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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Portrait of a Lady on Fire)

드라마 / 2019

개요
드라마, 멜로/로맨스, 프랑스, 119분, 15세 이상 관람가, 2020.01.16 개봉
감독
셀린 시아마
배우
아델 하에넬
크리스텔 바라스
노에미 메를랑
루아나 바이라미
발레리아 골리노
시놉시스
줄거리 :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리게 된 화가 마리안느. 엘로이즈 모르게 그림을 완성해야 하는 마리안느는 그녀를 비밀스럽게 관찰하던 중, 알 수 없는 감정이 들기 시작한다.

1분 정보 : 제72회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작. 셀린 시아마 감독은 아델 에넬을 염두해두고 시나리오를 썼다. 아델과는 첫 장편 <워터 릴리스>, 단편 <폴린>에 이어 3번째로 함께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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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95%
4.05점
키노라이트 분포
6개
178개
별점 분포
예고편
리뷰
138

선우 님의 리뷰
2020.01.11 04:53:25
감탄스런 완성도, 이입하지 못한 로맨스
소재나 이야기부터가 그러하듯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잔뜩 안고 있으며 사운드나 음악의 강약조절이랄까, 쓰임이 훌륭한 작품이다. 어느 장면에서 멈추어도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 같을 만큼 촬영도 좋았다.

영화 속엔 여러 은유와 상징, 메시지들이 담겨있고 유명한 기성품들을 비틀거나, 새롭게 느껴지게 하거나, 도치시켜서 각본을 채웠는데 그렇게 어렵지 않게 숨겨놓아 찾는 재미, 말하자면 접근성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만장일치로 이어지는 모두의 극찬에 비해 나는 좀 심심하게 보았다. 기술적인 부분들은 만족스러웠고, 오르페우스 신화의 변주로 완성되는 기가 막힌 특정 장면이나 비발디의 국민 클래식을 압도적인 연출과 연기로 잡아먹는 엔딩에서는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정작 아쉽게도 영화의 본질인 로맨스에 이입하지 못했다.

비슷한 작품으로 언급되는 <캐롤>을 보았을 때와는 달리 두 인물의 감정선을 머리로만 받아들이면서 따라갈 뿐 마음으로 설득당하기엔 다소 인공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다보니 후반부엔 그냥 서로 사랑한다니까 사랑하는가보다 하면서 보게 됐고 동화되어 공감한다기보다는 높은 완성도에 감탄하는 데 그쳤다.

물론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는 것엔 이견이 없겠지만.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moviemon 님의 리뷰
2019.11.11 05:39:53
시선, 연대, 그리고 심리적 동화
제72회 칸영화제에서 각본상과 퀴어종려상의 영예를 안은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2019)은 “후회하지 말고 기억할 것”이라는 이루지 못할 사랑에 대한 셀린 시아마 감독의 아포리즘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비록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두 여성 간의 사랑이 완성될 수 없는 1770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시선이 연대로, 연대가 심리적 동화로 발전해 여성이라서 겪어야만 했던 억압과 차별의 세상을 어떻게 버텨내는지에 관한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또한, 남성 중심적 사고에서 해석되었던 오르페우스 신화를 여성 중심적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본 것을 바탕으로 여성들의 사랑과 연대를 더욱더 뜨겁고 예술적으로 기록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수녀원에서 나와 마지못해 결혼을 해야 하는 ‘엘로이즈(아델 하에넬)’와 그녀의 결혼식 초상화를 요청받은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메를랑)’ 간의 시선 교환에서 출발한다. 두 인물이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영화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 (1955)에서 영감을 받은 듯해 보인다.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은 피카소의 그림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큐비즘적인 구도로 사랑과 결혼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 ‘루이(필립 느와레)’와 ‘엘르(실비아 몽포르)’가 서로를 쳐다보는 걸 포착한다. 즉,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영화에서 큐비즘적인 시선 구도는 감정의 평행선을 유지하는 연인의 긴장감을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이와 같은 구도를 살짝 비튼다. 예를 들어, 오버 더 숄더 숏으로 ‘엘로이즈’를 보는 ‘마리안느’의 모습을 큐비즘적 구성을 통해 파착할 때쯤 ‘엘로이즈’가 미세한 운동성으로 이 구성이 정착되는 걸 방해한다. 이는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처럼 두 인물 사이의 감정 및 관계의 평행선을 보여주고자 하는 게 아니라, 두 인물이 비가시적으로 점점 부딪히면서 내면의 작은 불씨가 점차 피어나고 있음을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두 여성이 언어적인 방식보다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서서히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 때 ‘엘로이즈’ 집안의 하녀인 ‘소피(루아나 바이라미)’가 합류한다. 사실 ‘소피’는 영화 초반부부터 등장한 인물이지만, 두 여성 간의 시선이 세 여성 간의 연대로 발전하는 중반부부터 본격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세 여성의 계급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집안에서 해야 할 임무도 명백하게 나눠져 있다. ‘엘로이즈’는 결혼을 위해 이탈리아로 가는 날을 그저 집에서 기다리고 있고,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어머니의 부탁으로 몰래 초상화 작업을 하는 동시에 ‘엘로이즈’를 은밀히 감시하고, ‘소피’는 자기 존재감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온갖 잡업을 한다. 그러나 세 여성 인물은 서로에게 서열 의식과 위계성을 부여하지 않고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생활하며 연대한다.

‘마리안느’는 여성에게 불리한 결혼 관습으로 인해 ‘엘로이즈’가 힘들어할 때 그런 고독 속에서도 자유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엘로이즈’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제한된 대상만을 갖고 그림 작업을 해야 하는 ‘마리안느’를 위해 화가로서 성장할 수 있는 계기와 당시 여성이 맞이한 시대적 비극을 기록할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돕는다. ‘소피’는 ‘마리안느’가 밤중에 생리통으로 고통스러워하자 그녀를 친절히 보살피고, ‘소피’가 원치 않은 임신으로 낙태하러 갈 때 ‘엘로이즈’와 ‘마리안느’가 동행해 그녀가 겪는 괴로움을 함께한다. 무엇보다 이들의 연대를 시각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장면은 탁자에 둘러앉아 카드 게임을 하는 장면이다. 이들이 하는 카드게임이 정확히 어떤 게임인지 알 수 없지만, 버스트 숏으로 세 인물의 행복한 표정을 담아낸다. 아울러 오로지 수평 트래킹 숏만을 활용함으로써 이들의 계급적 차이를 소거하고, 세 인물의 동등한 관계와 연대감을 형상화하는데 몰두한다.

세 여성의 연대감이 무르익을 때쯤 ‘소피’가 살짝 한발 물러나고, 오르페우스 신화의 재해석과 함께 ‘마리안느’와 ‘엘로이즈’ 사이에 형성된 심리적 동화에 집중한다. 오르페우스 신화에서 오르페우스는 하데스를 찾아가 지하세계의 문턱을 통과하기 전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전제조건 하에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지상으로 데려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근데, 오르페우스는 지하세계의 출구 문턱에 발을 내딛는 순간 에우리디케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몰라 조급한 마음에 뒤를 돌아보고 만다. 그래서 에우리디케는 비명을 치며 다시 지하세계로 돌아갔고, 오르페우스는 그녀를 영원히 그리워하며 살다가 죽는다. 그러나 ‘소피’는 이에 대해 화를 내고, 세 여성은 열띤 토론을 하던 중 어차피 지상세계로 돌아가면 언젠가 사별의 아픔을 다시 겪어야 하므로 주어진 운명을 수긍하고, 일부러 오르페우스의 이름을 불러 남편의 고개를 돌리게 만들어 지하세계로 복귀하기로 결심한 에우리디케의 자발적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이들이 제시한 새로운 해석처럼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지금 당장의 사랑을 선택해 힘든 미래의 삶을 살아가며 후회하는 대신 서로의 손을 놓더라도 이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며 남은 생을 살아가기로 약속한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마리안느’와 ‘엘로이즈’ 사이에 심리적 동화가 완벽히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심리적 동화는 사랑하는 사람을 정신적인 표상의 형태로 내면에 담아내는 것을 가리킨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에게 주어진 시간은 비록 짧았지만, 두 인물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철저히 관계에 쏟았던 순간과 그때 풍경을 감각 기관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기록했으므로 심리적 동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함께 보냈던 시간, 읽었던 책, 들었던 음악과 파도 소리, 그리고 느꼈던 불의 온도는 초감각적으로 기억되었으므로 두 인물이 물리적 거리상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심리적으로 항상 이어져 있을뿐더러 갖은 고초에 무너질 위기를 버텨내며 극복할 힘을 지니게 된다. 특히, 시간이 흐른 후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장소에서 바로크 시대 음악가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가 작곡한 ‘Il cimento dell'armonia e dell'inventione, Op.8’의 연주를 감상하는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를 담아낸 장면을 통해 두 인물의 심리적 동화는 마침내 카메라에 체화된다.

카메라는 ‘마리안느’의 시선에서 연주를 들으며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는 듯한 ‘엘로이즈’의 행복과 슬픔이 공존한 표정을 담아내고 있지만, ‘엘로이즈’의 표정이 일으키는 진동이 ‘마리안느’의 시선이 투영된 카메라에 영향을 미치면서 그 카메라도 미묘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는 비록 스크린 안에서 직접적으로 ‘엘로이즈’의 시선이 투영된 카메라로 ‘마리안느’의 표정을 포착하지 않았지만, 스크린 밖의 카메라가 ‘엘로이즈’의 눈이 되어 마찬가지로 양가적인 표정을 짓는 ‘마리안느’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도록 만든다. 따라서 셀린 시아마 감독은 계급을 불문하고 억압 및 차별을 받는 여성들의 시선이 차례로 연대와 심리적 동화로 발전하는 과정을 세심하고 정열적으로 완성함으로써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아포리즘을 예술적으로 승화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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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 님의 리뷰
2020.02.08 12:51:21
그림은 단순히 존재의 시각적 재현에 불과한 것일까?
결혼을 위해 보내지는 초상화에는 시대적 억압과 박제된 젊음이 담겨있고 접혀진 책에 그린 낙서에는 짧았던 사랑과 긴 추억이 담겨있고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는 불꽃 같은 순간이 영원히 남아있다.
절제되고 함축된 대사와 숨을 멎게하는 영상미, 몇 겹으로 중첩된 알레고리와 배우들의 명연기가 시작에서 격정의 템페스트까지 이르는 2시간을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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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31 12:14:28
한 순간 감정선의 타오름은 인정
그러나 뭔가 공감되지 않는 아쉬운
전개와 이야기들에서 안타까움이
나를 완전히 만족시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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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 님의 리뷰
2020.01.27 00:07:34
오랜만에 극장에 갔다. 명절 연휴에는 자주 가는 카페가 문을 닫는다. 두번째로 자주 가는 카페도, 세번째로 자주 가는 카페도 문을 닫아서 극장에 갔다. 명절에는 종종 집 말고 영화관만 날 받아주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극장은 연중무휴다. 종국에는 영화뿐.

나는 오랫동안 영화를 사랑했는데, 그래서 그만큼 영화가 무섭기도 했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불길이 붙은 줄도 모르고 활활 타오르거나 아주 멀리 떨어져서 얼어버리거나. 무생물을 사랑하는 일은 묘한 일이다. 무생물이 아니라 추상이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더 하다. 아무튼 더 하다.

하여튼 이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너무 심하게 좋았다.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지. 그리고 정말 오르페우스 이야기 엄청 좋아하는데 이거 뭐지 싶었다. 나 보라고 만든 건가 싶게끔 너무 좋은 영화라니.



언제부터 눈물이 났더라, 눈물이 나기 시작했던 장면은...

마리안느가 엘로이즈를 처음 만나는 장면. 엘로이즈가 모자 달린 망토를 입고 걸어가는 뒷모습.

그리고 한동안 집에만 갇혀있던 엘로이즈는 집 밖에 나오자 전력을 다해 절벽 끝까지 달린다. 엘로이즈를 잡으려 전력 질주하는 마리안느. 엘로이즈는 낭떠러지로 끝나는 땅 위에 아슬아슬하게 멈추고 마리안느를 보며 말한다.

"늘 이걸 꿈꿔왔어요

"뭘요, 죽는 거요?"

"달리는 거요."

불어로 죽는 것은 mourir 고, 달리는 것은 courir 다. 무히흐 꾸히흐.

죽는 것과 마음껏 달리는 것은 한글자 차이기도 한 것이다.

나는 삶과 죽음이 맞닿아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당연한 말이다. 그리고 그 삶과 죽음 사이에 사랑이 있는 것만 같다. 어쩌면 그 둘을 다 포함하거나 다리를 놓는 것. 그래서 두려움이 많은 나는, 겁이 많아서 삶도 죽음도 둘 다 어려운 나는 사랑까지 셋이 함께여야 완전한 것 같다. 셋이 나란히 한계단에 있어야.

사랑은 한계단에서 시작될 수 있다.



이 영화는, 그 모든 것을 한계단에 올려놓았다. 이 장면에서 소름. ㅠ.ㅠ (소름 돋는 장면 너무 많다 근데) 넘 좋았다. 흑.

그렇게, 카메라는 수평으로 움직인다.


종종 사랑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들이 다른 계단에 있기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랑이 같은 위치에서 시작되었다가도 관계사이의 힘의 균형이 달라지면 그 사랑은 끝이 나기 마련이다. 비단 로맨틱한 사랑뿐 아니라 우정 같은 플라토닉한 사랑도 같은 위치에서 가능하다. 위치가 다르다는 것은 무엇일까,사회적 지위라고 말할 수도 있는 힘의 균형이라고 생각하는데, 조금 더 일상적으로 생각해볼 때 그것은 내가 너를 다 안다, 상대방을 파악함으로써 판단하는 데에 일어나는 마음은 아닐까 생각한다.



남녀간의 사랑이 영화나 소설에서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왜일까 고민을 많이하는데, (이 고민도 내가 이성애자로서 갖는 편협한 질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한 마음이다.) 그것이 마땅히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야기가 존재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너무 이성애 이야기만 많았던 데에서 균형을 잡는 자연스러운 과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혹시나, 남녀간의 사랑은 같은 계단에 있기가 그만큼 어려운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았다. 남과 여가 서로를 이해하기가 어려우니까. 하지만 요즘 세상은 좋아져서 서로가 부딪히면서 일어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그 불편함과 어려움을 손쉽게 제거하거나 배제할 수 있는 기술과 매체들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편리하게 '섬'이 될 수 있다. 유일한 당신이 손쉽게 대체될 수 있다는 착각을 하기 쉽다. 당신이 아니어도 되는 것은 사랑도 뭣도 아니다.



이 영화에는 너무나 주옥같은 대사가 많다. 대사가 많지 않은데도 하튼 흑, 너무 정곡을 찌르는 대사가...ㅠ.ㅠ

그 중에, "당신이 나를 바라볼 때 나는 누구를 바라보겠어요."

라는 대사가 있는데, 시선이, 상대를 잘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 이 영화에서 이 대사는 모든 것과 맞물리면서 심금을 울린다. 바라볼 것이 많은 요즘, 서로만 바라볼 수 있는 그 시간은 너무나 특별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언젠가 사랑에 빠졌을 때 나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때 그에게, 그러니까 사랑에 빠졌다고 확신을 했는데, 초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기때문이다. (미쳤구나, 뭐 이런.) 그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뿐이었는데, 그 사람의 눈이 둥둥둥 떠서, 우리 사이의 거리를 헤치고 내게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두 눈이 까맣고 아몬드 모양이고 그런 나만 보는 눈이 내게로 다가오면서 클로즈업 되는 것이다.

당신이 나를 바라볼 때 나는 누구를 바라보겠어요.



엘로이즈가 마리안느와 그토록 사랑에 빠진 것이 나는 이해되었다. 그렇게 바라보는데, 나를 알아주는데, 둘 밖에 없는데 아름다운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고군분투하는 두 사람이.


이 영화는 또한 예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창작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야할까. 할 수 있는 일.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빠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모든 사랑은, 모든 인간이 그렇듯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는데(그래서 역으로 모든 사랑이 완전한 걸 수도 있겠다.) 우리는 종종 가능한 사랑만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 사람이 받아 줄 것 같을 때 내 마음을 고백하고, 상대를 먼저 파악한 다음에 접근한다. sns라는 것이 있어서 그게 더 쉬워졌다.그 사람이 알려주는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내가 먼저 온라인으로 파악하는 정보들은, 그 사람을 내 방식으로 이해하는, 내 자신이 더 중요한 관계의 형성일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 속, 엘로이즈와 마리안느는 서로 함께하지 못할 것을 알았다. 그리고 상대방이 날 받아줄 지도 확신 못했을 것이다. 운명을 바꿀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서로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커다란 용기일 것이다. 그래서, 그 둘이 눈물을 흘리며 다투는 장면이 나는 무척 좋았다. 나를 판단하지 말라고, 내가 어떨 것이라고 짐작하고 판단하지 말라고. 어떤 결정을 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고.

이 사랑은 이렇게 큰데, 함께 할 수도 없고, 이제 표현할 수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는 기억할 수 있다.

처음으로 그 사람에게 키스하고 싶었던 순간, 그 사람의 볶은 아몬드 같은 두 눈이 내게 둥둥 떠오던 순간, 잠도 자고 싶지 않을만큼 달콤했던 둘만의 밤(엘로이즈와 마리안느는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밤, 깨어있으라고 서로를 다정하게 때운다.), 함께 마신 와인의 맛, 그 사람이 처음 웃었던 순간.

그들은 말한다. 너를 웃게하기까지 오래걸렸지. 응, 시간만 낭비했어.

시간은 한정되어있고, 분노는 사랑을 쉽게 이긴다. 하지만 기억할 수 있다.

생기있는 꽃은 시간이 지나면 시들기 마련이지만, 그것을 보면서 수놓은 자수는 완성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지만 오래 남는다. 소피가 수놓는 장면에서 그런 희망을 보았다.

오르페우스는 뒤를 돌아보아서 사랑을 영영 잃었지만, 시인으로서 다시 태어났다. 후회하지 말고, 기억할 수 있다.



신형철 평론가는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오르페우스 이야기를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어느 편에서 봐도 이것은 너무 사랑한 자의 비극이다. 여기에 상실과 과실이 함께 있다. 반드시 이 둘이 함께 있어야만 '회한'이라는 감정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나는 회한이야말로 문학의 근본 감정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 사랑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운명에 의해서, 또 한 번은 나에 의해서, 사랑했던 사람을 두 번 죽여본 사람은 시인이 될 수 있다. 마이나스들에게 온몸 찢어져 그 회한마저 찢기기 전에는 그만둘 수 없을 것이다.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P76



나에게는 오르페우스가, 위로이고 간절한 희망이다. 여러번 죽인 연인들에게 명복을.

이 영화에서 울컥했던 장면중에 한 부분은.

얼마나 불에 타기 쉬운지, 였다.

어둡고 촛불이나 모닥불에 의지해야 하던 시절, 그 시절 얼마나 불에 타기 쉬운지. 타오르기 쉬운지. 지금은 LED가 있는데.

나무심지로 되어있는 향초를 좋아한다. 타면서 타닥타닥 모닥불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향도 더 자연스럽다. 이것은 느낌이겠지만 더 따뜻한 기분마저 든다.



이 영화에서 너무나 소름이 돋고 좋았던 장면은,

단연, 모닥불 장면이었다. 그 노래. 아흑. 서로의 목소리 키를 맞추든, 조율하듯 신음 혹은 탄성 혹은 비명같기도 한 여자들의 단음은 묘한 분위기를 만들다가 곧 화음을 이룬다. 마리안느가, 낙태시술을 받아야하는 소피에게 내가 너와 함께있을게라고 말한 이후다. 목소리와 손뼉이 마주치는 소리, 그리고 서로를 살피는 눈빛만으로 노래한다. 그들은 모닥불로 모여든다. 외딴 섬에 사는, 옷차림으로 보아 귀족이 아닌 노동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이다. 고단한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노래를 하면서 그들은 자유롭고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 당연하지만 모두 다르게 생겼다.

그리고, 수녀원에서 찬송가만 듣고 불렀던 엘로이즈는 처음으로 다른 노래를 듣는다. 사람만이 만드는 노래. 악기도 없이 사람의 몸으로만 연주하는 노래를.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마리안느는 밝게 웃고, 엘로이즈도 웃는데 그 웃음에 모든 걸 건 것처럼 슬픔도 가득하다.

그리고 엘로이즈의 치맛자락이 타오른다. 모닥불에 불이 옮겨붙은 것이다.

엘로이즈는 마리안느를 바라보느라 불이 붙은줄도 모른다. 그러다가 마리안느의 놀라는 얼굴을 보고 비로소 불타는 자신의 치맛자락을 내려본다.



불이구나. 타는구나. 그렇구나.

그게 뭐라고.

다시 마리안느를 본다. 불은 안중에도 없다.

점점 타오른다. 나는 눈물 콧물을 흘린다. 아, 엘로이즈. 활활 타는데, 노래를 부르던 여인들이 재빨리 와서 불을 끈다.

혼자가 아니다. 나 혼자 활활 타는 사랑이 아니고, 둘 다 새까맣게 타는 사랑이 아니고 세상 속에 있는 사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사랑이다.

타올랐고, 그래서 살아간다. 그것이 나의 소망이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리디 님의 리뷰
2020.01.14 12:47:27
사랑으로 점차 채색되는 러브스토리
사랑으로 점차 채색되는 러브스토리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이 영화를 보고 떠오르는 영화가 하나 있다.
아주 예전에 보았던.. 풍성한 드레스를 입고 회색빛 바다 너머를 응시하던
모녀를 떠올리게 하는 명화같은 작품 제인챔피온의 피아노

너무나 오랜시간이 지났지만 신비로운 분위기는 사진전 속의 사진 같기도 하고
화가가 그린 유화같기도 했다. 무언가를 기억할때 이미지로 기억에 저장하는 나에게는
특유의 아름다움이 중요한데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을 보고 오랫만에
그런 종류의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었기에 감사한 마음.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멜랑)는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귀족 아가씨 엘로이즈(아델 에넬)의 결혼 초상화 의뢰를 받는다.
엘로이즈 모르게 그림을 완성해야 하는 마리안느는 비밀스럽게 그녀를 관찰하며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의 기류에 휩싸이게 된다.

묘한 감정으로 그들은 만남이 더해질 수록 그림처럼 채색된다.
보색인 붉은색과 녹색이 어느순간부터인가 선명하게 찬란해지고,
무표정하던 여인의 얼굴에는 표정이 생기기 시작한다.

구구절절한 말보다 물끄러미 응시하는 눈빛에 더 많은 것을
느낄 때가 있다고 믿기에,
애틋함이 차올랐던 아름다운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HLNL 님의 리뷰
2020.01.09 08:07:36
오르페우스를 소환하여 재현해내는 영화는 순리라는 금기의 영역을 깨어내기 위한 동적인 몸부림으로 정적인 규율을 벗어나려 한다. 세밀한 감정의 움직임을 포착하려는 감독의 선택은 때로 과하게 다가온다 한들, 주체적 선택으로 다시 쓰는 오르페우스, 아니 에우리디케의 신화는 유효해보인다.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2020.01.07 07:19:32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초간단 리뷰
1. 브룩 쉴즈가 출연했던 '블루라군'에 대해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없다. 대충 1980년 영화이고 외딴 섬에서 두 미남미녀가 풋풋하고 호기심 많은 사랑을 나눴던 것 같다. '블루라군'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배우들이 예쁘고 잘생긴 것과 외로워보이는 무인도뿐이었다. 그리 인상적이거나 재미있게 본 영화는 아니다. '블루라군'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 가져다 대려는 의도는 아니다. 두 영화는 서울과 마다가스카르처럼 멀리 떨어져있고 다른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이야기하는 글을 '블루라군'으로 시작한 이유는 영화가 가진 폐쇄성과 거기서 오는 쓸쓸함 때문이다.

2.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이야기를 논하기 전에 배경과 연출에서 흥미로운 지점이 여럿 등장한다. 비록 미술학원(으로 추정되는) 실내였지만 꽤 도시적인 느낌이 났던 영화의 도입부를 지나면 마리안느(노에미 메를랑)가 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모습이 등장한다. 카메라는 배의 요동침을 있는 그대로(혹은 조금 더 과장해서) 표현한다. 보는 관객조차 멀미가 날 지경이다. 그 가운데 마리안느의 캔버스가 배의 요동으로 바다에 빠지게 되고 마리안느는 그것을 줍기 위해 바다로 뛰어든다. 이어서 등장한 장면은 마리안느가 담요를 뒤집어쓰고 떨고 있는 장면이다. 분명 누군가 바다에서 마리안느를 끌어올린 장면 다음에 등장해야 할 것 같은 장면인데, 중간이 없다. 이런 편집은 바다에 빠지기 이전과 이후를 단절시켜버린다. 이 편집으로 마리안느가 떠나는 곳은 그녀가 살던 세계와 다른 세계가 된다.

3. 거친 바다를 뚫고 도착한 곳은 엘로이즈(아델 하에넬)와 어머니 백작부인(발레리아 골리노), 하녀 소피(루아나 바야마)가 사는 곳이다. 관객은 그녀가 사는 집의 외관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마을에 사는지 외딴 집에 사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지만 마을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감독은 여러 연출을 통해 엘로이즈가 사는 곳을 철저하게 고립된 세계로 만든다. 이것은 이 세계는 가장 미니멀한 우주인 셈이다. 그것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장면은 영화 속 야간 장면에서도 등장한다. 이 영화의 야간 장면은 정말 최소한의 조명만 쓴다. 제작일지를 찾아보진 않았지만 스탠리 큐브릭의 '배리 린든'에서 한 것처럼 촛불 조명만 쓴 것으로 보인다. 빛이 최소화되면서 공간도 축소된다. 이 공간은 철저하게 두 사람(혹은 세 사람)의 세계가 된다.

4. 그렇다면 축소되고 줄어든 세계, 그녀들만의 공간은 어떤 곳인가. 여기에는 아가씨가 있고 여성 화가가 있고 하녀가 있다. 마리안느의 말대로라면 19세기 여성 화가에게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엘로이즈 역시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 한다. 소피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다. 그리고 이 공간에는 오직 여자만 3명 있다. 그녀들을 억압하던 굴레는 이 축소된 공간에서 모두 사라진다. 평등하게 게임하고 이야기 나누는 세계가 펼쳐진다. 이 공간에는 오직 인간 3명만 있다. 그 세계는 다시 한 번 변화를 맞는다. 어느날 밤 세 사람은 모닥불이 피워진 곳에 도착한다. 사람들은 여기서 파티를 하고 노래를 부른다. 그곳에서 엘로이즈의 옷에 불이 붙고 엘로이즈는 쓰러진다. 바로 다음 장면은 중간이 없이 낮으로 넘어간다. 첫 장면에 바다에 빠진 마리안느 이후 다시 한 번 편집이 끊어진다. 그렇게 다다른 세계에는 소피도 퇴장하고 엘로이즈와 마리안느만 남는다. 이 공간은 둘의 사랑만 꽉 찬 세계다.

5. 이 사랑은 끝이 정해져있다. 마리안느는 그림을 마무리하고 떠날 것이며 엘로이즈는 결국 결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사랑은 직진을 한다. 오직 둘만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공간을 확장시키는 '잔상'이 등장한다. 앞서 말한대로 조명을 최소화시키는 것은 공간을 축소시킨다. 그런데 여기에 드레스를 입은 엘로이즈의 환상은 밝은 빛으로 등장한다. 현실은 밝은 빛으로 공간을 확장시킨다. 그렇게 현실은 점점 빛을 내며 다가오다가 결국 눈 앞에 서 있게 된다. 축소되고 줄어든 공간은 결국 확장돼 현실로 돌아온다. 마리안느는 결국 엘로이즈를 떠나 전시회를 열었다. 여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밝은 빛도 있다. 그 가운데서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그림을 본다. 엘로이즈는 여전히 캔버스 좁은 공간 안에서 28페이지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사랑은 좁은 캔버스 안에 머물러 있다. 마리안느의 시선, 혹은 관객이 바라보는 캔버스 안의 엘로이즈는 홀로 있다. 그녀가 눈물 흘리는 이유는 공연 때문일지, 마리안느의 시선을 느껴서일지, 혹은 공간 안에 혼자 남아서일지 알 수 없다. 점점 줄어드는 공간은 마리안느로 시작해서 엘로이즈가 머무르게 됐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결국 '공간'에 대한 이야기였으리라.

6. 결론: '블루라군'은 무인도에 둘만 남아서 나누는 사랑이야기다. 흔한 무인도 멜로가 그렇겠지만 이 역시 외부인이 등장하면서 멜로는 끝이 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도 세 여인의 우정에서 두 여인의 사랑으로 이어지지만 외부인이 개입하면 관계는 끝이난다. 사랑이건 우정이건, 오직 당사자들끼리만 하는 것이며 관계는 그들만의 숭고한 것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사랑을 넘어서 관계 그 자체에 대해 정의내리는 영화다.


추신) 내가 아는 발레리아 골리노는 '못말리는 비행사'에 등장했던 '뜨거운 불판을 가진 여자' 정도다. 이렇게 멋있는 배우인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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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님의 리뷰
2019.10.12 08:00:05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화면이 아름다운 것은 아님에도 아름답다는 생각이든다. 그 이유는 카메라가 꾸준하게 인물을 비추기 때문이다. 컨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지속되고 지속될수록 인물들이 갖는 미묘한 표정변화등을 관객은 느끼기 때문이고, 고작 교회에서 음악을 듣는 것이 전부였던 귀족 여성에게 또다른 삶을 열어주며 이별을 맞이한 두 여인에게 이뤄지지 않은 마음이 계속 남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시작되고 그것이 끝나며 막을 내리지만, 극의 숨겨진 영웅은 음악이다. 키스를 하고 싶었다던 치마자락에 불이 붙었을때 나오던 아낙네들이부르며 쌓았던 화음과 노래.

어린시절 배운 피아노를 치며 기억을 떠올리던 그 노래 그리고 한명만이 상대방을 볼수 있는 오페라에서의 사계. 이 노래가 생성되는 지점에서 인물들의 감정이 드러난다.

영화는 어찌보면 누군가 대상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기에 관음증 그러니까 일종의 프레임을 채우는 것과 유사하다 할수 있다. 다른지점은 컨버스라는 미정센에 들어가는 것은 그녀와 그녀일뿐이라는 것이다. 그녀들에겐 그 컨버스가 보고싶은 볼수있는 유일한 세계이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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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6 15:30:49
신화와 신화화. 완벽하게 세팅된 시간과 지위, 관계를 바탕으로 두 인물은 스크린 위에 붓이 닿는대로 그림을 그릴 뿐이다. 캔버스를 통하며 스크린을 통한다는 것은 대상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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