마지막 시퀀스에 나온 조가 동일인물인지 확신할 수 없다. 이 둘이 같은 것이라 여기는 것은 순전히 우리가 그런 방식으로 보려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작은 아씨들>이라는 소설을 쓰고, 그것이 실물로 나왔다는 점뿐일 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조가 소설을 쓰며 끝난다. 끝내 우리는 이 영화에서 조가 쓰는 <작은 아씨들>이 영화의 전체 이야기와 무관한 소설일 수 있다는 의심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소설을 쓴다"라며, "우리 인생 이야기"라 하지만 그것이 진짜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우리가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는 소설의 정보는 "우리 인생 이야기"와 목차가 끝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더 우리를 의심케 한다. 프리드리히와 사랑에 빠진 결혼하기로 한 조, 조와 편집자가 협상하는 씬이 겹친다. 이때 이 둘이 정확히 어떤 시간에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편집자는 "왜 둘이 결혼 안 하냐?"라고 질문하고, 그때 프리드리히와 조가 끌어안는다. 이때 "결혼은 소설에서조차 경제적인 거래"라 말한 뒤 "알았다"라고 수긍한다. 이때 조가 지금 프리드리히와 결혼한 뒤 쓴 소설인가? 그 전에 쓴 소설인가? 라는 문제점이 생긴다. 전자일 경우 우리는 이 <작은 아씨들>이 지금껏 조의 인생과 무관할 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할 수 있다. 조가 굳이 독신주의자에서 회심한 이야기를 써, 우리에게 전해주려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우리 모두가 결혼할 수밖에 없고, 그저 그런 일상에도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어딘가 조의 언행과 어긋나보인다. "결혼은 경제적 거래"라는 시니컬한 말을 하는 그녀는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무의식을 투영해 소설을 썼다는 편이 차라리 더 설득력이 있다. 그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사는 것도 소설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조가 쓴 소설이 아닐까?라는 추리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레타 거윅이 이를 가능케하는 이유는 이 영화의 한 장면 때문이다. 이 영화는 조 마치가 <작은 아씨들>을 소설로 써내는 과정을 찍은 영화라 관객을 유도하면서 곳곳에 장치들을 마련해둔다. 조 마치는 더 이상 글을 안 쓴다면서 그간 그녀가 쓴 모든 글을 태운다. 그 중에는 그녀의 일기와 편지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 이전의 삶을 부정하고 다시 글을 쓰겠다는 것, 그 의지에는 그 전의 자신을 잊고싶다는 욕망도 포함되어 있다. 조 마치가 유일하게 남긴 글은 베스를 위해 자신이 쓴 글뿐이다. 베스는 죽기 전 시간이 "썰물같은 것"이라고, "천천히 떠나지만 막지 못한다"고 말한다. 메기와 만날 때도 그녀는 "유년 시절이 끝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라고 고백한다. 이처럼 무언가가 사라져간다는 것을 마주보며, 조는 그 상실감을 극복해내려 소설로서 자신이 살지 않는 삶을 복원해냈을지 모른다. <작은 아씨들>의 이런 우울한 정서는 그 자신이 살지 못한 삶들에 대한 탄식이 녹아있다. 연극배우를 꿈꾸던 메기는 결혼하고, 에이미는 화가를 포기하고, 베스는 죽는다. 조가 이런 현실을 견딜 수 있는 방식이 바로 소설을 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작은 아씨들>은 이 점에서 이상하게도 <레이디 버드>를 창작하는 과정으로 읽힌다. 크리스틴은 시간을 계속 앞지르며 그 자신이 살고파했던 삶을 영화로 창작해내는 그레타 거윅 자신의 상상을 써내려간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플래시백이 남기는 것이 어느 한 순간의 감정뿐이며, 그 불완전한 기억을 감정으로서 풀어내 복원하는 작업이 바로 <작은 아씨들>의 소설 창작 과정이다.


어쩌면 앞선 추정이 급진적일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이 영화가 조 마치의 자전소설 <작은 아씨들>을 찍은 영화라면 어떻게 될까? <작은 아씨들>의 내용이 마지막에 조가 쓴 소설 그대로라면 이 영화는 시시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레타 거윅은 독신주의자가 회개(?)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로 머물지 않도록 장치를 마련한다. 영화에서 되풀이되는 유사한 이미지들 때문이다. 영화는 조라는 캐릭터를 다룰 때, 플래시백을 이상한 방식으로 삽입한다. 영화의 예측할 수 없는 편집점은 이때 힘을 발한다. 조가 춤을 추기 시작할 즈음, 로리(티모시 샬라메)와 처음 만나 춤을 추는 장면을 삽입하지만 그녀의 현실은 더 이상 로리와 춤을 출 수 없는 상태다.
그녀는 이처럼 불숙 끼어드는 기억과 대립하며, 더 이상 현실에 없는 것들과 마주한다. 두 번째로 조는 베스가 없는 자리에 앞서, 베스와 누워있던 장면을 상상한다. 이때 유사한 화면들이 반복되며, 어릴 때는 있던 베스가 지금은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앞서 언급했듯 <작은 아씨들>을 관통하는 정서는 무언가가 흘러가고 있다는 우울의 정서다. (처칠이 우울을 검은 개라 표현했듯이) 이는 너무 급작스레 찾아오는 감정이다. 이같은 배치는 과거와 필연적으로 마주해야하고, 그것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조의 심리를 보여준다. 이처럼 유사성이 반복되는 가운데, 단 하나의 씬만이 다르게 보인다. (베스가 피아노를 칠 때, 크레인 샷으로 로렌스 백작이 들어오는 것을 비추는 씬을 제외하면) 이 영화는 거의 모든 씬을 흔들리는 핸드헬드 숏으로 찍는다. 그러나 단 한 번 카메라가 픽스된 씬이 나온다. 바로 조와 베스가 해변에 앉아있는 씬이다. 조는 죽기 직전의 베스에게 자신이 쓴 글을 읊어주고, 베스는 그것을 글로 써주기를 바란다. 그때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그 씬을 시작으로 조는 고독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조는 필연적으로 사라지는 시간, 혹은 죽음과 마주봐야한다. 이 씬을 고정된 카메라로 찍은 것이 중요한 이유다. 유독 편집 리듬이 짧던 이 영화는 그 순간에만 씬을 길게 유지한다. 그 후로 메기가 결혼하고, 로리가 떠나는 등, 조가 겪는 고독이란 시간을 마주보는 데에서 나온다. 조는 죽기 직전의 베스에게 자신이 쓴 글을 읊어주고, 베스는 그것을 글로 써주기를 바란다. 그 씬을 시작으로 조는 고독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조는 필연적으로 사라지는 시간, 혹은 죽음과 마주봐야한다. 이 씬을 고정된 카메라로 찍은 것이 중요한 이유다. 유독 편집 리듬이 짧던 이 영화는 그 순간에만 씬을 길게 유지한다. 그 후로 메기가 결혼하고, 로리가 떠나는 등, 조가 겪는 고독이란 시간을 마주보는 데에서 나온다.
영화는 우리가 보는 것이 현재라는 것을 알려주지만, 과거와 미래가 하나의 시간에 공존할 수 있다고 (인지하게 만드는) 이상한 매체다. 이 기억의 뒤엉킴은 <작은 아씨들>을 왜 지금 왜 써야하는가를 마련한다. <레이디 버드>가 시간의 무한성을 자각하는 영화라면, <작은 아씨들>은 시간의 유한성을 자각하는 영화다. <레이디 버드>가 이름을 바꾸었다면, <작은 아씨들>은 그 자신이 영원히 기억되도록 책으로 결과물을 남긴다. 그레타 거윅은 질풍노도의 시기가 지난 후, 그녀의 고민을 이 영화에 담아냈다.무슨 서사를 써내려갈 수 있는가? 가 아니라 내가 앞으로 살아낼 시간을 어떻게 견뎌나가는가? 혹은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 이 질문이 <작은 아씨들>의 질문일 지도 모른다. <작은 아씨들>은 시간에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나"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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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잔 님의 리뷰
2020.03.19 02:23:19
영화교재로 쓰여도 충분한 영화 각색의 힘.
대중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시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양날의 칼일 것이다. 우선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문학적으로 뛰어나거나 대중적으로 아주 재밌는 소설이거나, 그래서 더 쉽게 공감이 되기도 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새롭지 않은 이야기라서 별 흥미를 못느낄 수도 있다. 그중에서도 <작은 아씨들> 같은 고전이면서도 이미 수 없이 만들어진 소설이라면 그 부담감은 더 하지 않았을까?


언제나 뛰어난 소설들을 영화로 다시 재 창조되는 것들에 하나 같이 실망스러웠던 이유는 '소설같지 않다' 라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뛰어난, 재밌는 원작을 영화로 만들었을 것이고, 그 뛰어나고 재밌는 절대기준은'더 뛰어나고 더 잼있어야' 한다는 비교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은 절대적으로 부담감으로 다가왔을텐데 그레타거윅의 <작은 아씨들>은 이러한 부담감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영화는 소설을 보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이야기를 하나도 빼 놓지 않고 차곡하게 쌓아올린다. 그래서 이 영화를 마주하는 동안 뛰어난 원작에 대한 경의가 표해지고, 그 원작을 이렇게 멋지게 각색한 감독 그레타 거윅에 다시한번 경의가 표해질 정도다.


적지 않은 등장인물들을 하나 하나 애정어린 캐릭터로 만들었고, 그 캐릭터를 영화적으로 소비하고 쓰임하는데 너무도 인상적인 모습이다. 특히 주인공을 비롯한 다섯 여성들의 캐릭터와 생생한 이야기는 원작의 뛰어남을 다시한번 실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치 역할을 한다. 원작과 영화 모두가 승리한 윈윈의 영화다.


이 원작은 모든 주인공이 여자라서 당연하게도 여자의 싯점으로 보여져야 하고, 그 여자라는 공간안에서 다섯 여성의 각각의 개성있는 캐릭터들이 모두 생생하게 끊임없이 재생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당당하게 여성영화라고 불리기에도 충분한 사회적인 시선까지 놓치지 않는다.


보통 주인공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가 되다 보면 한 사람에 치우치는 경우들이 많지만, 이 영화속에서는 주인공의 시점 또한 놓치지 않으면서 그 많은 등장인물들의 동선과 이야기들을 차곡하게 쌓아올린다. 감독의 능력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좋은 시나리오, 특히 좋은 원작을 기반으로 하는 뛰어난 각색의 힘이다. 정말이지 이 영화의 각색은 영화의 교본으로 쓰여도 좋을만큼 최고의 각색의 힘을 보여준다.


특히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넘나들며 재배치 한 교차편집은 영화라는 공간은 분명하게 소설과는 다른 부분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면서도 원작의 뛰어남을 부각시키고, 엔딩의 마무리는 영화적인 효과를 가장 극대화 시키면서도 원작에 대한 경의가 느껴지기도 할만큼 멋지다.


주인공의 다섯 여성 캐릭터 외에도 등장인물 모두 하나 하나 애정어린 시선이 느껴지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어딘가에는 쓰임이 있다는 말이 생각날 만큼 이 영화속 등장하는 그 어떤 캐릭터들도 의미없이 소비 되어 사라지지 않는다. 정말 최고의 각색이다.


영화의 미흡함으로 원작에 대한 누 가 되는 경우들을 수시로 보지만, 시대적 배경과는 상관없이 지금 현재의 모습에 가장 적절하게 조화하면서도 원작의 훼손을 최소화 시키는 모습은, 누 가 되기는 커녕, 이 영화로 인해 원작소설의 뛰어남까지 다시한번 실감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


그래서 <작은 아씨들>을 보는 135분의 시간은 원작속에서 오롯하게 느낄 수 있었던, 가족의 소중함과 당시 시대의 여성으로써의 모습, 그리고 여성이라는 존재감을 현재의 시각에 맞게 부각할 수 있는 주체적인 삶까지 그대로 영화로 반영되면서 아주 오랜 시간 그 작은 아씨들이 살아간 시간의 긴 여운에 빠져들기에 충분한 시간이 된다. 지금까지 영화로 나온 <작은아씨들>을 모두 본 건 아니지만, 최소한 내가 본 영화 <작은아씨들> 중에서는 최고다.



"우리가 이땅을 이토록 사랑할 수 있음은 이 땅에서 보낸 유년 시절 때문이며, 자그마한 손가락으로 따던 그 꽃들이 봄마다 이 땅에 다시 피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가, 모든 것이 자명하고 자명하기에 사랑받는이 달콤한 단조로움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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