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현재 넷플릭스와 티빙 등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키노라이츠 지수 93.6% (1959명 평가)

별점 4.0/5 (314건 리뷰)

시청 정보 업데이트: 2026년 10월 22일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15+
·2020
·영화
·119분
·멜로/로맨스
, 서사/드라마

93.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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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후회하지 말고 기억해”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멜랑)는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귀족 아가씨 엘로이즈(아델 에넬)의 결혼 초상화 의뢰를 받는다. 엘로이즈 모르게 그림을 완성해야 하는 마리안느는 비밀스럽게 그녀를 관찰하며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의 기류에 휩싸이게 된다. 잊을 수 없는, 잊혀지지 않을 사랑의 기억을 마주하게 할 걸작을 만난다

관전 포인트

20대가 선호해요

출연진/제작진

리뷰 & 평점

4.0

리뷰 평점

98%

로튼토마토

8.0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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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극장에 갔다. 명절 연휴에는 자주 가는 카페가 문을 닫는다. 두번째로 자주 가는 카페도, 세번째로 자주 가는 카페도 문을 닫아서 극장에 갔다. 명절에는 종종 집 말고 영화관만 날 받아주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극장은 연중무휴다. 종국에는 영화뿐. 나는 오랫동안 영화를 사랑했는데, 그래서 그만큼 영화가 무섭기도 했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불길이 붙은 줄도 모르고 활활 타오르거나 아주 멀리 떨어져서 얼어버리거나. 무생물을 사랑하는 일은 묘한 일이다. 무생물이 아니라 추상이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더 하다. 아무튼 더 하다. 하여튼 이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너무 심하게 좋았다.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지. 그리고 정말 오르페우스 이야기 엄청 좋아하는데 이거 뭐지 싶었다. 나 보라고 만든 건가 싶게끔 너무 좋은 영화라니. ​ 언제부터 눈물이 났더라, 눈물이 나기 시작했던 장면은... 마리안느가 엘로이즈를 처음 만나는 장면. 엘로이즈가 모자 달린 망토를 입고 걸어가는 뒷모습. 그리고 한동안 집에만 갇혀있던 엘로이즈는 집 밖에 나오자 전력을 다해 절벽 끝까지 달린다. 엘로이즈를 잡으려 전력 질주하는 마리안느. 엘로이즈는 낭떠러지로 끝나는 땅 위에 아슬아슬하게 멈추고 마리안느를 보며 말한다. "늘 이걸 꿈꿔왔어요 "뭘요, 죽는 거요?" "달리는 거요." 불어로 죽는 것은 mourir 고, 달리는 것은 courir 다. 무히흐 꾸히흐. 죽는 것과 마음껏 달리는 것은 한글자 차이기도 한 것이다. 나는 삶과 죽음이 맞닿아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당연한 말이다. 그리고 그 삶과 죽음 사이에 사랑이 있는 것만 같다. 어쩌면 그 둘을 다 포함하거나 다리를 놓는 것. 그래서 두려움이 많은 나는, 겁이 많아서 삶도 죽음도 둘 다 어려운 나는 사랑까지 셋이 함께여야 완전한 것 같다. 셋이 나란히 한계단에 있어야. 사랑은 한계단에서 시작될 수 있다. ​ 이 영화는, 그 모든 것을 한계단에 올려놓았다. 이 장면에서 소름. ㅠ.ㅠ (소름 돋는 장면 너무 많다 근데) 넘 좋았다. 흑. 그렇게, 카메라는 수평으로 움직인다. ​ 종종 사랑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들이 다른 계단에 있기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랑이 같은 위치에서 시작되었다가도 관계사이의 힘의 균형이 달라지면 그 사랑은 끝이 나기 마련이다. 비단 로맨틱한 사랑뿐 아니라 우정 같은 플라토닉한 사랑도 같은 위치에서 가능하다. 위치가 다르다는 것은 무엇일까,사회적 지위라고 말할 수도 있는 힘의 균형이라고 생각하는데, 조금 더 일상적으로 생각해볼 때 그것은 내가 너를 다 안다, 상대방을 파악함으로써 판단하는 데에 일어나는 마음은 아닐까 생각한다. ​ 남녀간의 사랑이 영화나 소설에서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왜일까 고민을 많이하는데, (이 고민도 내가 이성애자로서 갖는 편협한 질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한 마음이다.) 그것이 마땅히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야기가 존재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너무 이성애 이야기만 많았던 데에서 균형을 잡는 자연스러운 과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혹시나, 남녀간의 사랑은 같은 계단에 있기가 그만큼 어려운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았다. 남과 여가 서로를 이해하기가 어려우니까. 하지만 요즘 세상은 좋아져서 서로가 부딪히면서 일어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그 불편함과 어려움을 손쉽게 제거하거나 배제할 수 있는 기술과 매체들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편리하게 '섬'이 될 수 있다. 유일한 당신이 손쉽게 대체될 수 있다는 착각을 하기 쉽다. 당신이 아니어도 되는 것은 사랑도 뭣도 아니다. ​ 이 영화에는 너무나 주옥같은 대사가 많다. 대사가 많지 않은데도 하튼 흑, 너무 정곡을 찌르는 대사가...ㅠ.ㅠ 그 중에, "당신이 나를 바라볼 때 나는 누구를 바라보겠어요." 라는 대사가 있는데, 시선이, 상대를 잘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 이 영화에서 이 대사는 모든 것과 맞물리면서 심금을 울린다. 바라볼 것이 많은 요즘, 서로만 바라볼 수 있는 그 시간은 너무나 특별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 언젠가 사랑에 빠졌을 때 나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때 그에게, 그러니까 사랑에 빠졌다고 확신을 했는데, 초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기때문이다. (미쳤구나, 뭐 이런.) 그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뿐이었는데, 그 사람의 눈이 둥둥둥 떠서, 우리 사이의 거리를 헤치고 내게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두 눈이 까맣고 아몬드 모양이고 그런 나만 보는 눈이 내게로 다가오면서 클로즈업 되는 것이다. 당신이 나를 바라볼 때 나는 누구를 바라보겠어요. ​ 엘로이즈가 마리안느와 그토록 사랑에 빠진 것이 나는 이해되었다. 그렇게 바라보는데, 나를 알아주는데, 둘 밖에 없는데 아름다운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고군분투하는 두 사람이. ​ 이 영화는 또한 예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창작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야할까. 할 수 있는 일.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빠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모든 사랑은, 모든 인간이 그렇듯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는데(그래서 역으로 모든 사랑이 완전한 걸 수도 있겠다.) 우리는 종종 가능한 사랑만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 사람이 받아 줄 것 같을 때 내 마음을 고백하고, 상대를 먼저 파악한 다음에 접근한다. sns라는 것이 있어서 그게 더 쉬워졌다.그 사람이 알려주는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내가 먼저 온라인으로 파악하는 정보들은, 그 사람을 내 방식으로 이해하는, 내 자신이 더 중요한 관계의 형성일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 속, 엘로이즈와 마리안느는 서로 함께하지 못할 것을 알았다. 그리고 상대방이 날 받아줄 지도 확신 못했을 것이다. 운명을 바꿀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서로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커다란 용기일 것이다. 그래서, 그 둘이 눈물을 흘리며 다투는 장면이 나는 무척 좋았다. 나를 판단하지 말라고, 내가 어떨 것이라고 짐작하고 판단하지 말라고. 어떤 결정을 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고. 이 사랑은 이렇게 큰데, 함께 할 수도 없고, 이제 표현할 수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 우리는 기억할 수 있다. 처음으로 그 사람에게 키스하고 싶었던 순간, 그 사람의 볶은 아몬드 같은 두 눈이 내게 둥둥 떠오던 순간, 잠도 자고 싶지 않을만큼 달콤했던 둘만의 밤(엘로이즈와 마리안느는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밤, 깨어있으라고 서로를 다정하게 때운다.), 함께 마신 와인의 맛, 그 사람이 처음 웃었던 순간. 그들은 말한다. 너를 웃게하기까지 오래걸렸지. 응, 시간만 낭비했어. 시간은 한정되어있고, 분노는 사랑을 쉽게 이긴다. 하지만 기억할 수 있다. 생기있는 꽃은 시간이 지나면 시들기 마련이지만, 그것을 보면서 수놓은 자수는 완성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지만 오래 남는다. 소피가 수놓는 장면에서 그런 희망을 보았다. 오르페우스는 뒤를 돌아보아서 사랑을 영영 잃었지만, 시인으로서 다시 태어났다. 후회하지 말고, 기억할 수 있다. ​ 신형철 평론가는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오르페우스 이야기를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어느 편에서 봐도 이것은 너무 사랑한 자의 비극이다. 여기에 상실과 과실이 함께 있다. 반드시 이 둘이 함께 있어야만 '회한'이라는 감정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나는 회한이야말로 문학의 근본 감정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 사랑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운명에 의해서, 또 한 번은 나에 의해서, 사랑했던 사람을 두 번 죽여본 사람은 시인이 될 수 있다. 마이나스들에게 온몸 찢어져 그 회한마저 찢기기 전에는 그만둘 수 없을 것이다.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P76 ​ 나에게는 오르페우스가, 위로이고 간절한 희망이다. 여러번 죽인 연인들에게 명복을. 이 영화에서 울컥했던 장면중에 한 부분은. 얼마나 불에 타기 쉬운지, 였다. 어둡고 촛불이나 모닥불에 의지해야 하던 시절, 그 시절 얼마나 불에 타기 쉬운지. 타오르기 쉬운지. 지금은 LED가 있는데. 나무심지로 되어있는 향초를 좋아한다. 타면서 타닥타닥 모닥불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향도 더 자연스럽다. 이것은 느낌이겠지만 더 따뜻한 기분마저 든다. ​ 이 영화에서 너무나 소름이 돋고 좋았던 장면은, 단연, 모닥불 장면이었다. 그 노래. 아흑. 서로의 목소리 키를 맞추든, 조율하듯 신음 혹은 탄성 혹은 비명같기도 한 여자들의 단음은 묘한 분위기를 만들다가 곧 화음을 이룬다. 마리안느가, 낙태시술을 받아야하는 소피에게 내가 너와 함께있을게라고 말한 이후다. 목소리와 손뼉이 마주치는 소리, 그리고 서로를 살피는 눈빛만으로 노래한다. 그들은 모닥불로 모여든다. 외딴 섬에 사는, 옷차림으로 보아 귀족이 아닌 노동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이다. 고단한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노래를 하면서 그들은 자유롭고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 당연하지만 모두 다르게 생겼다. 그리고, 수녀원에서 찬송가만 듣고 불렀던 엘로이즈는 처음으로 다른 노래를 듣는다. 사람만이 만드는 노래. 악기도 없이 사람의 몸으로만 연주하는 노래를.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마리안느는 밝게 웃고, 엘로이즈도 웃는데 그 웃음에 모든 걸 건 것처럼 슬픔도 가득하다. 그리고 엘로이즈의 치맛자락이 타오른다. 모닥불에 불이 옮겨붙은 것이다. 엘로이즈는 마리안느를 바라보느라 불이 붙은줄도 모른다. 그러다가 마리안느의 놀라는 얼굴을 보고 비로소 불타는 자신의 치맛자락을 내려본다. 불이구나. 타는구나. 그렇구나. 그게 뭐라고. 다시 마리안느를 본다. 불은 안중에도 없다. 점점 타오른다. 나는 눈물 콧물을 흘린다. 아, 엘로이즈. 활활 타는데, 노래를 부르던 여인들이 재빨리 와서 불을 끈다. 혼자가 아니다. 나 혼자 활활 타는 사랑이 아니고, 둘 다 새까맣게 타는 사랑이 아니고 세상 속에 있는 사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사랑이다. 타올랐고, 그래서 살아간다. 그것이 나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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