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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실이는 복도 많지 (LUCKY CHAN-SIL)

드라마 / 2019

개요
드라마, 한국, 96분, 전체 관람가, 2020.03.05 개봉
감독
김초희
배우
강말금
윤여정
김영민
윤승아
배유람
시놉시스
집도 없고, 남자도 없고, 갑자기 일마저 똑 끊겨버린 영화 프로듀서 ‘찬실’.

현생은 망했다 싶지만, 친한 배우 ‘소피’네 가사도우미로 취직해 살길을 도모한다.

그런데 ‘소피’의 불어 선생님 ‘영’이 누나 마음을 설레게 하더니 장국영 닮은 비밀스런 남자까지 등장!

새로 이사간 집주인 할머니도 정이 넘쳐 흐른다.

평생 일복만 터져왔는데, 영화를 그만두니 전에 없던 ‘복’도 들어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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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42%
3.64점
키노라이트 분포
5개
61개
별점 분포
예고편
리뷰
43

동구리 님의 리뷰
2020.03.09 14:53:05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건강한 자기애
영화 프로듀서 찬실(강말금)은 자신이 오랜 기간 함께해온 지 감독(서상원)의 신작 <뒷산에 살리라>의 작업에 들어간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고사를 지내고 감독, 스탭, 배우들과 뒤풀이를 하던 중, 지 감독이 갑자기 쓰러져 사망한다. ‘유일무이한 예술감독’과의 작업만을 이어가던 찬실은 “그런 영화는 어느 프로듀서나 붙어도 상관없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잃게 된다. 직업도, 집도, 돈도 없는 찬실은 친한 배우 소피(윤승아)의 집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하고, 어느 할머니(윤여정)의 산동네 집에 세 들어 살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찬실은 소피의 불어 과외를 해주는 단편영화감독 영(배유람)을 알게 되고, 자신을 <아비정전>의 장국영이라 주장하는 한 남자(김영민)가 그의 앞에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아무것도 없는 찬실의 곁에는 이런저런 사람들이 있다.


<우리 순이>, <산나물 처녀> 등의 단편영화를 연출해온 김초희 감독은 원래 홍상수 감독 영화의 프로듀서였다. 그는 <밤과 낮>부터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까지, 2008년부터 2015년까지 홍상수와 함께 일했다. 물론 홍상수 영화의 크레딧에서 김초희라는 이름을 찾을 수는 없는데, 김초희는 그가 연출을 할 때 사용하는 이름이며 홍상수 영화에는 ‘프로듀서 김경희’로 이름이 올려져 있다. 그의 첫 장편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암전된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쇼팽의 ‘장송행진곡’과 함께 술을 마시는 찬실과 지 감독, 그리고 여러 사람들을 보여준다.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과 술자리가 번갈아 나오다 지 감독은 죽는다. 김초희는 영화의 시작부터 프로듀서 찬실과 오랜 시간 함께 일해온 ‘유일무이한 예술감독’을 죽이고 시작한다. 좁은 화면비에서 시작한 영화는 <찬실이는 복도 많지>라는 제목이 등장함과 함께 2.39:1의 넓은 화면비로 열린다. 홍상수의 영화, 혹은 극 중 찬실이 좋아하는 감독으로 꼽은 (그리고 김초희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좋아한다고 밝힌) 오즈 야스지로 영화와 유사한 느낌을 주는 오프닝 크레딧은 영화 중반까지의 스타일을 규정한다. 소피의 집으로 향하던 찬실은 어느 외국인 여성이 멍하니 바라보던 배나무를 멍하니 바라본다. 느릿한 패닝의 리듬감이라던가,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으로 향하는 찬실을 잡는 카메라는 홍상수 영화의 리듬을 복제한다. 찬실과 영이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찬실은 “우리 마치 오즈 야스지로 영화 같아요”라고 말하고, 그 장면의 구도는 <만춘>이나 <동경 이야기> 속 술자리 장면과 같다. 찬실만이 볼 수 있는 유령 같은 존재인 장국영은 단지 옷차림만 <아비정전>의 맘보춤을 추는 장국영을 따라한 것이 아니다. 그는 “3시에 누군가를 만나러 가야 한다”며 사라지기도 한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김초희 감독이 애정을 품어온 영화들에 대한 러브레터임과 동시에, 그 ‘판’을 떠나온 자신의 상황에 대한 푸념의 기록이다. 갑작스레 일을 잃은 찬실의 모습은 김초희 감독의 모습과 닮았다. 부산 사투리가 섞인 찬실의 말투는 김초희 감독의 실제 말투를 따라한 것이라고 한다. 찬실이 세 들어 사는 집의 할머니는 일찍 죽은 자신의 딸이 쓰던 방에 있는 물건들을 자유롭게 써도 된다고 허락한다. 찬실은 그 방에 있던 카세트 플레이어를 들고 나와 속에 들어 있는 테이프를 들어본다. 1992년부터 1995년,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당시 씨네필들이 즐겨 듣던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의 한 대목이 흘러나온다. 게스트로 출연한 정성일 평론가는 <베를린 천사의 시>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집시의 시간>을 언급한다. 찬실은 자신을 영화의 길로 빠져들게 했던 것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집시의 시간>, 장국영 등을 떠올린다. 버리려던 [키노] 잡지들과 DVD, 비디오들을 다시 자신의 방 안으로 옮기고, 노트북을 열어 각본을 쓰기 시작한다.


김초희 감독은 자신의 삶을 복기하듯이 영화를 만들어 나간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찬실의 이야기는 우울하거나 슬프지만은 않다. 찬실은 집은 잃었지만 집주인 할머니를 알게 됐고, 이루어지진 못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다시 느끼며, 돈은 없지만 자신의 상황을 도와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 특히 영화 프로듀서라는 직업은 잃어버렸지만 영화에 대한 애정을 되살리게 된다. 그 과정에 끼어든 (찬실이 싫어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를 좋아하는) 단편영화감독 영과 어디선가 나타난 유령 장국영은 찬실의 안과 밖에서 그의 내적 재건을 돕는다. 그런 의미에서 유령 장국영은 스스로 목표라 여기던 영화가 사라진 찬실의 내면에서 튀어나온 찬실 스스로의 목소리에 가깝다.


다만 그 과정이 매끄럽지는 않다. 홍상수 영화처럼 시작한 영화는 점점 찬실의 ‘복’들을 보여주며 진행되는데, 이 과정이 다소 덜컹거린다. 집주인 할머니-장국영이 등장하는 장소와 소피-영이 등장하는 장소는 찬실의 집과 소피의 집이라는 두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다. 두 공간 사이의 괴리감은 어느 정도 의도된 것이나, 그 사이를 오가는 찬실의 시간은 종종 길을 잃는다. 영화에 대한 찬실의 애정을 복기시켜주는 요소들은 적재적소에 놓여 있다기보단 40대 씨네필들의 이야깃거리처럼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튀어나온다. 그러한 요소들은 어느 정도 코미디로 기능하지만, 동시에 어느 정도 산만함을 만들어낸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성별 반전시킨 전작 <산나물 처녀>가 지닌 단점이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도 드러난다. 다만 그러한 단점들을 어느 정도 상쇄시키는,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건강한 자기애가 드러난다는 점에서 김초희 감독의 다음 영화를 기다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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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mon 님의 리뷰
2019.10.14 17:16:12
La Strada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람 후)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CGV아트하우스상을 포함해 3관왕의 영예를 안은 김초희 감독의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2019)는 감독 본인이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했던 20대 시절 때부터 해왔던 고민을 ‘찬실(강말금)’이라는 캐릭터에 투영해 펼쳐낸 작품이다. 대개 감독의 고민이 담긴 영화는 담담하거나 무거운 톤을 띠지만, 이와 정반대로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전작 단편영화 <산나물 처녀> (2016)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했던 과잉된 독특성을 보완하고, 진솔함을 추가함으로써 기발하고 재미있는 분위기 속에서 서사를 전개한다.

원치 않게 영화 프로듀서 일을 그만두게 되어 살길이 막막해진 찬실은 금시로 자신에게 펼쳐진 문제를 대면하기 힘들어 우선 변두리 산꼭대기 마을로 피하듯 이사한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기에 친분이 있는 배우 ‘소피(윤승아)’의 집에 가정부로 취직해 일하던 중 찬실은 소피의 프랑스어 과외 선생 ‘김영(배유람)’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찬실은 프로듀서 일 때문에 포기했던 연애를 지금이라도 하면서 스스로 해결해야 문제를 잊고자 노력한다. 그렇지만, 찬실은 본인이 임의로 설정한 연애라는 목표에 도달하기는커녕 끝이 없는 추의 진자 운동처럼 이리저리 헤맨다. 영화는 이와 같은 상황을 수많은 계단과 산길을 오르고 내려가는, 다시 말해 찬실의 걸음으로 만들어낸 상승 이미지와 하강 이미지의 반복으로 표현한다.

이렇게 시간을 흘러 보내던 어느 날 찬실의 눈앞에 귀신이 등장한다. 그 귀신은 찬실에게 자기가 왕가위 감독의 영화 <아비정전> (1990)에서 주인공 ‘아비’를 연기한 홍콩의 유명 배우 ‘장국영(김영민)’이라고 소개하며 밤마다 그녀의 곁에 등장한다. 처음에 찬실은 헛것을 보기 시작했다며 귀신의 존재를 부정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귀신에게 고민을 하나 둘 털어놓기 시작한다. 심지어 찬실은 귀신과의 대화를 통해 영화를 사랑하게 된 계기였지만 한동안 잊고 있었던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영화 <집시의 시간> (1989)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다. 즉, 귀신 장국영은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더라도 자기 고민이라도 들어줬으면 하는 찬실의 심정이 환영으로 표출된 것이자, 찬실의 영화를 향한 사랑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영화적인 존재다.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집시의 시간>을 떠올리며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된 20대 시절을 상기한 찬실은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했느냐는 근원적인 질문부터 시작해 그간 미룬 다른 질문들을 서서히 마주한다. 비로소 삶이 무엇인지 궁금해진 찬실은 본인의 삶을 성찰하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삶 속 어딘가에 위치한 영화 덕분에 오늘날 자기가 이 땅 위에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더 나아가, 초심을 되찾은 찬실은 용기를 잃지 않고 본인이 보고 싶은 것, 믿고 싶은 것, 그리고 느끼고 싶은 것을 영화 한 편으로 완성하겠다고 결심한다.

영화는 찬실의 결심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나리오 작성에 몰두하는 그녀의 행위로 그려낸다. 시간의 제약에서 자유로워진 찬실을 담아낸 이미지는 축적되면서 그녀가 타인에게서 행복을 찾으려는 수동적 인물에서 자기에로의 몰입을 통해 스스로 행복을 찾으려는 능동적인 인물로 성장했음을 함축적으로 이야기한다. 끝으로 영화는 늦은 밤에 전등을 사러 동료들과 밖으로 나온 찬실이 뒤에 서서 랜턴을 비추며 “내가 비춰줄게”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출발해, 어딘가에 있는 위치한 터널을 통과한 다음, 찬실이가 연출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화를 보며 박수를 치는 귀신 장국영의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찬실이 비춘 빛이 터널을 통과해 어느 극장에 필름의 형태로 도달하는 엔딩 시퀀스는 프로듀서로서의 삶에 작별을 고하는 동시에 연출자로서의 삶을 환영하는 찬실의 모습이자 영화를 향한 김초희 감독의 자전적인 감정이 담긴 헌사를 영화롭게 공존시킨 마법적인 시퀀스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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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개봉 후 관람)
"La Strada", '찬실'이 끈으로 묶은 비디오 케이스 더미에서 포착된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제목이다. 클로즈업 쇼트로 포착되었다는 점에서 엄청난 의미가 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길'이라는 소재는 중요하다. 계속 걷다 보면 '찬실'처럼 사는 게 뭔지 궁금해지고, 그 안에 영화도 있음을 깨닫게 될 테다. 그런 점에서 손전등의 빛으로 시작해 영화의 빛으로 끝맺음을 하는 엔딩 시퀀스는 볼 때마다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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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석 님의 리뷰
2020.03.19 19:58:00
영화 좋아하세요? 정말 좋아합니다.
개봉관을 쉬이 찾을 수 없는 다양성 영화를 리뷰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건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겠네요. 하물며 일일관객수가 연일 최저점을 뚫는 이 시국에도 얼어붙은 극장가로 발걸음한 이가 대상이라면 더더욱 그러하구요. 하지만 현명한 답이 따라오리라 믿기에 우문임을 알면서도 묻고 싶어요.
영화, 좋아하세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주인공 찬실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쉴 새 없이 달려온 나날에 제동이 걸린 영화 PD입니다. 불혹에 이르러 인생 1막의 끝일지도 모를 지점에 도달한 그는 지금껏 와온 길을 벗어나야 할지, 아니면 이어가야 할지 고민하는데요. 새로운 환경에 처하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새로운 살길을 물색하는... 익숙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지요. 하나 특별한 게 있다면 찬실의 직업에서 비롯되는, 영화를 이야기하는 영화라는 점입니다.

PD와 감독 그리고 배우. 무엇 하나 빠질 수 없는 영화제작의 필수요소지요. 그런데 동시에 가사도우미와 프랑스어 과외교사고, 온갖 새로운 배움에 매진하여 바삐 뛰어다니기도 하네요. 생업과 꿈이 섞이는 오묘한 세계 안에서 이들의 느슨한 연대가 이뤄집니다. 오즈 야스지로를 좋아하는 여자와 크리스토퍼 놀란을 좋아하는 남자 사이에 연결점이 많지는 않겠지만, 설령 단 하나뿐이라도 그것이 영화인 이상 함께 걸어가기엔 충분하지 않을까요.

폐간된지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회자되는 영화잡지 키노, 수많은 영화애호가들이 밤을 지새우게 만든 FM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 그리고... 장국영. 곳곳에 배치된 시네필의 향수를 자극하는 요소에 힘입어 관객은 어느새 찬실의 동반자가 됩니다. 분명 드라마 장르에서 수도 없이 보아온 인생의 서사기야 하지만, 이렇게도 나를 잘 아는 상대 앞이니 자연스레 녹아들 수밖에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이 글을 시작했지요. 저 역시 찬실의 곁을 지키고픈 관객으로서 답을 덧붙이고 싶네요. 정말 좋아합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떻게 찬실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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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씨네 님의 리뷰
2020.03.05 22:11:13
영화도 하고 싶고 사랑도 하고 싶은데 이루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네. 하늘과 지인들과 장국영(?)이 응원합니다. 어쩌면 올해의 기묘한 독립영화. 영화산업에 대한 이야기지만 의외로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정은임의 영화음악, 정성일 평론가, 키노 그리고 장국영이라는 키워드가 숨어 있지요. 여성감독과 여성배우의 활용방식의 모범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모르고 있었던 중고신인 강말금 씨를 주목할 필요가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김초희 감독은 단편 '산나물처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는데(한걸음 더 나아가면 홍상수 감독 등의 실제 프로듀서였다고 합니다.) 독립단편 영화로는 드물게 윤여정 님을 캐스팅하는 대범함을 보였죠. 이런 인연은 이 영화에서도 이어지고요.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의 진정한 씬스틸러는 장국영이 된 김영민 씨인데 한국말하는 장국영은 아마도 독보적인 캐릭터가 아닐까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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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na09 님의 리뷰
2020.02.25 11:01:33
누구에게나 망할 권리는 있는 거 아닌가요?
꽃 피는 봄 찬실이가 몰고 올 복덩이로 모두가 즐겁고 행복하길 바란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주인공 찬실을 통해 꿈을 좇는 과정을 경쾌하게 따라가고 있다. 꿈은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연이은 실패까지도 아름답게 그린 과정에 박수를 보낸다. 살면서 굴곡진 오르막과 내리막을 여러 번 겪겠지만 그때마다 찬실이를 떠올리며 슬기롭게 헤쳐 나갈 방법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꼭 무엇이 되어야 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만 꿈을 이룬 건 아니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줄 때 우리 인생은 반짝반짝 윤이 난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건 무엇일까. 내 인생운은 언제 터질까? 가족, 사랑, 돈, 일 복?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일은 평생 던져야 할 물음 같다. 영화는 김초희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엮어 만들었다. 영화 곳곳에 사소한 트리비아가 숨겨져 있고 찾는 재미도 있다. 영화 PD로 일하면서 들었던 생각과 시련 앞에서도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가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일 밖에 모르던 찬실(강말금)은 나이 사십에 직장을 잃었다. 실직 전 직업은 영화 프로듀서. 영화 크랭크인을 앞두고 안 좋은 일이 생겨 모든 것이 무너진 상태다. 시쳇말로 망했다고 할 수 있다. 집도 남자도 직장도 모아둔 돈도 없는 찬실은 밑바닥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지금까지 해온 거라고는 영화뿐인데 다른 일을 시작한다는 게 가당키나 할까.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아무도 찾지 않는다. 요즘 들어 진짜 내가 영화를 좋아하긴 하는 건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지난 10년 동안 좋아하는 영화, 좋아하는 감독하고만 작업한 대가는 참혹했다. 영화하다가 연애도 제대로 못했다. 시집은 못 가도 영화는 찍을 줄 알았는데 날벼락은 뭔가. 급기야 제작사 대표까지 이별을 고했다. 도무지 이 바닥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이 매일 덮친다. 그러던 중 친한 배우 소피(윤승아)의 가사도우미로 취직하기에 이른다. 이렇게라도 백수 생활을 면하고 있던 찰나. 소피의 불어 선생님 영(배유람)을 만나며 엉뚱한 상상에 빠지게 된다.

영화 속에는 세 여성이 등장한다. 이들은 여건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자기 삶을 충실하게 사는 사람들이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 사람(소피), 별로 하고 싶은 일이 없는 사람(주인 할머니),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사람(찬실)이다. 세 캐릭터는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자아를 상징하고 있다. 영화를 보며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등장하는 당신의 페르소나에 공감하며 울고 웃을 것이다.

소피는 한 시도 집에 붙어 있기 싫어하며 뭐든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쁜 일은 빨리 잊어버리는 단순한 타입이다. 고민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우리네 인생에서 꼭 필요한 존재다.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는 대신 오늘 하고 싶은 것만 충실히 하면 행복한 주인 할머니(윤여정)의 인생론도 닮고 싶어진다. 하루치 할 일과 즐거움을 매일 갱신하는 과정도 쉬워 보이지만 실천하기 어렵다. 세상은 내가 하고 싶다고 뭐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 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어쩌면 무모한 욕심일 수 있음을 할머니를 통해 배운다.

마지막 찬실은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르는 게 문제인 사람이다. 이때 장국영(김영민)이 나타나 자신을 깊이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 고민 많을 때마다 찰떡같이 나타나는 장국영은 이상한 비밀을 품은 요정 같은 존재다. 그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영화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도록 찬실을 독려하는 든든한 조력자다.

찬실은 삶의 행복을 위해서는 제일 먼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야 함을 깨닫는다. 무엇이든 떠내 보내지 않고 쥐고 있으면 새로운 것이 채워지지 않는다. 밑바닥까지 떨어져 봐야 다시 일어날 힘이 생긴다. 몽땅 가지고 싶다는 마음만 버리면 좋은 친구가 될 수도 행복도 스스로 갱신할 수 있다.

찬실의 모습에서 비슷한 모습을 발견했다면 착각일까. 어떤 순간이든 찬실처럼 “영화 같네”를 외치던 때가 생각났다. 모든 삶이 영화의 프레임에서 시작해 끝났고 영화로 받은 스트레스 영화로 풀기도 했다. 영화를 통해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귀한 인연도 많이 맺었다. 영화는 끊을 수 없는 경미한 마약과도 같았다.

때문에 찬실이가 무척 부러웠다. 가진 게 많아야만 복이 많은 게 아닐 거다. 삶을 사는 과정에서 즐기면 그게 복이 많은 게 아닐까. 영화 제목대로 찬실이는 복도 많다. 비록 가진 것도 없고, 연애도 일도 돈도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어 보이나 알고 보면 찬실 주변에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다. 지금 당장 어두운 길을 걷고 있지만 주변을 비춰주는 사람들 때문에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잘 안될 때, 스트레스로 한껏 무기력해지고 힘들 때, 선택의 기로에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준다.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찾던 파랑새가 멀리 있지 않음을 우리는 알면서도 종종 잊고 살아간다. 영화는 이런 사람들을 위한 생각의 환기다. 2020년 당신의 복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해 보자. 복은 멀리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는 것만으로도 복은 당신에게 넝쿨째 굴러들어올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 볼 기회를 갖길 바란다. 당신의 복은 당신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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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 님의 리뷰
2020.05.28 18:20:14
재미있게 보다가 중반 이후 갑자기 몰입이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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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잔 님의 리뷰
2020.04.16 23:48:09
영락없이 착한 영화지만.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다양한 영화들을 보면서 여러가지의 영화적인 상상들을 하게 된다. 그 상상의 시간은 제법 오롯하게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만끽 하기도 하는 시간이다. 그러한 상상속에서 늘 상상하는 것들이 있다.


정말 흔하게 볼 수 있는 동네 주민들의 모습을 영화속에서 보면서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말이다. TV속에서 대졸 평균 초봉이 얼마고, 중산층의 기본 소득이 얼마이고 하는 이러한 기준이 아니라, 내가 슬리퍼를 끌고 나가면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


그렇게 정말 실질적인 '주변사람' 혹은 '보통사람'으로 느껴지는 캐릭터들이 영화속에서는 잘 안보인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영화는 여전하게 조폭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정치인, 재벌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소재적인 측면에서 좀 더 다양하기를 바라지만, 최근의 영화들은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현관문을 열고 집 바깥으로 나가면 온통 눈에 띄는 사람들은 대졸 평균 초봉에도, 중산층의 기본소득에도 훨씬 못 미칠 것 같은 그런 사람이 나에게는 '보통사람'들이다. 미디어에서 떠드는 그러한 기준이 어떻게 책정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끔하게 차려입고 화려한 화장을 한 TV속의 앵커들이 떠드는 것과는 너무나 큰 간극이 느껴진다.


특히 조폭이나 비리 정치인, 대기업 재벌들은 내 생활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다. 그야말로 영화속에서만 본다. 내 주위 어디에도 볼 수 없는 캐릭터들은 아무래도 쉽게 감정이입 되지는 않는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최근의 흐름과는 다르게, TV속에서 떠드는 '평균적인' 사람이 아닌 내가 슬리퍼를 끌고 나가서 보는 '보통사람'의 이야기다. 그러한 이유 하나만으로 충분한 동질감에 여러가지의 상황들이 공감되는 효과가 발휘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러한 '보통사람'들의 이야기에 반가움은 자연스럽고 그러한 반응은 영화에 대한 호의적인 마음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이 호의에 더 적극적이였던 이유는 이 영화는 악인이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 착한 영화 라는 것이다.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 말이 있듯이 최소한은 한다는 착한 영화들도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영화들의 대부분은 그러한 키워드들을 노골적으로 강조해서 오히려 거부감이 드는 막무가내 착한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다행스럽게도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그런 영화들 처럼 어떤 목적을 가지는 노골적인 영화는 아니다.



그냥 흘러가는 상황들은 자연스럽고, 어떠한 맹목적인 상황들을 억지로 만들려고 하지도, 그 상황들에 주인공의 얼굴을 클로즈업 해서 관객들에게 그들의 착함이나 순수함들을 강요하는 것도 없다. 그저 40먹은 노처녀의 일상으로 읽히면서 중간 중간에 영화적인 장치가 소소하게 느껴지는 정도다.



그래서 이 영화는 충분히 소품 같은 느낌도 있다. 마치 어떠한 뚜렷한 목적이 있는 영화라기 보다는 그저 편안하게 보여지는 일상의 모습만으로 충분히 '힐링'이라는 단어를 꺼낼 수 있는.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얼마전에 힐링 영화라고 온갖 미디어에서 떠들었던 ,시골집에 내려가서 매일 친구들과 술마시며 놀고 맛있는 음식을 해먹으면서 이쁜 시골의 풍경만들 짜깁기했던 <리틀포레스트> 보다는 훨씬 더 힐링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자연에서 직접 캔 재료들로 클로즈업한 먹음직한 음식 사진들도 없고, 반딧불이가 아름답게 반짝 거리며 날아다니는 밤 하늘 풍경을 보여주지 않아도, 그들의 로맨틱한 시골 마을 보다 <아비정전>의 장국영이 옆방에 살고 있는 찬실이가 살고 있는 산동네 마을을 보는 것이 훨씬 더 힐링이 된다.


과장된 표현 같다고? 도리도리~ 전혀 그렇지 않다. <리틀포레스트>는 영화가 보여주는 허구의 힐링이라면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누구나 쉽게 다가오는 자신과 주위의 모습에서 찬실이와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비록 맛있는 음식이나, 이쁜 풍경들은 없지만, 그렇게 동질감을 느끼는 순간이 훨씬 더 공감되는 순간이며, 그 공감의 순간은 내가 찬실이가 되고, 그 순간은 오롯하게 마음속이 진탕되면서 힐링의 진정한 의미로 다가오는 순간이 된다.



돈이 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나온다고 무조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에는 동의 할 수 없지만, 그러한 캐릭터들에 훨씬 더 쉽게 공감가는 것에는 충분히 동의 한다. (내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에 느껴지는 나만의 동질감일까?)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특별한 영화는 아니다. 그저 우리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친근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에 충분한 공감과 함께 영화적인 상상들이 겹쳐지면서 이야기는 단순하고 간결하다. 특별한 사건도, 많은 등장인물도, 반전도 없다.



소자본의 영화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평범한 사람들의 하루의 일과 또한 그렇기도 하다. 그래서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그러한 반복적인 화면과 단순한 플롯은 우리들의 삶으로 쉽게 전이시키는 역할이 되기도 한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그냥 영화를 만들었을 뿐이다. 의도적으로 힐링이나, 착한 영화니 하는 것은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았던 영화였지만, 그렇게 영화를 만들다 보니 그 결과물이 이러한 영화가 된 것일 뿐이다. 마치 야구선수가 열심히 야구를 한 것 뿐인데 나중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MVP를 받게 되는 것 처럼 말이다.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드는 상상으로 조폭도, 재벌도, 비리 정치인도 등장하지 않고 그냥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리웠던 것은 인정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리뷰가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가 될 수 도 있다는 것 또한 인정한다. 어떤 이에게는 그저 평범하고 심심한 영락없는 착한영화 뿐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참 좋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Greentea 님의 리뷰
2020.04.03 00:02:40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봄'
영화를 미리 본 관객분들의 평들에 힘입어,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작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필수로 봐야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었다. 뜨거운 화제작인만큼 역시나 사이트 에러가 빈번했었고, 치열한 티켓팅 속에서 표 1장을 겨우 건진 기억이 있다. 하지만 갑작스런 개인적인 일정으로 눈물을 머금고 예매를 취소했었다. 영화의 이름처럼 나도 복이 많은 건지 코로나로 인한 극장가 침체기임에도 불구하고 그저께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집 앞 동네 아트 상영관에서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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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PD인 '찬실'은 예상치 못한 위기에 휘말리게 되면서 그녀가 해오던 일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열정과 원동력조차 희미해진다. 당장 밥벌이의 위기대처는 가능했지만, 그녀는 이제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조차 잊을 지경에 달했다. 찬실은 과연 어떻게 자기 자신을 되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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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사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기둥이 흔들리면 잡으면 되는 것이고 불이 켜지면 주위를 둘러보고 길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열정적으로 인생의 절반을 '영화'와 함께 살아온 찬실은 '영화'를 잃게 되자 그 충격에 '영화'가 아닌 다른 곳에 눈을 돌려 자신을 찾으려 애쓴다. 하지만, '영화'는 찬실을 세상 속에서 지탱하게 해주는 중력과도 같은 존재였고 결국 그녀는 돌고 돌아 '영화'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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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할때는 마치 극장 안에 있는 것과 같다. 상영관 불이 꺼지면 우리는 눈 앞에 놓인 스크린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잊는다. 그리고 극장 불이 다시 켜지는 순간, 우리는 생각한다. "뭘 해야 하지?" 정답은 사실 누구나 알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극장 밖으로 나가는 것. 그리고, 그 스크린에 비친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되새기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숙제이다. 찬실이도 몰랐을 것이다. 정작 그녀에게 있어 '영화'의 진짜 의미를. 스크린이 꺼지고 극장 문이 열리는 순간, 그녀는 진짜 자신에게 있어서의 '영화'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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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잠시 힘들거나 슬플 때 자연스럽게 먼저 떠올리는 것은 좋아하는 영화의 한 장면 혹은 사운드트랙이다. 이 작품은 영화 속 찬실이처럼 힘든 상황에서 '영화'를 먼저 떠올리는 이 세상 모든 영화바보들에게 바치는 헌정시와 같은 작품이다. 결국 '영화'는 우리에게 잠시나마 겨울을 이겨내게 해주고 봄을 불러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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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인공적인 웃음이 아닌 자연스러운, 담백한 웃음이 필요했다. 벼르고 벼르던 입대가 몇 일 앞으로 성큼 다가왔고 머릿 속이 복잡할 시기에 이 영화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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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hj 님의 리뷰
2020.03.31 17:09:33
영화, 계속 할 수 있을까?: <찬실이는 복도 많지>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실직'이 인생의 계기가 된 40대 싱글족 여성의 성장담"(김초희 감독 인터뷰 중에서 발췌)이다. 더 자세하게는 “진짜 원하는 게 뭔지”를 찾아가는 성장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죽어라 영화 일은 해왔지만, 정작 영화 일을 계속 하고 싶은지, 해야 하는지를 자문한 적 없었던 찬실에게 실직은 그 대답을 찾아가는 계기로 작동한다. 답을 위한 그 과정은 거창하거나 계시적인 사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콩나물을 다듬는 주인 할머니와 찬실의 손을 아주 가까이서 꽤 오래 지키는 카메라의 시선에서처럼 그건 별 거 없어 보이는 일상 중에 찾아가는 거다. (오스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가 지루하다는 영(배유람)의 말에 “별 게 아닌 게 소중한 거다”고 격분하는 찬실의 대답이 일맥상통한 건 덤.)

찬실이는 복도 많다. 실직 이후 그녀 주위로는 “정말 원하는 게 뭔지”를 대신 물어봐주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십 년 만에 처음으로 포옹해본 남자 영, 정작 본인은 안 드셔도 찬실의 밥상은 차려주는 주인 할머니, 차림새는 닮았는데 얼굴은 전혀 안 닮은 <아비정전>의 장국영(이라고 주장하는) 귀신까지. 그들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찬실에게 ‘영화를 계속 해나갈 찬실’을 일깨워준다. 영화에서 카메라는 원거리서 홀로 어딘가를 오르는 찬실을 자주 따랐다. 집을 향한 오르막길을 오르고, 공원을 향해 오르는 찬실 말이다. 그런데 영화의 말미에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둠을 헤치고 내려온다. 영화를 함께 찍었던 후배들과 함께. 이 과정이 짐짓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떠올리게 하는 건 우연일까.

영화는 계절의 변화를 계속해서 환기시킨다.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곳곳 배치해둔다. 주인 할머니의 꽃나무 몇 그루가 갑작스런 추위에 목숨을 다하기도 한다. 그런데 영화의 온도는 그렇지 않다. 시종일관 따뜻함과 미소를 머금고 있다. 강말금 배우의 찬실이는 실직 속에서도 처연하기는커녕 사랑스럽다. 찬실의 기운은 봄을 머금고 있다. 영화라는 싹을 틔울 봄을 맞이하려 겨울(이라는 실직)이 찬실에게 찾아온 거라면 너무 진부한 해석일까?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住 立處皆眞, 어디를 가든지 주인이 된다면, 모든 것이 참 되다). 소피의 책에서 이 글귀를 발견한 후 카메라가 빛과 함께 비추던 찬실의 말간 옆모습과 눈동자가 잔상에 남는다. 영화를 진정으로 원하는 찬실을 향한 응원은 무엇을 정말로 원하고 있는지 질문하고 있을 일상 속 모든 이들을 위한 위로로 퍼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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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님의 리뷰
2020.03.26 00:43:17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
비록 내가 믿고 싶고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게 누군가에게는 '이것저것', '이상한 것'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사라져버리고 변하고 되돌릴 수 없을지라도, 내가 믿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과 좋아하는 것이야말로 살아감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그 영화에 이 세상은 없을지라도,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 거기 영화도 있어요.”라고 말해볼 수 있게 만든 게 결국 영화였고, 그 영화들의 세계와 감각을 사랑하며 웃고 울었던 매 순간의 '나'였듯이.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무심한 듯 단단하고, 나약한 듯 무너지지 않으며, 서투른 듯 ‘아무렇게나’와 ‘아무거나’ 같은 것들의 차이를 아는 영화다. 되돌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면서 ‘오늘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하는 이들에게 영화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박수치고 안아주고 말 걸어주는 영화이기도 할 것이다.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오듯, 달이 기울고 다시 차듯, 영화가 끝나고 음악도 끝나지만 넘어진 자리에서 우리는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게 삶이라는 걸 긍정하는 영화는 꽤 밝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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